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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바람이 스치운 곳 그림이 되었네

등록 2013-03-24 20:21

<파도와 총석>
<파도와 총석>
‘제주 화가’ 강요배 개인전
6년전 ‘스침’ 전시보다 강렬하게
제주의 바다와 바람·꽃 등 담아

강요배의 그림은 보는 이를 전율케 한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에서 열리는 개인전은 회화 40여점과 드로잉 10여점을 걸었는데, 6년 전 ‘스침’에서 보여준 제주의 바다와 하늘이 다름없고 팽나무와 돌이 여전하다. 그런데 떨림이 더하다. 왜 그럴까.

강요배가 집요하게 제주의 바람과 햇빛을 그려온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 바다를 일으켜 세우고 붙박인 팽나무를 흔드는 바람, 바다 물결이 퉁겨내고 현무암 바위가 빨아들인 햇빛이다. 화폭에서의 바람과 햇빛이란 질감. 작가한테 질감은 곧 제주이고, 질감의 표현은 작가 자신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림에는 작가의 궤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거개는 덩실 어깨춤과 가멸찬 손끝인데, 간간이 작취미성의 눈길이 배어 있다.

떨림의 근원은 작가의 집요함. ‘스침’에서 팽나무는 농투성이의 손등처럼 거친 밑동에 방점이 찍혔었는데, 이번에는 바람과 햇빛을 동시에 머금은 가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귀덕리 팽나무>는 흔들릴 때마다 괴기스런 에너지를 뿜어낸다. 작가는 남이야 그 정체를 알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마을 어귀에 서서 마을 안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지표가 된다.(<길 위의 하늘>)

그러나 정작 마을로 들어가도 이야기는 없다. 바다와 출렁이는 파도가 있을 뿐이다. 왜 이야기가 없겠는가. 마을에 사람들이 살고 지천에 깔린 게 이야기일 터이다. 틈입자에게 들리지 않는 것은 작가의 의뭉스러움 때문이겠지만 바다가 뿜어내는 힘이 워낙 강렬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명주바다>에서 바다를 두고 푸른 비단을 깔아놓았다고 말하는데, 한꺼풀 아래는 주체하지 못하는 힘이 있지 않겠는가. 바람이 불면 끓어오르는 게 이치. 에너지는 뭍과 만날 때 드러나는데, 절벽에 부닥칠 때 가장 두드러진다. 벽 하나를 차지한 <파도와 총석>(259×388㎝·위 사진) 앞에서 바다는 주상절리의 바위에서 비산하면서 관객한테 흩뿌려진다. 으스스 몸서리가 쳐진 다음 서서히 얼굴이 달아오른다. 풍경 앞에서 달아오르는 희한함.

근원의 떨림이라고 했는데, 그 정도가 6년 전보다 심함은 꽃과 늙은 호박 때문이다. <해·풍·홍> <암중홍>의 바람에 흔들리는 칸나, <귀덕호박>(아래 사진) <설중옹>의 늙은 호박이 없다면 팽나무와 바다와 더불어 추는 작가의 춤은 무람없을 터. <바위틈 문주란>처럼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는 제주의 바람과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강요배 부부의 모습 그대로다. 작가가 제주로 돌아가 탐라인이 된 지 20여년. 이제 제주의 사계는 물론 부부의 삶이 모두 작품 속으로 녹아들었다. 하늘의 풍요를 거절하고 땅으로 내려온 <자청비>, 아침마다 마주치는 희부윰한 하늘 <동>, 모네의 정원을 떠올리게 하는 <가을 뜨락>이 그렇다.

그리고 제주 작가라면 응당 한라산에 도전할 만할 터. 작가는 그 꿈을 이뤘다. 눈 속에서 갑자기 맞닥뜨린 <움부리 백록담>(259×194㎝)이 신령하다. 강요배는 탐라인을 자처해도 좋겠다. 전시는 27일부터 새달 21일까지 열린다. (02)720-1524~6.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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