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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콩 한쪽도 나눠먹는 집주인이 떴다

등록 2013-07-11 19:32수정 2013-07-12 17:02

최근 연우소극장의 객석을 가득 채우며 화제가 되고 있는 연극 <여기가 집이다>. 고시텔 세입자들은 고교생 집주인 동교의 제안으로 매일 함께 밥을 먹으며 잃어버렸던 이웃간의 정과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되찾아간다. 극단 이와삼 제공
최근 연우소극장의 객석을 가득 채우며 화제가 되고 있는 연극 <여기가 집이다>. 고시텔 세입자들은 고교생 집주인 동교의 제안으로 매일 함께 밥을 먹으며 잃어버렸던 이웃간의 정과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되찾아간다. 극단 이와삼 제공
연극 ‘여기가 집이다’

1인 가구 사는 변두리 고시텔
“월세 안 받겠다”는 주인 등장
흩어졌던 가족 모여들어 활기
‘집’의 의미 뭔지 유쾌하게 풀어
최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나 홀로 사는 ‘1인 가구’ 수는 414만가구(2010년 기준)로, 전체 가구의 23.9%로 나타났다. 4가구 중 1가구가 혼자 살고 있는 셈이다. 전문직 고소득 독신자가 늘어난 탓도 있겠지만, 심각한 청년 실업과 자녀 양육, 주택 마련 등의 부담에 따른 결혼 기피 현상, 이혼, 고령화 등 우리의 허약한 사회구조의 영향일 것이다.

서울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공연중인 극단 이와삼의 연극 <여기가 집이다>는 양극화에 밀려나 낡은 고시텔에 모여든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1인 가구’의 고민을 진솔하게 내보인다. 그들이 오매불망 고시텔에 벗어나려고 목표로 삼는 ‘집’의 진정한 의미와 ‘가족’의 정의, ‘더불어 삶’의 가치 같은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서울 변두리에 20년 묵은 ‘갑자 고시텔’이 있다. 퇴직 경찰공무원인 50대 후반 장씨, 맞벌이로 아내와 떨어져 사는 40대 초반 양씨, 술주정과 가정폭력 탓에 아내가 도망간 50대 중반 최씨,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30대 청년실업자 영민 등의 집합소이다. 이들은 몸뚱이 하나 뉠 정도의 좁은 단칸방에서 사글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내 집을 마련해서 가족과 만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어느 날 이 고시텔에 새로운 주인인 20살 늦깎이 고등학생 동교가 찾아온다. 몇달 전 미국에 사는 아들네 집에 간다고 떠났던 주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손자인 동교가 고시텔을 물려받은 것. 그런데 동교는 오자마자 “월세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고시텔이 내 집이고 나는 이 집의 가장이기 때문에 가족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또 “같이 밥을 먹고, 생활비도 같이 충당하며, 고시텔에서 살림을 하는 사람에게는 월급까지 주겠다”고 한다. 처음엔 고시텔 입주자들은 동교의 황당한 선언에 당황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고시텔은 활기가 넘치고 흩어졌던 그들의 가족이 모여든다.

연극은 무거운 주제를 건드리면서도 다양한 군상들의 눈물겨운 사연과 황당한 사건들이 이어져 공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가난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서민들의 건강함을 보여준다. 연우소극장이 대학로 변두리인 혜화동로터리 언덕에 위치한데다 객석마저 좁고 불편해도 입소문을 타면서 연일 만원이다.

이 연극의 매력은 우리 사회의 가장 대표적인 ‘갑을 관계’인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를 유쾌하게 전복시킨다는 점. 또한 산업화와 물질주의, 속도의 경쟁으로 점점 희박해지고 있는 ‘가족’ 또는 ‘더불어 삶’이라는 공동체적 가치의 환원을 이야기한다. 극중에서 독거노인 장씨가 “가장 큰 적은 바로 정(情)이다. 도와주지 마. 도움받지도 말고. 힘을 길러!”라고 반발하자, 동교는 “우리는 진짜 우리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고 살아요”라고 대꾸한다.

집주인 동교의 ‘황당한 행각’이 너무 비현실적이라거나, 존재할 수 없는 ‘현대판 실낙원’을 그린 듯하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실제 동교는 생텍쥐페리 소설의 주인공 ‘어린 왕자’를 닮았다. 작품을 쓰고 연출한 장우재씨는 “가짜 희망이라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부제도 ‘가짜 희망을 위하여’다. 현실에서 더 이런 희망이 절실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부각시킨다.

공연은 충실한 현장 조사로 실제 쪽방촌과 고시텔을 옮겨놓은 듯한 사실적인 무대가 극의 현실감을 느끼게 한다. 장씨 역의 장성익씨를 비롯한 배우 10명의 앙상블, 공연 내내 웃음을 양산해내는 양씨 부부 역의 한동규씨와 백지원씨, 어린 아들을 잃어버리고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여인을 섬세한 내면 연기로 보여준 최씨 부인 역의 박무영씨가 돋보인다. 21일까지, (02)3676-3676.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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