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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작품 풀어놓고 관객과 소통시키는 게 제 몫이죠”

등록 2013-06-13 19:44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역사는 김용주(오른쪽) 디자인 팀장의 입사 전후로 크게 갈라진다. 김 팀장이 그래픽 디자이너인 송혜민씨(왼쪽)와 함께 작업한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전도 전시디자인이 돋보인다. 과천/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역사는 김용주(오른쪽) 디자인 팀장의 입사 전후로 크게 갈라진다. 김 팀장이 그래픽 디자이너인 송혜민씨(왼쪽)와 함께 작업한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 전도 전시디자인이 돋보인다. 과천/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
[문화‘랑’]나도 문화인
④ 김용주 국립현대미술관 디자인 팀장
2011년 공간디자인 개념 첫도입
콘셉트 분명하되 보이지 않기
손대는 전시마다 화제 올라
세계 디자인상 ‘그랜드 슬램’ 눈앞

“미술작품은 ‘화이트 큐브’에 가둘 게 아니라 거기서 해방시켜야 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 디자인팀 김용주(34) 팀장의 주장은 파격적이다. 대부분의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일체의 색깔을 배제한 백색 상자 공간에 작품을 일정 간격으로 전시하는 현실을 넘어서자는 이야기다. 화이트 큐브 이론은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초대 관장인 알프레드 바(1902-1981)가 주장한 것으로, 작품을 그 자체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백색의 중립적인 공간에 작품을 전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60여년 전에 만들어져 세계 미술계를 지배해온 이론인데, 이제 미국 현지에서는 유연해졌는데도 우리는 아직 정답처럼 여기고 있다는 이야기다.

“마르셸 뒤샹이 이런 말을 했어요. ‘예술은 작가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감상자가 내적인 가치를 해석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 비로소 예술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고. 전시장에서의 소통이란 결국 전시공간과 관람자, 관람자와 작품, 작품과 작품의 관계를 당연히 고민해야죠. 그게 전시 디자이너의 몫입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간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설계사무소를 거쳐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전시디자이너로 근무하면서 ‘선비’ ‘소리’ ‘제주 허벅’ ‘박래욱 일기’ 등에서 디자이너로 두각을 드러냈다. 이후 미국 보스턴에 있는 피바디에섹스뮤지엄에서 현지의 디자인 실무를 익혔다. 2010년 귀국해 국립현대미술관에 입사한 그는 ‘메이드 인 팝랜드’(2010년 11월)를 시작으로 ‘올해의 작가 23인의 이야기’(2011년 8월) 전에서 비로소 색깔있는 공간 디자인 개념을 도입했다. ‘텔미텔미-한국 호주 현대미술’(2011), ‘무브’(2012), ‘한국의 단색화’(2012년 2월), ‘올해의 작가상 2012’(2012년 8월), ‘정기용 건축 아카이브’(2013 2월), ‘임충섭, 달 그리고 월인천지’(2013년 2월), ‘윤명로, 정신의 흔적’(2013년 4월) 등 그가 디자인한 전시들은 화제를 불렀다. 이 가운데 ‘한국의 단색화’는 세계 디자인계 주요상으로 꼽히는 레드닷(red dot) 디자인상을, ‘올해의 작가상 2012’는 아이에프(iF) 디자인상을 받았다. 아이디어(IDEA) 디자인상만 받으면 세계적인 3대 디자인상을 석권하게 된다. 전시 공간 디자인으로는 모두 국내에서 최초의 성과들이다.

(※클릭하면 이미지가 커집니다.)왼쪽부터 레드닷 디자인상을 수상한 ‘한국의 단색화’(2012년 2월), 아이에프 디자인상을 수상한 ‘올해의 작가상 2012’(2012월 8월), 현재 과천에서 열리고 있는 ‘정기용 아카이브’ 전시 모습.

처음에는 전시디자이너 신설에 반신반의했다. 전시디자인이 일반화된 국외 대형 미술관들과 달리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학예연구사들은 전시기획과 공간디자인, 공사감독까지 모두 맡아왔다. 이들은 본래의 기획일에 몰두할 수 있어 반겼지만, 전시디자인이 자신의 기획의도와 충돌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일각에서는 튀는 디자인으로 작품을 들러리로 만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학예사들한테서 기획의도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 느낌을 스케치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논의를 거듭하면서 점점 일치점을 찾아가죠. 초기에는 충돌이 많았어요. 학예사는 물론 작가들과도 그랬어요.”

의견이 합치하지 않을 때는 자기 의견을 접기도 하지만, 좋은 결과가 분명히 예상될 때는 일단 설치해 보고 ‘그래도 그건 아니다’ 싶으면 바꾸겠다며 상대를 설득했다. ‘임충섭, 달 그리고 월인천지’에서 작품들을 벽이 아닌 실내의 가설기둥에 걸어 관람객들이 작품 앞뒤를 오가며 감상할 수 있게 한 적이 있는데, 처음에는 작가가 반대했다가 막상 설치하고 보니 무척 좋아하더라고 했다.

전시가 거듭되면서 학예사들과는 믿고 맡기는 관계가 됐다.

“‘내 전시 예쁘게 해줘’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셔요. 그럴 때는 ‘우리 전시에요’라고 말씀드려요. 전시는 미술관의 꽃인데,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흙도 필요하고, 물도 줘야 하듯이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협력해야 완성도가 높아지죠. 실제로 재밌다는 반응을 얻은 전시는 갈등을 거치기보다 협력해서 만든 거더군요.”

그래픽 디자이너 송혜민씨와 한팀을 이룬 김 팀장이 꼽는 전시디자인의 첫째 덕목은 ‘콘셉트는 분명하되 디자인이 드러나지 않기’.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정도로 디자인을 단순화해 콘셉트에 올인한다는 것이다. 설정된 동선을 따라가면 관람자는 작품과 작품 간 관계를 지어가면서 전체의 맥을 짚어가게 된다. 현재 과천에서 열리고 있는 ‘윤명로’전과 ‘정기용 아카이브’전 역시 그 덕목을 따랐다.

윤명로전은 그의 화업을 10년 단위로 끊어 각각의 백색 작품 공간과 어두운 텍스트 공간을 병치해 연결했다. 관람자가 백색과 어둠의 공간을 오가며 나아가면, 작가가 수도자처럼 욕심을 내려놓아가는 60년 삶을 입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정기용 아카이브는 건축가가 남긴 2000장의 기록물을 선별한 전시. 전시장에는 두개의 길이 흐른다. 첫번째는 생의 여정에서 만나는 공간과 장소를 프로젝트 단위로 엮은 실제 동선. 두번째는 프로젝트별 공간들을 뚫어 기록물 컨베이어벨트를 통과시킨 연속 창. 관람자들이 다른 공간의 또다른 관객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든 시선의 길이다. 관객은 두개의 길에 서서 정기용이 열심히 살아간 사람임을 느끼고, 너와 나의 길 역시 누군가가 보게 될 흔적임을 성찰하게 된다. 4비(B) 흑연빛 공간과 천상처럼 밝은 추모의 공간이 대조를 이룬다.

김 팀장은 전통 한옥의 구조를 전시장으로 끌어들였다. 여러 공간을 거느린 안마당, 좁은 통로를 통해 이어지는 뜨락들, 창문 너머 또는 기둥과 기둥 사이로 외부풍경을 끌어들이는 차경 등이 그것. 그는 생각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철따라 48경을 연출하는 소쇄원을 떠올린다고 했다.

그는 11월 서울관 개관을 앞두고 기대반 걱정반이다. 과천과 달리 그곳 전시실의 층고는 5~7m에 이른다. 설치·조각작품이나 대형회화에 유리한 반면 크기가 작은 작품들은 소화하기 어렵기 때문. 부담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 팀장은 되레 다양한 공간을 경험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관객이 전시에 푹 빠져들었다가 나와서 문득 누가 공간을 디자인했지? 하고 생각나는, 그런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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