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기 마랭(62)의 작품 <총성>
마기 마랭 ‘총성’
한편의 재난영화 같은 공연
탈출구 없는 유럽 현실 담아
한편의 재난영화 같은 공연
탈출구 없는 유럽 현실 담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섬광처럼 빛이 비춘다. 지하 벙커 속 피난민 같기도 하고, 전쟁을 만난 어느 마을의 가족 같기도 한 사람들이 릴레이 하듯 접시를 주고받으며 옮긴다. 접시는 떨어져 산산조각난다. 모두가 긴장이 가득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본다. 다시 어둠이 몰려온다. 한 남자가 자유의 여신상 조각상을 옮기는데, 순간 남자는 넘어지고 조각상은 산산조각난다. 공연 내내 기괴한 기계음이 귀를 괴롭힌다. 사람들은 엄습하는 불안과 공포를 억누르는 듯 애써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려 애쓴다. 70분의 공연은 이렇게 한 편의 재난 영화 같기도 하고, 연극 같기도 한 모습으로 진행된다.
피나 바우슈와 함께 유럽 현대무용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프랑스의 마기 마랭(62)의 작품 <총성>(사진)이 다음달 5~7일 서울 역삼동 엘지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2003년 이후 10년 만의 방한이다.
그가 이번에 한국 무대에 올리는 <총성>은 2010년 프랑스 리옹에서 초연돼 “리옹 댄스 비엔날레를 뒤흔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탈출구를 찾을 수 없는 암울한 유럽의 현실을 소재로 삼았다고 한다.
마기 마랭은 1980년대 프랑스 현대무용의 새로운 물결인 ‘누벨 당스’(새로운 무용)를 이끈 주역이다. 누벨 당스는 연극적인 움직임과 다양한 시각적 매체와의 결합을 통해 21세기 유럽 무용의 대세로 자리잡았다. 그의 작품은 춤과 연극의 접목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독일 현대무용의 독특한 장르인 ‘탄츠테아터’(무용극)와 비교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평론가들은 마랭의 작품에 대해 “독일의 탄츠테아터에 대한 프랑스의 대답”이라는 평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탄츠테아터에 견줘 연극적 요소를 도입할 때 희곡·영화 등과의 연관성이 더 구체적이고, 작품을 풀어내는 방식이 더 자유분방하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메이 비>는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부조리극을 토대로 한 작품으로, 회칠한 얼굴의 무용수들이 녹초가 돼 발을 질질 끌며 걸어가는 동작으로 시작된다.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는 절망적이고 비틀거리는 인간들의 내면세계를 표현”한 현대무용의 대작으로 꼽힌다.
음악도 없고 기괴한 소리만이 난무하는 프랑스의 새로운 ‘혼종 예술’이 한국의 무용 팬들에게도 낯설지만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갈지 기대된다. (02)2005-0114.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엘지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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