예술감독 노무라 만사이
각색·연출·주연 1인3역 노무라 감독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고전이 일본 전통예술의 옷을 입고 한국을 찾았다.
지난 15~17일 서울 명동예술극장 무대에서 일본 공공극장인 세타가야 퍼블릭시어터의 연극 <맥베스>가 올랐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비극 고전에 일본 전통의 비극 예능인 노(能)와 희극 교겐(狂言)을 교접한 작품이다. 세타가야 퍼블릭 시어터 예술감독이자 중요무형문화재 종합지정자인 노무라 만사이(47·사진)가 각색과 연출, 주연(맥베스)을 맡았다. 몹시 낯선 공연 양식임에도 전회 매진에다 기립박수까지 나왔다. 17일 오후 공연이 끝나고 분장실에서 노무라 만사이를 만났다.
“한국공연이 이렇게 성공적일 줄 예상 못 했습니다. 전회 완전매진이었고 관객반응이 너무나 좋았어요. 특히 세 명의 마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여러 번 웃음이 터졌습니다.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았죠. 제가 시도한 교겐식의 유머를 한국 관객들이 오히려 더 잘 이해하고 매번 웃어주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그는 “앞으로 5년간 이 작품으로 세계 투어를 시도할 예정인데, 그 첫 시작인 서울 공연이 대성공이어서 무척 기쁘고 한국 관객들에게 감사 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국내에서는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일본에서는 연극과 영화, 텔레비전을 누비는 스타이자,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교겐 바람을 일으킨 인기스타이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영화 <음양사>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란> 등에 출연했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분라쿠(文樂), 가부키(歌舞伎)와 함께 일본 4대 전통예능으로 꼽히는 노와 교겐으로 새로운 감각의 <맥베스>를 선보였다. 10명 이상의 인물이 등장하는 원작을 맥베스 부부와 마녀 3인 등 모두 5명만으로 압축해 왕좌에 대한 욕망에 빠져 인간성을 잃고 파멸하는 맥베스 부부의 모습을 그려냈다. 특히 비극적이고 상징적인 노의 관점으로는 맥베스 부부의 인간적인 비극을, 희극적이고 사실적인 교겐의 시선으로 삼라만상 속에 보잘것없는 인간의 존재를 드러냈다. 왕위에 오르려는 맥베스의 욕망이 우주나 신(마녀 3인)의 높이에서 봤을 땐 매우 하찮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교겐의 시각은 공연 첫 장면부터 우주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잘 드러난다. “우주의 먼지/ 별똥별, 똥 같은 별/ 문명의 응어리 쓰레기, 쓰레기 같은 문명/ 사회의 뒤틀림, 뒤틀린 사회/ 인간의 일그러짐, 일그러진 인간/ 인간 쓰레기, 쓰레기 같은 인간.”
“삼라만상 속에서 ‘내일’을 생각하는 것은 인간뿐이지 않습니까. 내일이 더 좋고, 밝고, 쾌적하길 바라는 나머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데까지 손을 뻗고 맙니다. 염원을 이룬 후, 그곳에는 어떤 ‘내일’이 있을까요.”
그는 “인간은 내일을 생각하지만 ‘깨끗한 것은 더럽고, 더러운 것은 깨끗하다.’라는 맥베스의 대사처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만든 플러스의 재산이 오히려 마이너스의 재산을 낳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011년 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를 빗대어 설명했다. 그는 “인간은 내일을 쾌적하게 하려고 자연계에 없는 원자력 같은 것을 만들었지만 결국 엄청난 폐기물까지 생산하고 말았다. <맥베스>로 자만하는 인간들에게 우리의 힘으로는 저항할 수 없는 훨씬 더 큰 존재가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10여년 전부터 일본 고전 예능의 창작력을 어떻게 현대에 되살릴까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노무라 만사이 버전의 셰익스피어 작품들이다. 2001년에 셰익스피어의 <실수연발>을 교겐에 접목한 <실수연발의 교겐>으로 런던 글로브좌 공연에서 극찬을 받았고, 2007년에는 <리처드 3세>를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 삼아 <나라를 훔친 자>(2007)로 풀어냈다.
그는 “동양 고전이 주목받기 위해서는 셰익스피어 같은 세계 공통의 희곡을 통해 그 우수성을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2010년에 만든 <맥베스>로 도쿄, 오사카, 서울, 뉴욕 4개 도시 투어에 나선다.
글·사진 정상영 기자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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