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는 클래식 음악에도 새로운 실험을 가져오고 있다. 피아니스트 프란체스코 트리스타노(위)는 17세기 교회음악과 21세기 대중음악을 융합하는 시도를 선보인다.
클래식 음악계, 디지털 융합 시도
피아니스트 트리스타노 ‘재료실험’
17C 교회음악과 21C 테크노 섞어
피아니스트 랑랑 아이패드 연주 등
다양한 전달 방식의 실험도 이뤄져
관심끌기엔 성공…‘반짝 호응’ 우려
피아니스트 트리스타노 ‘재료실험’
17C 교회음악과 21C 테크노 섞어
피아니스트 랑랑 아이패드 연주 등
다양한 전달 방식의 실험도 이뤄져
관심끌기엔 성공…‘반짝 호응’ 우려
머리에 헤드폰을 낀 남자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고, 그 주위에 여러 대의 마이크가 달렸다. 남자는 피아노를 치는 틈틈이 옆에 놓인 신시사이저 건반과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면서 디제이(DJ)처럼 오디오 콘솔을 조작한다. 그러면 어쿠스틱 피아노로 연주한 바흐의 음악이 바로 전자 음향으로 바뀌거나 테크노 리듬과 섞여 연주회장에 울려 퍼진다.
6월19일 서울 역삼동 엘지아트센터에서 열리는 피아니스트 프란체스코 트리스타노(32) 독주회에서는 이처럼 아날로그와 디지털, 17세기 교회음악과 21세기 대중음악의 색다른 융합을 경험할 수 있다. 트리스타노는 지난해 9월 클래식 음반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롱 워크(Long Walk)’라는 제목의 앨범을 낸 뒤 세계 각지에서 투어 연주를 벌이고 있는데 국내 클래식 음악제 중 하나인 디토 페스티벌 연주자로 이번에 한국 청중을 찾게 됐다. 제목 ‘롱 워크’는 1705년 스무살 청년이었던 바흐가 존경하는 작곡가 북스테후데의 작품을 듣기 위해 독일 중부 튀링겐에서 400㎞ 떨어진 북부 뤼베크까지 편도 2주가 걸리는 도보 여행을 떠난 일화에서 나온 것이다. 이번 음악회에서는 바흐의 음악을 비롯해 바흐에게 영감을 준 북스테후데의 음악, 이들로부터 다시 영감을 받아 작곡한 트리스타노 자신의 음악을 전자 효과로 엮어낼 예정이다. 특별히 프랑스의 현대음악연구소 ‘이르캄’(IRCAM)의 엔지니어 요하임 올라야도 참여한다.
이같은 실험은, 디지털 시대를 맞은 클래식 음악계에서 시도되고 있는 주요한 실험 방향 중 하나인 ‘재료의 실험’이라 볼 수 있다. 음악을 만드는 재료에 디지털적 요소를 도입해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다. 트리스타노는 ‘롱 워크’에 앞서 2011년 디제이 겸 프로듀서 칼 크레이그와의 협업을 통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존 케이지의 음악을 디제잉으로 엮은 ‘바흐케이지(bachCage)’ 프로젝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디토 오디세이’ 무대에서 소개된 디제이 겸 작곡가 메이슨 베이츠의 <리퀴드 인터페이스>도 색다른 재료로 귀를 사로 잡았다. 베이츠는 일반적인 관현악에 더해 빙하가 갈라지는 소리,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새 울음소리 등 자연 음원과 전자 음향을 악기처럼 연주했다. 조명과 스크린을 이용해 관현악과 미디어 아트를 융합한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이와는 다른 ‘전달 방식의 실험’도 있다. 전통적인 음악 재료를 사용하되 디지털 시대의 신매체를 통해 청중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중국 출신의 피아니스트 랑랑은 201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데이비스 심포니홀 공연에서 앙코르 곡인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을 아이패드로 연주해 화제를 모았고, 2011년 우리나라 현악사중주단 콰르텟21은 태블릿 피시를 이용해 한국-미국간 실시간 원격 합주를 성공시켰다. 2009년 최초의 온라인 오케스트라로 창단한 유투브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유투브 동영상 오디션으로 전세계에서 단원을 선발한 뒤 카네기홀에서 데뷔 공연을 하기까지 모든 내용을 동영상으로 중계하며 관심을 고조시켰다.
이런 시도들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을 자극하는 데 상당한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음악적 실험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도 있다. 대부분 일회성, 혹은 단기성의 이벤트에 그치는 데에도 불구하고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데다가 반짝 호응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투브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2009년과 2011년 두 차례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공연을 마쳤지만, 동영상을 통한 오디션은 점점 식상해져갔고 ‘학생 음악 캠프랑 다를 게 뭐냐’는 비판은 늘었다. 다음 공연은 기약이 없는 상태이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사진 프란체스코 트리스타노·메이슨 베이츠 누리집
디제이 겸 작곡가 메이슨 베이츠(아래)는 자연 음원 등을 이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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