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연극축제 백화점에서!
5개 대학 연극동아리 서울 삼성동 현대백화점서 매일 한편씩 무대
“폐병도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 의사라는 건 대개 엉터리거든. 전엔 나보고 술 끊지 않으면 죽는다고 그랬어. 그런데….”
화려한 명품들과 현란한 조명이 가득한 서울 강남의 백화점 한쪽에서 연극 대사가 울려 퍼진다. 쇼핑백을 들고 지나가던 손님들이 발길을 멈추고, 상품 진열대에 고정됐던 시선은 배우들의 미묘한 얼굴 표정과 손짓에 꽂힌다.
이번 주말 서울 삼성동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을 찾은 손님들은 대학생들이 펼치는 풋풋한 연극을 공짜로 볼 수 있다. 20일부터 5일간 이 백화점 10층에서 열리는 ‘캠퍼스위크-제1회 대학연극축제’에는 서울대, 연세대, 동국대 등 5개 대학 연극동아리가 참여해 매일 오후 2시부터 한 편씩 막을 올린다. 서울대팀의 <연애 권장법 대소동> 등 대학생다운 참신한 창작 뮤지컬부터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처럼 4시간이 넘는 ‘대작’을 들고 나온 팀도 있다. 백화점은 이번 연극축제를 위해 150평 규모의 이벤트홀을 300석 규모의 객석과 무대로 꾸몄다.
대학 연극동아리들에게 방학은 공연이 없는 ‘비수기’다. 때마침 열린 연극축제는 관객들의 시선에 목말라하던 대학 연극인들에게는 단비처럼 반갑다. 20일 첫 공연을 하는 세종대 극예술연구회 주동인(27)씨는 “백화점이라는 소비문화의 한가운데에서 연극 공연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대학 연극동아리를 대상으로 한 이런 작은 대회가 자주 열리면 마땅한 무대가 없는 대학생 연극인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화점 쪽은 “졸업·취업시즌에 맞춰 ‘면접용 정장’을 팔기 위한 고객으로 생각하던 대학생들에게 대학문화를 전파하는 ‘문화 후원자’의 이미지를 새기기 위해 연극축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1등을 한 연극동아리에게는 이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순회공연을 할 기회도 주어진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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