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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백발의 거장들’에게 컨디션을 대령하라!

등록 2013-05-12 20:11

왼쪽부터 주빈 메타(77) · 아르헤리치(72) · 로린 마젤(83)
왼쪽부터 주빈 메타(77) · 아르헤리치(72) · 로린 마젤(83)
70∼80대 고령 탓에 건강 복병
연주 취소 잦아 기획사 발동동
특급호텔·맞춤음식 서비스 등
편한 심신 유지 공들여야 해
클래식 음악계 거장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다. 예술성이 무르익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다보니 거장의 반열에 오를 즈음엔 인생이 황혼기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성대나 호흡기의 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성악가나 관악기 연주자는 은퇴가 빠른 편이라 60대 이전에 대부분 무대에서 내려오지만, 건반악기나 현악기 연주자는 60대 현역이 흔하다. 지휘자는 전성기가 70대, 80대까지도 이어진다.

그러나 뜨거운 예술혼으로도 약해지는 육체를 어쩔 수는 없는 법. 고령의 거장은 건강 문제로 연주를 취소하는 일이 잦다.

지난 6일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72·가운데)와 함께 한국 청중 앞에서 첫 듀오 연주를 선보이기로 했던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65)는 혼자 무대에 올라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을 연주했다. 칠순의 아르헤리치가 연주회를 열흘 남짓 남겨두고 지병인 저혈압 때문에 출연을 취소해서다. 공연은 일찌감치 전석 매진된 상태였다. 기획사 직원들은 예매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2000장이 넘는 듀오 공연 티켓을 환불하고, 첼로 독주회 티켓을 새로 판매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앞서 2월에는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72)가 시카고 심포니 내한 공연을 한 달도 남겨놓지 않은 상태에서 독감에 이은 탈장 수술로 출연 취소를 통보하는 바람에 로린 마젤(83·오른쪽)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2009년에는 빈필 아시아투어의 일환으로 한국을 찾을 예정이던 주빈 메타(77·왼쪽)가 건강 이상을 호소하며 무명의 신예 지휘자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계획이 조금 바뀌더라도 공연이 성사되면 다행. 완전히 취소되면 손해가 막심하다. 2012년 11월 처음 내한한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68)는 앞서 2010년 예정된 독주회 및 서울시향 협연 일정을 목전에 두고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며 모든 연주 계획을 백지화했다. 서울시향은 급히 대체할 협연자를 수소문해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을 간신히 무대에 세웠지만, 독주회를 준비했던 공연 기획사는 공연장 대관료, 광고비 등 미리 지출된 비용을 고스란히 날렸다.

이처럼 건강 문제로 예정된 연주가 어려울 경우, 계약서상 ‘불가항력으로 인한 취소’ 항목에 해당해 손해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초청자 입장에서는 위험 요소인 셈이다. 예정대로 입국했다고 해도 연주회가 끝나기 전까지는 안심하기 이르다. 2001년 런던필을 이끌고 내한한 쿠르트 마주어(86·당시 74)는 첫날 사라 장과의 협연을 마친 뒤 갑자기 이상 증세를 호소해 둘째 날 공연을 취소했다.

그러나 아무리 노심초사한들 연주회 당일의 컨디션은 장담할 수 없다. 그저 연주자의 심신이 가장 좋은 상태를 유지하도록 최대한 공을 들이는 방법밖에 없다. 거장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특급호텔 스위트룸과 최고급 승용차 제공, 리허설 및 공연 전의 맞춤 음식 준비는 기본이고, 그 밖의 까다로운 요구도 대부분 들어줘야 한다.

지난해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와 함께 내한했던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늘 살인적인 연주 일정을 소화하는데다 성격이 급해 공항에서부터 ‘퀵 서비스’를 요구했다. 입국 수속을 기다리지 않게 항공사와 공항에 사전 협조를 구하고, 공항 내에서 먼 거리를 이동할 경우 전기자동차를 준비해 달라는 요구도 더해졌다.

2011년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와 임진각에서 평화콘서트를 연 다니엘 바렌보임은 “공연 전에 반드시 갓 짜낸 오렌지주스를 마셔야 한다”고 못박아 기획사 직원이 주스를 구해와야 했다. 그러나 땀을 많이 흘리는 바렌보임은 예술의전당 공연시 냉방 온도를 낮춰달라는 거듭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더위가 느껴지자 돌연 퇴장해 10여분간 연주를 중단했다. 최근 공연을 취소한 아르헤리치는 자정 무렵의 늦은 밤에 연습하는 습관이 있어, 내한할 때마다 호텔에 양해를 구하고 방 안에 조용하게 연주 연습을 할 수 있는 ‘사일런트 피아노’를 설치해야 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과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가 외국 연주자를 초청할 때만 유난을 떠는 건 아니다. 최상의 음악을 듣기 위해 서비스를 다하는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는 만성적인 척추 질환과 파킨슨병을 앓는 지휘자 제임스 러바인이 서서 지휘하기 어려울 것으로 여겨지자, 전동 휠체어를 엘리베이터처럼 위로 올려주는 특수 지휘대를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사진 크레디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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