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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단절 말하려는 듯, 뚝 뚝 끊어진 대사들

등록 2013-03-28 20:02수정 2013-03-28 21:29

연극 <단지 세상의 끝>
연극 <단지 세상의 끝>
연극 ‘단지 세상의 끝’ 한국 초연
대화는 서로의 생각과 뜻을 이해하려는 약속과 준비가 필요하다. 이런 소통의 기본이 단절된 대화는 끔찍하다.

서울 남산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무대에서 한국 초연 중인 연극 <단지 세상의 끝>은 가족 간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불안과 고독을 다룬다. 프랑스의 천재 극작가 겸 연출가 장뤼크 라가르스(1957~1995)의 희곡을 극단 프랑코포니 임혜경(숙명여대 불어불문학과 교수) 대표가 번역하고, 극단 상임연출가 카티 라팽(한국외대 프랑스어과 교수)이 연출을 맡았다.

연극은 어느 일요일 10년 전에 무작정 집을 떠난 장남 루이(김은석)가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루이는 불치병으로 곧 죽게 될 자신의 처지를 가족에게 알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머니(지영란)와 남동생 앙투안(강일)·카트린(김혜영) 부부, 여동생 쉬잔(박묘경)은 아무 말 없이 떠난 맏아들의 무책임을 탓하기 바쁘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가족들의 비난과 불평에 루이는 하고 싶었던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고 다시 집을 나온다.

<단지 세상의 끝>은 지난해 3월 국내에 소개된 라가르스의 작품 <난 집에 있었지 그리고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못지않게 난해하다. 특별한 사건과 사연이 없기 때문에 시작과 전개, 결말의 단계가 없다. 여기에 과거와 현재, 미래가 넘나들고,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한다. 서른여덟살에 요절한 작가 라가르스는 죽음과 고독, 남성 안의 여성성, 소통 부재 등의 다양한 주제의식을 이 작품에 녹여 넣었다. 주인공 루이는 그래서 작가의 분신처럼 보인다.

연극은 지문 없이 짧은 호흡 문장들이 이어지는 긴 대사로 이뤄져 있다. 그 대사마저 마침표와 쉼표, 문장 반복으로 표현되기에 명료하지 않다. 가족들이 루이에게 갖고 있는 불편한 심리를 뜻하는 것으로 읽힌다. 10년 동안의 단절로 루이는 이미 가족 속의 이방인일 뿐이다. 루이의 침묵과 짧은 대답들은 소통 부재의 고독일 것이다.

조각조각 펼쳐진 파란 하늘 아래 루이의 오랜 방황을 보여주는 기찻길과 가족의 낡은 실내 공간이 공존하는 무대(심채선), 강하게 증폭시킨 일렉트릭 기타 음악(황강록)은 초현실주의적인 작품과 잘 어울린다. 엄청난 분량의 난해한 대사를 쏟아내는 배우들의 숨은 노력도 엿보인다. 희곡을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마침표와 쉼표, 반복이 빚어내는 프랑스 말 특유의 시적인 리듬이 반감된 것이 아쉽다. 4월7일까지, 1666-5795.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극단 프랑코포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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