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제주국제관악제 세계수준 음악축제로 발돋움
8월의 제주에 음악의 바람이 부는 까닭은? “아내에게 말한다./죽어서 우리 둘이는/들불에 메이는 바람이 되어/풀잎을 흔들다가/죽어진 죄로/죽어진 죄로/고근산()만 망연히 오르내린다”
제주 토박이 시인 한기팔의 ‘고근산’에 나오는 바람은 애처롭다. 제주의 표상은 한라산이다. 그리고 한라산은 수많은 아들, 딸들을 낳아 이름하여 ‘오름’이라는 크고 작은 분화구를 제주 곳곳에 흩어놓았다. 이른 새벽 고근산 오름에서 억새풀을 헤치고 한가운데로 들어가면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이 바람이야말로 오름의 정수이며 제주인에게 고통과 미소를 동시에 안겨주었던 절대적인 동반자였다.
제주의 바람은 인간의 숨결로 바뀌어 음악으로 다시 태어났다. 8월 제주의 오름은 온통 음악의 바람으로 뒤덮인다. 바람은 그대로 관악기로 화한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은, ‘섬! 그 바람의 울림’이라는 주제의 제주국제관악제가 있기 때문. 당시 불과 5천만원의 예산으로 지하사무실에서 시작한 ‘음악 바람’은 이제 정상급 관악인들이 대거 참여하는 세계 수준의 음악 페스티벌로 성장했다.
15일 저녁, 제주시청 앞에서 출발한 축제 참여 밴드의 시가 퍼레이드 열기는 불볕더위를 잠재우며 해변공연장으로 옮겨갔다. 수천명의 시민과 외지 관광객들이 야외무대의 객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제주윈드오케스트라의 환영음악회가 막을 올렸다. 박동욱의 〈관악합주를 위한 오름〉이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첫 시작을 알리고, 줄리아드 음악원 교수이며 거장급 여성 관악지휘자이기도 한 버지니아 앨런이 번스타인의 〈슬라바!〉를 연주해 흥이 고조되었다. 광복 60돌을 맞은 이날 공연의 피날레는 제주시향 지휘자 이동호가 연출한 안익태의 〈한국환상곡〉. 관악기로만 울리는 거대한 음의 향연을 거쳐 제주 연합합창단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을 부르짖으며 절정으로 치달을 때 형형색색의 화려한 폭죽이 해변의 밤하늘을 수놓았다.
12일 개막한 2005 제주국제관악제는 이제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제주문예회관, 해변공연장, 한라아트홀, 천지연폭포 야외공연장에서 마련된 콘서트로 인해 오전 11시부터 저녁 8시까지 동시다발적으로 나팔소리가 제주 전역을 뒤덮고 있다. 음악회뿐 아니다. 개인레슨 수준에 머무는 대부분 국내 여름음악캠프와는 달리 학생들을 위한 워크숍이 거의 무료로 개최돼 이탈리아 등지에서 온 50명의 음악도들이 야크 모저(트롬본), 앤드루 덜키(색소폰) 등 세계적 연주가에게 배우고 있다. “유럽에서도 이런 관악기만의 축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만족입니다!” 14일 밤 천지연폭포 야외공연장에서 연주한 스페인 아로나 시립음악밴드의 호세 카스트로(23)는 이렇게 말했다. 아쉬움도 있다.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관악인들의 한마당에 국내 관악전공자의 참여가 저조한 것. 오히려 아마추어 동호인과 일반인의 호응이 더 뜨겁다. 20일까지 계속되는 축제는 18일 저녁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에서 만나는 제주국제관악제’로 서울시민에게 제주의 바람을 전한다.
제주/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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