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영 작가의 영상작품 ‘점멸하는 노래’. 아카이브에서 찾아낸 여성국극 배우들의 슬라이드와 국극 가사를 조합하여 성 정체성을 이야기한다. 국제갤러리 제공
예전처럼 발품 팔지 않고
사이버공간에서 재료 수집
젊은 작가 새로운 흐름으로
‘기울어진…’ ‘디테일’전 눈길
사이버공간에서 재료 수집
젊은 작가 새로운 흐름으로
‘기울어진…’ ‘디테일’전 눈길
작품은 작가와 현실의 경계에서 탄생한다. 그러기에 작품에서 작가와 시절을 읽을 수 있다. 거꾸로 작가 또는 시절을 읽으면 작품의 속살을 느낄 수 있다.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기울어진 각운들’(4월13일~6월16일)에서는 시절이 읽힌다. 2008년 광주 비엔날레 공동 큐레이터를 지낸 미술비평가 김현진씨가 기획한 전시로, 문영민 홍영인 정은영 이미연 남화연 윤향로 차재민 등 2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연령대 작가들의 회화, 조각, 영상 등 다양한 작품이 걸렸다. 절을 하는 작가의 모습을 그린 소품(문영민), 만화 주인공들을 수놓은 자수(홍영인), 여성 국극배우들의 몽타주(정은영), 사건 현장들의 스케치(이미연), 입체도형들의 충돌(남화연), 만화 또는 영화트레일러의 조합(윤향로), 욕망하는 도시의 뒤풍경(차재민) 등 다양한 작품들 모두 사이버공간에서 수집한 것들을 재료로 하며 작고 휴대가 간편한 점이 특징이다.
“다른 매체에서 생산된 자료를 덜어내거나 지우는 식으로 재가공하여 작품화하는 경향이 젊은 작가들한테서 두드러집니다. 2000년대 초중반부터 급격하게 바뀐 미디어 환경이 반영된 결과로 보여요.” 전시 기획자인 김현진 큐레이터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서로 또는 공간과 부닥치면서 빚어지는 엇박자에 초점을 둔 전시이지만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작가들이 보이는 반응에도 주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에는 자연이나 사회에서 취재한 재료를 미학적으로 발전시켜 작품화하는 게 보편적이었어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인터넷에 자료나 정보가 충분하죠. 사이버 자료를 재가공하면서 조각들을 조합하는 방식의 작품이 두드러집니다.”
그는 젊은 작가들이 충분한 작업공간을 얻기 힘든 점이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본다. 별도 작업실을 마련하지 못해 살림집 겸 작업실에서 일하는 작가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장단점이 있어요. 작품이 작아지면서 더 섬세해졌어요. 대신 작가들은 공간감이 줄어들었어요. 책상에서 작업하다 보니 크기보다 내용에 치중하면서 큰 전시공간과 마주치면 자기 작품을 어떻게 처리할지 당황해합니다.”
종로구 통의동 시몬갤러리의 ‘디테일’(4월18일~5월31일)은 시절의 코드를 작품에서 찾아낸 전시다. 미술평론가 강수미 동덕여대 교수가 기획해 강홍구 이동욱 박진아 이세경 조혜진 이진주 김아영 등 작품이 걸렸는데, 강홍구를 빼면 모두 젊은 작가들이다.
조각보 같은 부산 달동네(강홍구), 조각으로 구현한 촉각(이동욱), 정교하게 잘라낸 시간(박진아), 섬뜩함과 아름다움의 경계(이세경), 페트 필름을 통해본 삼중의 상(조혜진), 이야기 주머니 같은 그림(이진주), 사진으로 재구성한 사건(김아영) 등 다양하지만 작은 것, 지엽적인 것, 사적인 것, 내밀한 것 때로는 편파적인 것, 예외적인 것을 통해 시절을 이야기한다는 게 공통점이다.
기획자 강수미 교수는 대선공간에서 문재인 후보의 선거광고에서 얼핏 비치는 의자를 두고 논란이 일어나거나 시장에서 냄새를 맡으며 감자를 고르는 박근혜 후보의 영상이 화제를 부른 것을 예로 들며 “디테일이 본질을 대체하거나 좌지우지하는 일이 잦은데, 이는 에스엔에스를 통해 정보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벌어지는 시대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시작들을 보면 작가들한테도 이러한 세태가 반영돼 있으며 디테일을 통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함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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