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천 필, 창단 25돌 ‘브루크너 전곡 시리즈’ 공연
올해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부천 필)이 창단 25돌을 맞았다.
지난 1988년 4월6일 수도권의 중소도시인 경기도 부천에서 정단원 5명만으로 초라하게 출발한 부천 필은 이듬해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인 36살의 젊은 지휘자 임헌정(60)씨를 영입한 뒤 지난 4반 세기 동안 기념비적인 연주를 선보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로 성장했다. 부천 필은 창단 3년 만인 1991년 모차르트(1756~1791)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를 시작으로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교향곡> 전곡 연주(1999~2003년), 베토벤(1770년~1827) <교향곡> 전곡 연주(2003년), 브람스(1833~1897) <교향곡> 전곡 연주(2010년), 슈만(1810~1856) <교향곡> 전곡 연주(2010년) 등으로 전국 곳곳에 부사모(부천 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퍼뜨렸다. 특히 국내 클래식 팬들에게도 생소한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국내 오케스트라로는 최초로 연주하며 ‘말러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아직도 많은 ‘말러리안’들은 임헌정 지휘자가 2000년 11월 <교향곡 제3번> 연주회와 2002년 11월 <교향곡 제7번> 연주회에서 갑작스런 건강악화에도 불구하고 의자에 앉아서 끝내 지휘봉을 놓지 않았던 감격스런 연주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부천 필은 또 2007년 11월부터 오스트리아 출신의 후기 낭만파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1824~1896)의 미완성 <교향곡 제9번> 연주를 시작으로 지난 6년간 <교향곡> 9곡 전곡 연주의 대장정을 펼쳐오고 있다. 따라서 오는 24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브루크너 <교향곡 제8번> 연주는 ‘브루크너 전곡 시리즈’의 피날레 무대이자 부천 필의 창단 25돌을 자축하는 음악축제이다.
연주를 앞둔 임헌정 지휘자는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금방 친해질 수는 없지만 사귈수록 더 정감이 가는 친구 같은 작품”이라며 “처음에는 밋밋하지만 자주 듣다 보면 빠져든다”고 그 매력을 설명했다. “6년간 ‘브루크너 전곡 시리즈’를 이어오면서 육제척으로 힘든 것은 없지만 브루크너의 음악이 워낙 국내에 생소하기 때문에 친하게 지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털어놓았다.
이날 음악회는 ‘피날레, 사운드 프롬 헤븐(Finale, Sound from Heaven)’이라는 부제를 달 만큼 연주곡인 <교향곡 제8번>은 브루크너가 음악활동 절정기에 발표한 작품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평생을 음악과 신앙생활에 바쳐온 그가 마지막으로 완성한 교향곡이다. 예순을 넘겨서야 비로소 ‘교향곡 작곡가’로 인정받은 부르크너는 1884년 초연된 <교향곡 제7번>의 대성공에 힘입어 그해 작곡에 들어가 4년간의 작곡과 2년 반의 개정 작업을 거쳐서 6년 만에 완성했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에 그는 환갑을 넘긴 나이로 육신의 쇠약을 절감하고 있었고, 존경했던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와 프란츠 리스트(1811~1886)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그 때문이었는지 이 교향곡에는 전반적으로 비장하면서 종교적인 신비감과 명상적인 기운이 감돈다.
브루크너는 6년간의 작업 끝에 자신이 가장 사랑한 대작을 완성한 뒤 존경하던 지휘자 헤르만 레비(1839~1900)에게 새 교향곡의 악보를 보내면서 “할렐루야! 드디어 <교향곡 제8번>을 완성했습니다!”라고 썼다. 이 교향곡은 1892년 브루크너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당대의 명지휘자 한스 리히터(1843~1916)가 이끄는 빈 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지휘로 빈에서 초연되었고,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헌정되었다. 빈 필의 상임지휘자(1875~1898년)를 지냈던 한스 리히터는 브람스의 <교향곡 제3번> 초연(1835년),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 전곡 초연(1876년),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초연(1881) 등을 이끈 19세기 최고 지휘자의 한 사람이었다.
24일 부천 필의 연주회에는 연주자 95명(정단원 75명, 객원 20명)에 연주시간만 1시간20분이 걸리는 대작이다. 또한 관악기 구성도 플루트와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파고토 3대씩, 트롬본과 트럼펫, 호른 4대씩, 하프 2대, 튜바 1대, 콘트라파고트 1대로 이뤄지는 3관 대편성에 특이한 바그너 튜바 4대가 추가된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8번>의 매력은 장대한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연주시간이 25분이나 되는 3악장은 누구나 인정하는 가장 아름다운 아다지오 선율에 하프 연주가 곁들여서 ‘천상의 하모니’라고 하죠. 이런 음악 세계를 자꾸 연주하고 사람들이 듣고 마음이 정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임헌정 지휘자는 “저도 연주를 하면서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릴 때가 있다. 그런 마음이 청중들에게 전달되고 같이 공감했을 때 전율을 느끼는 것이 진정한 예술행위”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말러리안’처럼 ‘브루크너 신드롬’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너무 자극적이고 표피적인데 좋은 음악을 통해 위로받고 남과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임 지휘자는 내년 말 “젊은 시절을 다 바쳤다”는 부천 필을 떠날 예정이다. 부천시가 1년 단위 위촉직이었던 부천 필의 상임지휘자의 임기를 2년 전에 3년 계약직으로 조례를 바꿨기 때문이다. 그는 “내년 12월 31일 계약이 끝나면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나를 믿고 따라서 열심히 연습해준 부천 필 단원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동안 음악적으로 많은 것을 했고, 그 전통과 정신이 살아서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제는 부천 필이 한 단계 더 올라갈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시와 시의회의 교감과 이해, 전용 콘서트홀 건립, 예산 지원 등이 필수적이죠. 그런 뒷받침이 있어야 좋은 지휘자와 단원들을 확보할 수 있어요. 저는 떠나지만 제 젊음을 다 바친 부천필에 어떤 방법이든 끝까지 지원할 것입니다.”
그와 부천 필의 ‘브루크너 전곡 시리즈’는 끝나지 않았다. 최근 예술의전당이 내년 11월부터 2016년까지 진행하는 ‘위대한 작곡가 시리즈’에 초청한 것. 그와 부천 필은 <교향곡 제7번>을 시작으로 1년에 4곡씩 9차례 연주로 ‘브루크너 전곡 시리즈’의 문을 다시 연다. (02)580-1300.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사진 부천시립예술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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