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5집 앨범을 내고 가요계로 돌아온 이효리. 5집 앨범 수록곡으로 먼저 선보이는 노래 ‘미스코리아’는 이효리가 직접 작사·작곡했다.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비트도 훅도 없는 수수한 곡
매력을 과시하는 대신
위로하는 그녀가 어색하지 않다
데뷔 16년차 섹시디바의 노래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비트도 훅도 없는 수수한 곡
매력을 과시하는 대신
위로하는 그녀가 어색하지 않다
데뷔 16년차 섹시디바의 노래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예전 같은 웅성거림도, ‘그거 들어봤어?’라고 묻는 이도 없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직 싸이의 ‘젠틀맨’과 조용필의 ‘바운스’의 열기가 거리를 메우고 있고, 화려하거나 논란이 되거나 어느 쪽으로든 인구에 회자되던 전작들에 견주면 이번 곡은 수수한 편이니까. 그런데 이 수수한 노래는 별 티도 안 내고 발매 당일 7개 음원 차트 1위에 올랐다.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이효리가 돌아왔다.
곡만 놓고 보면 이효리의 3년 만의 신작 ‘미스코리아’는 무난한 곡이다. 걸음을 멈추게 하는 비트도, 귀를 잡아끄는 훅도 없다. 밴드 편제의 재즈풍 팝 넘버 ‘미스코리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한 톤을 유지하고, 이효리는 최대한 힘을 빼고 친구에게 말을 걸듯 나지막이 노래한다. 기타 중심의 어쿠스틱한 사운드에선 작사·작곡을 맡은 이효리보다 편곡자 이상순의 색깔이 더 짙어 보이고, 담담하고 나른한 톤의 보컬 또한 어딘가 이상순의 밴드 롤러코스터에서 보컬을 맡고 있는 조원선을 연상케 한다. 댄스 디바 이효리가 선택한 5집 앨범 선공개곡이 ‘미스코리아’란 점은 이색적이지만, 이효리라는 이름 없인 이 정도의 주목을 받진 못했으리라는 일각의 주장도 수긍이 간다.
다른 맥락으로 보면 ‘미스코리아’는 훨씬 더 흥미로워진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가사다. 이효리는 여전히 ‘세상 앞에 당당한 여성’을 화자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 결은 전작들과 사뭇 다르다. 그는 자신의 주체성을 세상 앞에 과시적으로 선언하라 부추기는 ‘유 고 걸’(‘이제부터 솔직하게 이제부터 당당하게 너의 맘을 보여줘. 바로 이 순간, 지금 이 순간 투나잇’)의 화자도, 혹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10분 안에 유혹할 수 있는 자신의 매력을 과시하는 ‘텐 미니츠’(‘저스트 원 텐 미니츠, 내 것이 되는 시간… 나는 달라. 그녀와 날 비교하지 말아줘’)의 화자도 아니다. 대신 이효리는 ‘불안한 미래’에 ‘지쳐’ ‘망쳐가는 것들 내 잘못 같’다 느끼는 이들에게 ‘그렇지 않아요. 이리 와봐요. 다 괜찮아요’라 말하며 상처를 보듬는다.
‘많은 이름’을 짊어진 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명품 가방’이나 성형으로 공허와 불안을 채우려 하는 이들에게, 이효리는 그런 것들이 모두 ‘자고 나면 사라지는 그깟 봄 신기루’라고 말한다. 그런 것 없이도 우리는 충분히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다고. 자신이 한때 “자본주의의 꽃, 자본주의 최대 수혜자”(‘생명 생각하다보니 정치에도 관심…‘자본주의 꽃’ 내 변화 고무적’ <한겨레> 2012년 11월19일, 조국의 만남)였다고 자평했던 그는, 자신이 상징하던 소비문화의 가치들을 조심스레 부정하며 존재 자체로도 자신은 ‘세상에서 제일가는 걸(girl)’이라 말한다.
노래가 상정한 청자의 범위는 더 흥미롭다. 공식 보도자료는 이 노래의 청자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친 한국 여성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미스코리아’가 ‘이리 와’ 보라고 손을 내미는 대상이 비단 여성에만 국한된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뮤직비디오의 후반부, 이효리는 드래그 퀸(여장남자) 코러스들과 함께 춤을 추며 노래한다. 한국의 대중문화에서 드래그 퀸은 쉽게 희화화할 수 있는 가벼운 조롱의 대상으로 소비되곤 하지만, ‘미스코리아’ 뮤직비디오 속 드래그 퀸들은 자부심으로 가득한 고백을 노래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나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소녀고, 누구나 알면 놀랄 일인데, 왜냐하면 난 미스코리아이기 때문이라고.
사실 이효리의 이런 변화는 어느 정도 예고되었던 것이다. 3년 전 그는 정규 4집 <에이치-로직>(h-logic)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그에겐 중요한 앨범이었다. 전작 ‘유 고 걸’은 상업적 성공과 평단의 호평을 고루 받은 노래였고, 그에겐 그 성공을 확고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다음 작품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효리는 메인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리고, 자신이 선택한 신인 작곡가와의 협업을 통해 자기 취향대로 만든 힙합 트랙들로 앨범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믿었던 신인 작곡가는 학위부터 포트폴리오까지 모든 게 가짜인 사기꾼이었고, 수록곡 14곡 중 절반인 7곡이 표절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음반 판매는 중단되었고, 이효리는 방송 활동을 접었다.
방송 활동을 쉬던 그가 유기견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한단 소식이 처음 전해졌을 때, 사람들은 이것이 물의를 빚은 연예인들의 흔한 이미지 세탁의 일부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안 하던 트위터를 시작해 동물보호 관련 소식을 전하고, 관련 바자회를 열어 기금 마련에 동참하고, 유기견을 입양해 함께 사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리며, 급기야 정치적 이유의 채식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고작 이미지 변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인생을 거는 연예인은 세상에 없다.
“그동안 생각해봤어. 내가 13년간 활동했는데 단 한번도 쉰 적이 없는 거야. 매일 흔들리고 흩날리는 생활을 하다가 처음으로 1년을 쉬면서 알게 됐어. 내가 원하는 게 뭐고 하고 싶은 게 뭔지.”(‘김제동의 똑똑똑…가수 이효리’ <경향신문> 2011년 9월7일) 그렇게 잠시 멈춰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게 된 이효리는, 스스로를 상품화해야 하는 쇼 비즈니스의 논리가 아니라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의 논리대로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부터 흥미로운 딜레마가 생긴다. 그의 연예 활동과 환경 운동이 두 개의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영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채식주의자이자 동물 보호가가 되었고, 그럴 수 있기 위해서라도 연예인의 지위를 계속 유지해야 했다. “요즘은 화보를 찍을 때도 채식 케이터링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한국 채식주의자들의 짐을 함께 지고 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그 때문에 나 역시 공식적인 자리에서 좀더 자주 채식을 이야기하고, 실생활에서도 스스로에게 더욱 엄격해진다.”(‘이효리의 디스토피아로부터…사랑하세요’ <씨네21> 2012년 5월18일)
그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계속 연예인으로서 유명세를 유지하고 잘해야” 하는 이유로, 그래야 “사람들을 더 규합해서 함께 원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이라 말했지만, 두 가지를 함께 가지고 가는 일은 어려워 보였다. 신념이 바뀌고 생활이 바뀌고 인생관이 바뀐 그가,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활동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동물보호 활동을 하고 채식을 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멋지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에코백, 그러니까 친환경 가방에 지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그는, 잠시 뒤 에코백마저 ‘에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에코백이 트렌드가 되자마자 모두가 가져야 할 패션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중략) 에코라는 단어는 진정한 환경보호의 의미를 떠나서 점점 트렌드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요즘 나는 소비를 한다는 행위 자체가 에코와는 멀어지는 일이라는 걸 조금씩 깨닫고 있다.’(‘이효리의 디스토피아로부터…엣지와 에코 사이’ <씨네21> 2012년 6월11일)
하지만 소비의 딜레마를 벗어나는 일 없이 어떻게 스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가수 활동을 잘해야 원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지만, 원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가수 활동을 할 수 없는 딜레마. 그는 신작 작업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저에게 너무 많은 변화가 생겨서 이전과 같은 노래를 하기가 어색”(<한겨레> 인터뷰에서)하다고 말했고,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뒤 세상에 ‘미스코리아’를 선보였다.
그렇다면 ‘미스코리아’를 이효리가 찾은 대답으로 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는 여전히 아름답고 섹시한 디바지만, 동시에 소외된 이들과 지친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세상의 기준에 맞출 필요 없다고,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을 건넨다. 마침내 노래와 신념이 별개가 아닌 지점에 도착한 것이다. 음악 시장을 자본의 논리로 채웠다는 비판을 받았던 아이돌 산업의 1세대로 출발한 이효리는, 신념에 맞춰 제 삶의 궤도를 수정하는 곡예에 성공했다. 이만하면 데뷔 16년차 가수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멋진 분기점이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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