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클럽 ‘드럭’ 출신이자 ‘말 달리자’라는 곡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펑크록 밴드 크라잉넛. 최근 7집 ‘플레이밍 너츠’를 발표했다. 크라잉넛 공식 누리집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1998년 세상이 조울증 걸린 그때
“닥쳐!” 외침과 함께 나타나
세상에 대한 분노·저항을 노래했다 제 생각을 펼치는 법을 익힌 그들
7집서 고단한 이들을 응원해
데뷔 18년차의 위로가 묵직하다 노래가 지니는 정서적 힘은 강력해서, 어떤 노래들은 듣는 것만으로도 그 노래가 발표된 시대의 정경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이를테면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수지가 이제훈에게 들려준 전람회의 노래 ‘기억의 습작’이 1990년대 초반의 공기를 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 시대의 기억을 고스란히 호출해내는 이런 노래들을 우리는 흔히 ‘시대의 송가’라고 부른다. 최근 수년 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가, 나는 새삼 이제 막 30대에 도착한 내 또래 친구들의 송가는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가끔 너랑 같이 노래방 다니던 때 생각이 들더라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민망해서 부르고 싶은 곡을 못 부르게 되더라.” “그렇지. ‘말 달리자’ 같은 노래는 다들 일어나 뛰면서 불러야 하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하고 노래방 가서 그렇게 놀 수는 없으니 말이야.” 그랬다. 얼마나 많은 노래방 소파가 우리의 발밑에서 망가졌던가. 적어도 혈기방장한 우리에게 크라잉넛만큼 갈 곳 없는 울분을 해소시켜준 이들도 없었다. 세상 모든 10대들의 사춘기는 암울한 것이니 내 세대의 사춘기만 유독 더 암울했다고는 말할 수 없으리라. 나의 10대는 하필이면 아이엠에프(IMF) 사태가 전국을 덮친 시절이었고, 나와 내 친구들은 ‘열심히 하면 우린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위태로운 낙관과 ‘우린 이제 다 끝났다’는 세기말적 우울이 힘겨루기를 하는 꼴을 지켜보며 자랐다. 나라가 망한다는 것의 개념을 완벽하게 이해할 순 없어도, 옆집 사는 친구네 집이 망해 넘어가는 게 어떤 건지는 확실히 이해하게 된 것이다. 딱히 즐거울 일 하나 없던 그때, 우울한 우리 앞에 크라잉넛이 도착했다. 물론 그때의 우리는 클럽을 드나들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다. 상관없었다. 서울 홍대 클럽 ‘드럭’에서의 공연실황을 그대로 담은 뮤직비디오는 우리 모두를 크라잉넛의 광팬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살다 보면 그런 거지. 우후 말은 되지. 모두들의 잘못인가. 난 모두 다 알고 있지”라는, 짐짓 삶의 비의를 다 안다는 듯한 가사의 꼬리를 물고 터져나오는 “닥쳐!”라는 외침은 틀을 깨부수는 통쾌함이 있었다. 집단으로 조울증에 걸린 듯 어느 날은 희망을 말하고 다음날엔 좌절을 이야기하는 세상이 다 지긋지긋했던 우리에게, “이 쓰레기 같은 지구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달리는 것뿐이다. 무얼 더 바라랴”던 ‘말 달리자’의 가사는 그 자체로 해방구였다. 1995년 말에 탄생한 ‘말 달리자’는 그렇게 온 나라가 우울했던 1998년께에 전국을 뒤덮으며 크라잉넛의 존재를 알리고 시대의 송가가 되었다. 다음해 발매된 2집 <서커스 매직 유랑단>에서, 우리가 크라잉넛에 열광했던 이유는 좀더 명확해졌다. 그들은 단순히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저항만을 외치는 게 아니라, 슬픔에 힘을 실어 웃음으로 바꾸는 신묘한 재주를 구사하는 이들이었다. 요즘 말로 ‘웃픈’(웃기고도 슬픈) 청춘이었달까. “머리가 크다고 비웃는” 이들에게 “내 머리는 원래가 두 개”이니 “비웃지 마라”(‘신기한 노래’)라고 말하는 그들의 화법은 서러움을 웃음으로 돌파하는 매력이 있었다. 크라잉넛은 여전히 “도시의 불빛이 나를 중독”(‘더러운 도시’)시키는 세상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대면서도, “어차피 우리에게 내일은 없”으니까 “마음대로 춤을 추며 떠들어 보”(‘서커스 매직 유랑단’)자고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가진 것도 없고 내일도 없으니 오히려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으냐는 정서는 해학적이면서도 사뭇 도발적이었다. 도발의 끝은 잃을 것도 없는 청춘의 막막함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다 죽자’라는 트랙이었다. 크라잉넛은 ‘다 죽자’에서 “갈 곳 없는 외로운 천사”인 “우린 지금 눈을 감고 추락하고 있”으니, “모두 추락해서 지구를 박살내”자고 외친다. ‘다 죽자’는 파국의 제목과는 달리, 어둑어둑한 젊음이나마 세상과 정면으로 부딪쳐 세상을 부숴보자는 내용의 가사였던 셈이다. “우린 지금 모두 여기 다 죽자”는 가사와 “날아보자, 찢어진 나의 날개로”라는 가사가 등을 맞대고 있는 역설, 웃고 뛰고 발을 구르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노래들은 ‘말 달리자’의 성공이 요행이 아니란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1999년에 끝장이 난다던 세상은 망하지 않고 21세기를 맞이했고, 울분과 해학으로 20세기의 마지막을 뜨겁게 장식했던 크라잉넛 또한 3집부터는 다소 부드러워졌다. 그 전까지 세상에 대한 분노나 저항을 노래했다면, 어느 순간부터 그 세상을 자기 나름대로 살아가는 삶의 태도에 대해 노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세상은 “몽키스패너가 머리를 때”리는 곳이지만, 자신은 좌절하지 않고 “꽃이여 피거라. 꽃이여 터져라. 그대여 춤춰요”(‘양귀비’)라고 말하겠노라는 크라잉넛은 앞의 두 앨범보다는 더 차분해져 있었다. 비록 세상을 바꾸거나 박살내겠다곤 하지 않아도, 제 삶의 태도를 꺾지 않고 춤추고 노래하겠다는 크라잉넛은 분노하지 않고도 제 생각을 펼치는 법을 익혔다. 이런 태도는 “내가 크면 뭐가 될 건가? 알 수 없지 한치 앞길도. 어쨌거나 내 인생은 로큰롤 인생.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해. 내가 커도 변치 않을래. 작은 꿈들 잊지 않을래”(‘착한 아이’)라고 노래한 2009년 6집 <불편한 파티>까지 이어졌다. 삶의 태도를 꺾는 일 없이 성숙해진 그들의 여정은 6월 발매된 7집 <플레이밍 너츠>로 이어진다. 그리고 데뷔 18년차 밴드가 된 크라잉넛의 성숙은 때론 파격적으로 다가온다. ‘말 달리자’에서 “돈 많으면 성공하나?”라고 당돌하게 물었던 이상혁은 ‘기브 미 더 머니’에서 청자를 향해 외친다. “난 돈이 필요해! 롸잇 나우!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어찌 내가 할 일은 이다지도 없는지!” 취직도 안 되고 돈도 없어서 “등골 브레이커”로 전락해 “신념은 무너지고 가슴은 미어오”는 약자들의 울분을 블랙유머를 섞어 토해내는 이 트랙은 최소한의 행복조차 돈이 없으면 쟁취할 수 없다고 말하는 세상을 비웃는 동시에, 그 세상의 룰에 맞춰 사느라 허리가 휘어지는 이들의 고난을 근심한다. 파격은 한경록이 쓴 곡 ‘5분 세탁’에서도 이어진다. 한때 “모두 추락해서 지구를 박살내자”는 가사를 썼던 사람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무너져도 괜찮”으니 “죽는단 말 대신 웃는단 말을 해”보라고 권유하는 것은 얼핏 엄청난 변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 죽자’가 정말 죽자는 뜻이 아니라 세상과 부딪쳐 세상을 바꿔보자는 노래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리 이해 못할 변화는 아니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변화인지 모른다. 2011년, 비극적인 투신자살이 줄줄이 일어났던 카이스트로 공연을 간 크라잉넛은 “여러분 죽지 말라”는 멘트를 던진 뒤 ‘다 죽자’를 불렀다. 은유가 아니라 정말로 단체로 추락해 세상을 떠버리는 이들을 보면서, 크라잉넛은 어쩌면 보다 직설적으로 시대를 위로하는 곡이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이들의 위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잔뜩 주눅 들어 있는 이들에게, 크라잉넛은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작고 딱딱한 레고 조각”처럼 자기 자신이 “별 볼일 없”는 것 같아도, 언젠가 친구들을 만나 “서로 잘 끼워 맞춘다면 원하는 건 모든 것이 될 수 있”(‘레고’)다고 위로를 건넨다. “레고레고레고”를 반복하는 후렴이 계속 듣다 보면 “고래고래고래”처럼 들리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데, 작고 별 볼일 없는 이들이라도 연대해 힘을 합치면 ‘고래’처럼 거대한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응원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2010년 펴낸 책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크라잉넛은 “왜 꼭 철이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철드는 것’을 ‘얌전해지고 덜 재미있어지는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이들은 여전히 철이 없다. ‘레고’에서 이들은 고래 같은 거대한 꿈으로 “난 기차가 될래, 공룡이 될래, 슈퍼영웅이 될래”를 열거한다. 세상이 바라는 규범적인 밝은 미래와는 거리가 먼, 허무맹랑하고 천진한 욕망을 힘차게 외치는 것만 봐도 크라잉넛은 분명 아직 ‘철없는’ 사내들이다. 하지만 시대를 향해 이리도 듬직한 위로를 건넬 수 있는 게 철든 어른의 덕목이라면, 크라잉넛은 멋지게 철드는 데 성공한 듯 보인다. 지루하거나 고리타분해지는 일 없이.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닥쳐!” 외침과 함께 나타나
세상에 대한 분노·저항을 노래했다 제 생각을 펼치는 법을 익힌 그들
7집서 고단한 이들을 응원해
데뷔 18년차의 위로가 묵직하다 노래가 지니는 정서적 힘은 강력해서, 어떤 노래들은 듣는 것만으로도 그 노래가 발표된 시대의 정경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이를테면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수지가 이제훈에게 들려준 전람회의 노래 ‘기억의 습작’이 1990년대 초반의 공기를 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 시대의 기억을 고스란히 호출해내는 이런 노래들을 우리는 흔히 ‘시대의 송가’라고 부른다. 최근 수년 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가, 나는 새삼 이제 막 30대에 도착한 내 또래 친구들의 송가는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가끔 너랑 같이 노래방 다니던 때 생각이 들더라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민망해서 부르고 싶은 곡을 못 부르게 되더라.” “그렇지. ‘말 달리자’ 같은 노래는 다들 일어나 뛰면서 불러야 하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하고 노래방 가서 그렇게 놀 수는 없으니 말이야.” 그랬다. 얼마나 많은 노래방 소파가 우리의 발밑에서 망가졌던가. 적어도 혈기방장한 우리에게 크라잉넛만큼 갈 곳 없는 울분을 해소시켜준 이들도 없었다. 세상 모든 10대들의 사춘기는 암울한 것이니 내 세대의 사춘기만 유독 더 암울했다고는 말할 수 없으리라. 나의 10대는 하필이면 아이엠에프(IMF) 사태가 전국을 덮친 시절이었고, 나와 내 친구들은 ‘열심히 하면 우린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위태로운 낙관과 ‘우린 이제 다 끝났다’는 세기말적 우울이 힘겨루기를 하는 꼴을 지켜보며 자랐다. 나라가 망한다는 것의 개념을 완벽하게 이해할 순 없어도, 옆집 사는 친구네 집이 망해 넘어가는 게 어떤 건지는 확실히 이해하게 된 것이다. 딱히 즐거울 일 하나 없던 그때, 우울한 우리 앞에 크라잉넛이 도착했다. 물론 그때의 우리는 클럽을 드나들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다. 상관없었다. 서울 홍대 클럽 ‘드럭’에서의 공연실황을 그대로 담은 뮤직비디오는 우리 모두를 크라잉넛의 광팬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살다 보면 그런 거지. 우후 말은 되지. 모두들의 잘못인가. 난 모두 다 알고 있지”라는, 짐짓 삶의 비의를 다 안다는 듯한 가사의 꼬리를 물고 터져나오는 “닥쳐!”라는 외침은 틀을 깨부수는 통쾌함이 있었다. 집단으로 조울증에 걸린 듯 어느 날은 희망을 말하고 다음날엔 좌절을 이야기하는 세상이 다 지긋지긋했던 우리에게, “이 쓰레기 같은 지구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달리는 것뿐이다. 무얼 더 바라랴”던 ‘말 달리자’의 가사는 그 자체로 해방구였다. 1995년 말에 탄생한 ‘말 달리자’는 그렇게 온 나라가 우울했던 1998년께에 전국을 뒤덮으며 크라잉넛의 존재를 알리고 시대의 송가가 되었다. 다음해 발매된 2집 <서커스 매직 유랑단>에서, 우리가 크라잉넛에 열광했던 이유는 좀더 명확해졌다. 그들은 단순히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저항만을 외치는 게 아니라, 슬픔에 힘을 실어 웃음으로 바꾸는 신묘한 재주를 구사하는 이들이었다. 요즘 말로 ‘웃픈’(웃기고도 슬픈) 청춘이었달까. “머리가 크다고 비웃는” 이들에게 “내 머리는 원래가 두 개”이니 “비웃지 마라”(‘신기한 노래’)라고 말하는 그들의 화법은 서러움을 웃음으로 돌파하는 매력이 있었다. 크라잉넛은 여전히 “도시의 불빛이 나를 중독”(‘더러운 도시’)시키는 세상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대면서도, “어차피 우리에게 내일은 없”으니까 “마음대로 춤을 추며 떠들어 보”(‘서커스 매직 유랑단’)자고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가진 것도 없고 내일도 없으니 오히려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으냐는 정서는 해학적이면서도 사뭇 도발적이었다. 도발의 끝은 잃을 것도 없는 청춘의 막막함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다 죽자’라는 트랙이었다. 크라잉넛은 ‘다 죽자’에서 “갈 곳 없는 외로운 천사”인 “우린 지금 눈을 감고 추락하고 있”으니, “모두 추락해서 지구를 박살내”자고 외친다. ‘다 죽자’는 파국의 제목과는 달리, 어둑어둑한 젊음이나마 세상과 정면으로 부딪쳐 세상을 부숴보자는 내용의 가사였던 셈이다. “우린 지금 모두 여기 다 죽자”는 가사와 “날아보자, 찢어진 나의 날개로”라는 가사가 등을 맞대고 있는 역설, 웃고 뛰고 발을 구르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노래들은 ‘말 달리자’의 성공이 요행이 아니란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1999년에 끝장이 난다던 세상은 망하지 않고 21세기를 맞이했고, 울분과 해학으로 20세기의 마지막을 뜨겁게 장식했던 크라잉넛 또한 3집부터는 다소 부드러워졌다. 그 전까지 세상에 대한 분노나 저항을 노래했다면, 어느 순간부터 그 세상을 자기 나름대로 살아가는 삶의 태도에 대해 노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세상은 “몽키스패너가 머리를 때”리는 곳이지만, 자신은 좌절하지 않고 “꽃이여 피거라. 꽃이여 터져라. 그대여 춤춰요”(‘양귀비’)라고 말하겠노라는 크라잉넛은 앞의 두 앨범보다는 더 차분해져 있었다. 비록 세상을 바꾸거나 박살내겠다곤 하지 않아도, 제 삶의 태도를 꺾지 않고 춤추고 노래하겠다는 크라잉넛은 분노하지 않고도 제 생각을 펼치는 법을 익혔다. 이런 태도는 “내가 크면 뭐가 될 건가? 알 수 없지 한치 앞길도. 어쨌거나 내 인생은 로큰롤 인생.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해. 내가 커도 변치 않을래. 작은 꿈들 잊지 않을래”(‘착한 아이’)라고 노래한 2009년 6집 <불편한 파티>까지 이어졌다. 삶의 태도를 꺾는 일 없이 성숙해진 그들의 여정은 6월 발매된 7집 <플레이밍 너츠>로 이어진다. 그리고 데뷔 18년차 밴드가 된 크라잉넛의 성숙은 때론 파격적으로 다가온다. ‘말 달리자’에서 “돈 많으면 성공하나?”라고 당돌하게 물었던 이상혁은 ‘기브 미 더 머니’에서 청자를 향해 외친다. “난 돈이 필요해! 롸잇 나우!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데 어찌 내가 할 일은 이다지도 없는지!” 취직도 안 되고 돈도 없어서 “등골 브레이커”로 전락해 “신념은 무너지고 가슴은 미어오”는 약자들의 울분을 블랙유머를 섞어 토해내는 이 트랙은 최소한의 행복조차 돈이 없으면 쟁취할 수 없다고 말하는 세상을 비웃는 동시에, 그 세상의 룰에 맞춰 사느라 허리가 휘어지는 이들의 고난을 근심한다. 파격은 한경록이 쓴 곡 ‘5분 세탁’에서도 이어진다. 한때 “모두 추락해서 지구를 박살내자”는 가사를 썼던 사람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무너져도 괜찮”으니 “죽는단 말 대신 웃는단 말을 해”보라고 권유하는 것은 얼핏 엄청난 변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 죽자’가 정말 죽자는 뜻이 아니라 세상과 부딪쳐 세상을 바꿔보자는 노래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리 이해 못할 변화는 아니다. 아니, 어쩌면 당연한 변화인지 모른다. 2011년, 비극적인 투신자살이 줄줄이 일어났던 카이스트로 공연을 간 크라잉넛은 “여러분 죽지 말라”는 멘트를 던진 뒤 ‘다 죽자’를 불렀다. 은유가 아니라 정말로 단체로 추락해 세상을 떠버리는 이들을 보면서, 크라잉넛은 어쩌면 보다 직설적으로 시대를 위로하는 곡이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이들의 위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잔뜩 주눅 들어 있는 이들에게, 크라잉넛은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작고 딱딱한 레고 조각”처럼 자기 자신이 “별 볼일 없”는 것 같아도, 언젠가 친구들을 만나 “서로 잘 끼워 맞춘다면 원하는 건 모든 것이 될 수 있”(‘레고’)다고 위로를 건넨다. “레고레고레고”를 반복하는 후렴이 계속 듣다 보면 “고래고래고래”처럼 들리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데, 작고 별 볼일 없는 이들이라도 연대해 힘을 합치면 ‘고래’처럼 거대한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응원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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