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훈 마스터링 감독이 23일 서울 삼성동 소닉코리아 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있다. 그는 시디(CD)를 찍기 전 마지막 단계인 마스터링 작업을 통해 음악의 색깔과 감성을 극대화한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문화‘랑’] 나도 문화인
⑩ 전훈 마스터링 감독
⑩ 전훈 마스터링 감독
믹싱 끝난 음악 마지막 다듬어
음악 색깔 파악해 감성 극대화
국내 음반 절반이 그의 손 거쳐
외국서도 마스터링 의뢰 급증 “워낙 순간적으로 집중해서
작업 끝나면 기 다 빠져나가” 음반 속지를 보면 ‘크레디트’란 게 있다.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은 곳이다. 가요 음반 크레디트를 보면 유독 눈에 많이 띄는 이름이 있다. 소닉코리아 스튜디오의 전훈(43) 마스터링 감독이다. 마스터링은 음반에 담기는 소리를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작업을 말한다. 국내 주요 음반의 절반 이상이 전 감독의 손을 거친다. 한 장의 음반이 나오기까지 과정을 간략히 설명하면 이렇다. 먼저 녹음을 한다. 옛날에야 모든 연주자들이 한방에 들어가 한꺼번에 연주하고 녹음했지만, 요새는 악기마다 따로 녹음한다. 이렇게 녹음한 여러 소리를 하나로 합치는 게 믹싱이다. 개별 소리 음량을 조절해 전체적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믹싱을 마친 음악을 시디(CD)에 담기 직전 마지막으로 다듬는 게 마스터링이다. 쉽게 말하면 저음·중음·고음 등 음역대별 음량을 조절하는 이퀄라이저를 매우 정교하게 매만지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엘피(LP) 시대에는 마스터링이 곡을 자르고 배열하는 수준이었어요. 그런데 디지털화된 시디로 넘어오면서 마스터링이 소리를 최종 교정하는 작업으로 확장됐어요. 국내에선 1990년대 중반에야 비로소 마스터링 개념이 정착되기 시작했죠.” 전 감독은 학창시절 밴드 활동을 했다. 고등학생 때는 헤비메탈 밴드에서 보컬과 기타를 맡아 서울 종로 파고다예술극장에서 공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 뒤 일본으로 음향 엔지니어 공부를 하러 갔다가 마스터링의 세계에 매료되고 말았다. 5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1996년 귀국한 그는 연주자 대신 마스터링 전문가의 길을 택했다. 초창기에는 국내 주요 음반의 70~80%를 맡을 정도로 일이 몰렸지만, 이후 마스터링 전문가가 3~4명 더 생겨 요즘은 50%가량을 작업하고 있다. “예전에는 마스터링 ‘엔지니어’나 ‘기사’로 불렸어요. 단순한 기술자의 개념이 강했던 거죠. 하지만 컴퓨터로 음악을 만드는 작업이 일반화되면서 마스터링 때 새로운 느낌을 입힐 수 있는 여지가 늘었어요. 마스터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곡의 색깔과 분위기가 확 바뀌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기술자가 아니라 아티스트라는 의미로 기사 대신 ‘감독’이라는 호칭을 쓰죠.”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댄스 곡의 경우에는 더욱 힘차고 신나는 느낌을 주기 위해 비트가 있는 음역대의 음량과 음압을 더 높인다. 사랑 노래는 더 화사하고 사랑스럽게 만들고, 이별 노래는 더 슬프게 만든다. “음악의 색깔을 파악해 감성적인 부분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작업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 감독은 설명했다. 그는 스튜디오에서 3억~4억원 하는 고가의 장비와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며 작업한다. “음악을 들었을 때 첫 느낌을 중시하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작업하는 편이다. 작업에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지만, 순간적으로 집중해서 일하고 나면 기가 다 빠져나가 무척 피곤해진다”고 그는 말했다. 한달에 보통 30~40장의 앨범을 작업하는 전 감독은 최상의 컨디션과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빨간 날’은 무조건 쉰다. 밤샘 작업도 하지 않는다. 다음날 작업을 위해 평일에는 술도 입에 대지 않는다. “매번 다른 음반을 작업하는데,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상태로 임한다면 음악을 만든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제 이름을 걸고 하는 프로라면 늘 일정한 수준을 유지해야 합니다.” 요즘은 국내 음반도 미국·영국 등 외국에서 마스터링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거꾸로 일본·중국·대만 등에서 한국으로 마스터링을 의뢰하는 경우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전 감독은 “우리 마스터링 수준이 아시아에서 최고라고 자부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마스터링 수준을 끌어올린 공을 인정받아 그는 올해 초 열린 2회 가온차트 케이팝 어워드에서 올해의 실연자 엔지니어 부문 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최근 음악 환경 변화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아무리 공들여 최상급 음원을 만들어도 이를 압축한 엠피3 파일로 들으면 참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엠피3가 편하긴 해도 시디로 들으면 감동 자체가 달라요. 시간이 갈수록 영상은 더 좋은 쪽으로 발전하는데, 왜 소리는 더 안 좋은 쪽으로 가는지 모르겠어요. 그나마 요즘 일부 음원 사이트들 중심으로 무손실 음원 엠큐에스(MQS·마스터링 퀄리티 사운드) 서비스가 나와서 다행입니다. 디지털 음원도 이제 고음질로 가는 게 세계적 흐름이죠.” 국내 음악 산업에서 대기업 유통사가 챙기는 몫에 비해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터무니없이 적은 현실에 대해서도 안타까워했다. “창작자의 경제적 상황이 열악해지니 제작비를 줄이게 되고 이는 음반의 질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들도 손해를 보게 되는 거지요. 이런 때일수록 창작자는 사람들이 소장하고 싶어할 만한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소비자도 이런 노력을 이해하고 계속해서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있도록 투자하는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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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색깔 파악해 감성 극대화
국내 음반 절반이 그의 손 거쳐
외국서도 마스터링 의뢰 급증 “워낙 순간적으로 집중해서
작업 끝나면 기 다 빠져나가” 음반 속지를 보면 ‘크레디트’란 게 있다.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은 곳이다. 가요 음반 크레디트를 보면 유독 눈에 많이 띄는 이름이 있다. 소닉코리아 스튜디오의 전훈(43) 마스터링 감독이다. 마스터링은 음반에 담기는 소리를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작업을 말한다. 국내 주요 음반의 절반 이상이 전 감독의 손을 거친다. 한 장의 음반이 나오기까지 과정을 간략히 설명하면 이렇다. 먼저 녹음을 한다. 옛날에야 모든 연주자들이 한방에 들어가 한꺼번에 연주하고 녹음했지만, 요새는 악기마다 따로 녹음한다. 이렇게 녹음한 여러 소리를 하나로 합치는 게 믹싱이다. 개별 소리 음량을 조절해 전체적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믹싱을 마친 음악을 시디(CD)에 담기 직전 마지막으로 다듬는 게 마스터링이다. 쉽게 말하면 저음·중음·고음 등 음역대별 음량을 조절하는 이퀄라이저를 매우 정교하게 매만지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엘피(LP) 시대에는 마스터링이 곡을 자르고 배열하는 수준이었어요. 그런데 디지털화된 시디로 넘어오면서 마스터링이 소리를 최종 교정하는 작업으로 확장됐어요. 국내에선 1990년대 중반에야 비로소 마스터링 개념이 정착되기 시작했죠.” 전 감독은 학창시절 밴드 활동을 했다. 고등학생 때는 헤비메탈 밴드에서 보컬과 기타를 맡아 서울 종로 파고다예술극장에서 공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 뒤 일본으로 음향 엔지니어 공부를 하러 갔다가 마스터링의 세계에 매료되고 말았다. 5년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1996년 귀국한 그는 연주자 대신 마스터링 전문가의 길을 택했다. 초창기에는 국내 주요 음반의 70~80%를 맡을 정도로 일이 몰렸지만, 이후 마스터링 전문가가 3~4명 더 생겨 요즘은 50%가량을 작업하고 있다. “예전에는 마스터링 ‘엔지니어’나 ‘기사’로 불렸어요. 단순한 기술자의 개념이 강했던 거죠. 하지만 컴퓨터로 음악을 만드는 작업이 일반화되면서 마스터링 때 새로운 느낌을 입힐 수 있는 여지가 늘었어요. 마스터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곡의 색깔과 분위기가 확 바뀌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기술자가 아니라 아티스트라는 의미로 기사 대신 ‘감독’이라는 호칭을 쓰죠.”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댄스 곡의 경우에는 더욱 힘차고 신나는 느낌을 주기 위해 비트가 있는 음역대의 음량과 음압을 더 높인다. 사랑 노래는 더 화사하고 사랑스럽게 만들고, 이별 노래는 더 슬프게 만든다. “음악의 색깔을 파악해 감성적인 부분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작업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 감독은 설명했다. 그는 스튜디오에서 3억~4억원 하는 고가의 장비와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며 작업한다. “음악을 들었을 때 첫 느낌을 중시하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작업하는 편이다. 작업에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지만, 순간적으로 집중해서 일하고 나면 기가 다 빠져나가 무척 피곤해진다”고 그는 말했다. 한달에 보통 30~40장의 앨범을 작업하는 전 감독은 최상의 컨디션과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빨간 날’은 무조건 쉰다. 밤샘 작업도 하지 않는다. 다음날 작업을 위해 평일에는 술도 입에 대지 않는다. “매번 다른 음반을 작업하는데,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상태로 임한다면 음악을 만든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제 이름을 걸고 하는 프로라면 늘 일정한 수준을 유지해야 합니다.” 요즘은 국내 음반도 미국·영국 등 외국에서 마스터링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거꾸로 일본·중국·대만 등에서 한국으로 마스터링을 의뢰하는 경우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전 감독은 “우리 마스터링 수준이 아시아에서 최고라고 자부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마스터링 수준을 끌어올린 공을 인정받아 그는 올해 초 열린 2회 가온차트 케이팝 어워드에서 올해의 실연자 엔지니어 부문 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최근 음악 환경 변화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아무리 공들여 최상급 음원을 만들어도 이를 압축한 엠피3 파일로 들으면 참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엠피3가 편하긴 해도 시디로 들으면 감동 자체가 달라요. 시간이 갈수록 영상은 더 좋은 쪽으로 발전하는데, 왜 소리는 더 안 좋은 쪽으로 가는지 모르겠어요. 그나마 요즘 일부 음원 사이트들 중심으로 무손실 음원 엠큐에스(MQS·마스터링 퀄리티 사운드) 서비스가 나와서 다행입니다. 디지털 음원도 이제 고음질로 가는 게 세계적 흐름이죠.” 국내 음악 산업에서 대기업 유통사가 챙기는 몫에 비해 창작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터무니없이 적은 현실에 대해서도 안타까워했다. “창작자의 경제적 상황이 열악해지니 제작비를 줄이게 되고 이는 음반의 질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들도 손해를 보게 되는 거지요. 이런 때일수록 창작자는 사람들이 소장하고 싶어할 만한 음악을 만들어야 하고, 소비자도 이런 노력을 이해하고 계속해서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있도록 투자하는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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