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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흔들리는 덩어리 방황하는 현대인

등록 2013-08-20 19:17

사진전 ‘섀도’(SHADOW)
사진전 ‘섀도’(SHADOW)
김문호 사진전 ‘섀도’ 26일까지
사진을 이제 막 찍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흔들린 사진’은 악몽이자 언젠가는 극복해야 할 과제다. 잘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재생화면을 보면 흔들려 있는 것이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피사체를 보면서 절망한다. 셔터속도가 뭔지, 감도(ISO)란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고 나면 비로소 흔들리는 사진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사진가 겸 번역가인 김문호의 사진전 ‘섀도’(SHADOW)가 오는 26일까지 서울 혜화동 ‘이앙갤러리’에서 열린다. 같은 이름의 사진집도 나왔다. 김문호는 1989년 첫 개인전을 열었고 그 후부터 시대적 호흡을 같이 찍어내는 동료들과 함께 ‘사진집단 사실’을 만들었고 활동했다.

2009년 김문호의 사진전이자 사진집 <온 더 로드>(On the road)와 이번 작업은 겉보기엔 대단히 달라졌으나 뜯어보면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 달라졌다고 단정하는 이유는 ‘섀도’의 사진들은 하나같이 흔들렸다는, 외형적 특성이 몹시 강렬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은 지 오래된 작가가 기본기를 몰라서 흔들었을 리는 없으니 그는 의도를 가지고 카메라를 상하좌우로 흔들면서, 혹은 걸어가면서, 혹은 흔들리는 피사체를 대상 삼아 이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작가 자신의 표현처럼 ‘검은 덩어리’가 곳곳에서 등장한다는 점이다. 주로 사람들인 이 ‘검은 덩어리’는 골목,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 술집 등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가 스르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빛이 있으니 어둠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도시의 어두컴컴한 배경 속에서 ‘덩어리’는 흔들리고 빛은 찢어진다. 그럼에도, 전작 ‘온 더 로드’와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은 사진들이 말하는 내용 때문에 그렇다. 김문호는 사진을 통해 “도시, 혹은 그 언저리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이 서성거리면서 쭈뼛거리면서 제자리가 아닌 곳을 지키는 것 같은 불안감을 던져주고 있다.

‘섀도’의 검은 덩어리들을 보다가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다. 미하엘 엔데의 작품 <모모>에 나오는 회색 신사(시간도둑)다. 시간도둑들은 모모의 친구들을 꼬드겨 시간을 저축하게 하고 결국 시간을 뺏긴 사람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 인간성을 잃은 채 삭막하게 살아가게 한다. 김문호의 방황하는 검은 덩어리들은 어느 틈엔가 다시 우리 주변에 잔뜩 모여들기 시작하여 호시탐탐 시간을 노리는 시간도둑들이며 그들에게 시간을 뺏겨 좀비처럼 흔들거리며 어딘가로 비척비척 걸어가는 현대인들이기도 하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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