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대한음악사는 외국에서도 쉽게 찾기 힘든 악보도 척척 구해내 음악인들 사이에서는 ‘도깨비 창고’로 불린다. 7월30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음악사 명동 본점에서 신원석 대표(가운데), 양혜경 실장(왼쪽), 직원 김의수씨가 악보를 꺼내 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문화‘랑’] 나도 문화인
⑪ 대한음악사 신원석 대표
⑪ 대한음악사 신원석 대표
클래식 음악가들의 ‘숨은 산실’
51년 역사 매장, 아버지 이어 운영
“이곳에 없으면 국내에 없는 것” 유럽에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김선욱(25)씨는 부모가 맞벌이 교사여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서울 명동에 있는 대한음악사 본사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는 몇년 전 인터뷰에서 “용돈이 차곡차곡 모일 때마다 대한음악사로 달려가 악보를 사모으면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와 지휘자의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그가 2006년 18살의 나이에 동양인 최초로 세계 3대 피아노콩쿠르로 꼽히는 영국 리즈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데는 어릴 적 대한음악사에서 보냈던 시간이 자양분이 되었다. 프랑스를 근거지로 세계무대를 누비고 있는 중견 피아니스트 백건우(67)씨도 고국을 방문할 때마다 서울 서초동의 대한음악사 예술의전당 분점에 들러 악보를 사가곤 한다. 원로 지휘자 홍영택(1928~2001)·김만복(88)씨를 비롯해 소프라노 김자경(1917~1999)·이규도(73), 작곡가 백병동(77), 지휘자 금난새(66), 피아니스트 김대진(51)씨 등도 오랜 단골이었다. 최근에는 일본의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62)와 한국계 미국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35) 등도 새로운 고객이 되었다. 지금도 1960~70년대에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음악도들은 일본강점기에 지어진 명동의 6층짜리 허름한 매장에서 머리가 허연 노인이 먼지 풀풀 풍기면서 악보를 찾는 모습을 기억한다. 그 시절 음악도들 사이에서 ‘베토벤 할아버지’로 불렸던 고 신재복(1924~2011)씨다.
양혜경(38) 대한음악사 실장은 “외국에서 오래 살다가 고국을 방문하는 분들이 가끔 들러서 아직도 대한음악사가 있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곤 한다”며 “돌아가신 신재복 사장님을 회고하면서 직원들에게 옛 일화를 들려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 반세기 클래식 음악인들의 산실이었던 대한음악사의 역사는 2011년 3월 타계한 고 신재복씨가 1962년 1월 지금의 명동 로얄호텔 앞에서 클래식 악보와 음악서적 전문 매장을 열면서 시작됐다. 외국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에 클래식 음악 전공자나 클래식 마니아들은 외국에서 구해야만 했던 귀한 악보들을 찾으려고 이곳을 드나들었다. 당시 이곳에 없는 악보는 국내에서 구할 수 없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선친에 이어 2대째 대한음악사를 운영하고 있는 신원석(45) 대표는 “초창기에는 경제가 어렵고 음악 인구가 적어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다 70년대 이후 경제 사정이 나아지고 피아노 보급이 늘면서 안정을 찾았다”고 말한다. 그는 “어렸을 때 선친은 매장에서 사시다시피 해서 뵐 시간이 없었다. 클래식 음악인에게는 좋은 스승이었지만 우리에게는 나쁜 아버지였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체육교육을 전공한 그는 가업을 물려받기 싫어서 미국으로 도피성 유학을 떠나기도 했으나, 1993년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2층에 대한음악사 분점을 내면서 선친의 뒤를 따랐다. 그는 대한음악사의 재도약을 위해 6년 전 명동 본점의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2001년에는 모든 매장의 자료를 전산화하고 홈페이지 온라인 쇼핑몰도 열었다. 또 2009년 5월에는 대한음악사 분당점도 개설하고 클래식 시디와 디브이디뿐 아니라 재즈 관련 악보와 서적도 들여놓았다.
현재 대한음악사에서는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인 독일의 헨레악보사를 비롯해 미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헝가리 등의 유명 출판사가 펴낸 9만종의 악보와 서적, 악기 교본, 음반을 유통·판매하고 있다. 120만원을 호가하는 리스트의 <크리스투스> 오케스트라 버전 악보, 비제의 <카르멘>을 독일 작곡가 프란츠 박스만이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으로 편곡한 <카르멘 판타지>악보 등 외국에서도 쉽게 찾기 힘든 악보도 척척 구해내 음악인들 사이에서는 ‘도깨비 창고’로 불린다. 또한 각종 클래식 음악회와 콩쿠르·입시 요강 등 클래식 관련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최근 독일 베렌라이터(바렌라이터)악보사 관계자가 매장을 둘러보다가 방대한 자료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신 대표는 앞으로 러시아 유명 출판사의 악보도 수입할 계획이다.
현대음악의 거장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80)의 수제자로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작곡가 류재준(43·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씨는 1988년 고3 때 명동 대한음악사 본점에서 있었던 일을 잊지 못한다. 그는 “고 신재복 할아버지께 ‘작곡을 전공하고 싶은데 무슨 책을 보아야 하나?’고 여쭙자 할아버지께서 <백병동 화성법>과 <작곡 노트>를 찾아 거저 주면서 ‘나중에 훌륭한 작곡가가 되어서 좋은 곡을 많이 쓰라’고 격려해주셨다”고 회고했다.
신 대표는 “요즘에는 악보를 구하기 힘든 중국, 동남아 연주가들과 악보가 비싼 동유럽 연주가들이 한국에 공연하러 왔다가 악보를 많이 사간다”고 귀띔했다. 그는 “앞으로 선친의 오랜 꿈인 클래식 전문 음악홀을 갖춰서 대한음악사를 세계적인 음악그룹으로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작곡가 류재준씨는 “앞으로 대한음악사가 한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많이 다뤄주었으면 좋겠다. 관련 악보를 구하지 못해 학생들이 한국 작곡가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한 것 같다”고 조언했다. 그만큼 대한음악사에 대한 음악인들의 기대가 크다는 얘기일 것이다.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51년 역사 매장, 아버지 이어 운영
“이곳에 없으면 국내에 없는 것” 유럽에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김선욱(25)씨는 부모가 맞벌이 교사여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서울 명동에 있는 대한음악사 본사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는 몇년 전 인터뷰에서 “용돈이 차곡차곡 모일 때마다 대한음악사로 달려가 악보를 사모으면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와 지휘자의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그가 2006년 18살의 나이에 동양인 최초로 세계 3대 피아노콩쿠르로 꼽히는 영국 리즈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데는 어릴 적 대한음악사에서 보냈던 시간이 자양분이 되었다. 프랑스를 근거지로 세계무대를 누비고 있는 중견 피아니스트 백건우(67)씨도 고국을 방문할 때마다 서울 서초동의 대한음악사 예술의전당 분점에 들러 악보를 사가곤 한다. 원로 지휘자 홍영택(1928~2001)·김만복(88)씨를 비롯해 소프라노 김자경(1917~1999)·이규도(73), 작곡가 백병동(77), 지휘자 금난새(66), 피아니스트 김대진(51)씨 등도 오랜 단골이었다. 최근에는 일본의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62)와 한국계 미국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35) 등도 새로운 고객이 되었다. 지금도 1960~70년대에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음악도들은 일본강점기에 지어진 명동의 6층짜리 허름한 매장에서 머리가 허연 노인이 먼지 풀풀 풍기면서 악보를 찾는 모습을 기억한다. 그 시절 음악도들 사이에서 ‘베토벤 할아버지’로 불렸던 고 신재복(1924~2011)씨다.
대한음악사 설립자 신재복(오른쪽)씨와 아들 신원석씨. 대한음악사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