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린드베리의 3인극 <채권자들>에서 여주인공인 작가 테클라 역을 맡은 연극배우 길해연씨. 그는 테클라를 “음탕하며 무책임해 보이지만 <인형의 집>의 노라를 연상시키는 신념이 뚜렷한 여자”로 해석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연극 ‘채권자들’ 주인공 길해연
남편 배신해 복수당하는 테클라
팜파탈-사랑스러움 양면적 연기
“자유의지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
작가로서 아동극·동화책 집필도
남편 배신해 복수당하는 테클라
팜파탈-사랑스러움 양면적 연기
“자유의지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
작가로서 아동극·동화책 집필도
올해 초 노배우 이호재(72)씨와 대학로 스타 연출가 이성열(51)씨가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1849~1912)의 희곡 <채권자들>을 무대에 올리기로 했을 때, 연극계의 관심은 누가 여주인공 테클라 역을 맡느냐였다. 무대에 서 있는 것만으로 강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명품배우와 맞설 수 있는, 게다가 팜파탈의 강한 이미지와 사랑스러움을 고루 갖춘 양면적인 모습을 연기해내야 하는 어려운 배역이었기 때문이다. 그 역은 길해연(49)씨에게 돌아갔다.
“모든 배우에게는 여러 얼굴이 있어요. 제 나이가 있는데 자꾸 팜파탈적 이미지를 요구하는 것은 그동안 출연한 작품들 탓도 있을 테고, 제 사고 자체에도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여자뿐만 아니라 세상을 섣불리 재단하는 모든 고정관념이 싫거든요. ‘왜 그래야 하지’라는 의문을 끝없이 생각하는 편이어서 제가 좀 이상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긴 해요.”
6일 만난 배우 길해연씨는 “외모가 섹시한 것도 아닌데 그동안 맡았던 배역들 덕을 톡톡히 본다”고 호방하게 웃었다. 1986년 극단 ‘작은신화’의 창단 멤버로 프로연극계에 첫발을 디딘 그는 히서연극상, 올해의 연극인상, 동아연극상 연기상, 서울공연예술제 연기상 등을 받으며 대학로를 대표하는 중견 여배우로 자리를 굳혔다. 연극 <돌날> <존경하는 엘레나 선생님> <루시드 드림> <사랑이 온다> <꿈속의 꿈> 등 문제작들에서 여주인공을 맡아 선이 굵으면서도 절제된 내면연기를 선보여왔고, <돈 크라이 마미> <아내의 자격> <가시> <마파도> 등의 영화와 <세계의 끝> 등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활동해왔다.
10일부터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시작하는 <채권자들>에서 그는 이호재씨와 김영필(40·극단 골목길)씨와 호흡을 맞춘다. ‘근대연극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트린드베리의 <채권자들>(번역 성수정, 윤색 동이향)은 여성혐오자였던 작가의 불행했던 결혼생활의 경험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학자인 전남편 구스타프(이호재)가 자신을 배반한 아내 테클라와 그의 새 남편 화가 아돌프(김영필)를 찾아가 ‘세치 혀’로 광기의 복수극을 펼치는 과정을 그린 희비극이다.
길씨는 “세 사람의 애증 관계로 얽힌 복수극이 표면에 드러나지만 그 뒤에는 더 큰 사상이 배경으로 깔려 있는 작품”이라며 “결국, 우리 인간들은 여전히 해결할 수 없는 영역에서 모든 것을 잃으면서 다투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테클라는 음탕하고 무책임하게 보이겠지만 신념이 뚜렷한 여자예요. ‘노라’(여성에 대한 억압에 저항하는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 여주인공)를 연상시켜요. 그래서 테클라가 이상한 여자가 아니라 자유의지가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생각하고, 또 테클라가 그래야 했던 이유를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풀어볼 생각입니다.”
그는 극중 작가인 테클라와 마찬가지로 어린이연극 대본과 동화책을 집필한 작가이기도 하다. 어린이극단 연극교실에서 가르친 강의를 바탕으로 쓴 <어린이를 위한 집중>과 용서·책임·배려·소유 등을 주제로 다룬 ‘도덕 그림책 시리즈’의 <나랑 먼저 약속했잖아> 등 12권을 냈다.
“1년에 연극 5~6편과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에 꾸준히 출연하려고 합니다. 또 대학 강의도 나가고 저녁에는 영화배우와 탤런트에게 연기를 가르치면서 책도 쓰죠. 2007년 극단 작은신화의 동료배우였던 남편(조원호)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뒤 친정어머니와 자식을 돌보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했어요. 하지만 고난이 닥치니까 제가 더 성장하게 되더군요. 항상 긴장하면서 계속 세상과 연극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저를 움직이는 힘 같아요.”
극단 컬티즌의 2013년 신작 <채권자들>에는 이승무(의상), 신호(조명), 이유정(무대), 김은정(음악) 등 대학로의 숨은 실력자들이 스태프로 참여한다. 26일까지. (02)765-5476.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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