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리가 났다는 5인조 신예 걸그룹 크레용팝의 ‘빠빠빠’ 뮤직비디오를 봤다. 트레이닝복과 교복을 뒤섞은 헐렁한 옷차림의 여성 멤버들이 머리에 헬멧을 쓰고 개다리춤을 출 때부터 웃음이 피식 터졌다. 압권은 ‘직렬 5기통 댄스’라 불리는 뜀뛰기 춤 장면이었다. 자동차 엔진 실린더의 피스톤 상하운동을 모티브로 삼은 모양인데, 동전을 넣으면 튀어나오는 두더지 게임처럼 보였다. 고무 망치로 통통, 하지만 살살 두드려주고 싶을 정도로 앙증맞고 귀여웠다. 쉽고 단순하면서도 귀를 잡아끄는 후크(인상적인 후렴구)도 매력적이었다.
크레용팝이 음악 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한 영상도 찾아서 봤다. <우정의 무대>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굵은 함성과 응원구호, ‘떼창’이 들려왔다. 직렬 5기통 댄스를 추자 함성 소리가 더욱 커졌다. 주로 30·40대 남성이 열성 팬클럽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주위를 살펴보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상당수가 ‘빠빠빠’의 매력에 빠진 것 같다. 뭐, 충분히 그럴 만하다.
의아했던 건 서울 홍대앞 인디 음악인들 사이에서 특히나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인디 레이블 ‘비트볼 레코드’의 이봉수 대표는 크레용팝 공연에 다녀올 정도로 신선한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인디 음악인들이 자발적으로 꾸리는 축제인 ‘잔다리 페스타’에서 크레용팝 섭외에 나섰을 정도다. 비록 섭외는 불발됐지만, 많은 인디 음악인들이 주최 쪽에 “크레용팝을 꼭 불러달라”며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고 한다.
크레용팝이 왜 좋으냐고 물었다. “예쁜 척 안 해서 좋잖아요.” 잔다리 페스타 기획을 맡은 공윤영 대표가 답했다. 인디 레이블 모임 한국독립음악제작자협회의 김민규 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 걸그룹들의 강점은 각을 잡는 군무잖아요. 그래서 일본에서도 통한 거고요. 그런데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각잡기 군무로 쏠리니까 식상해진 거죠. 크레용팝은 좀 허술해 보여도 개성이 있어서 좋아요. 주류 음악처럼 매끈하진 않아도 확실한 색깔을 지니는 인디 음악이랑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죠. 그래서 홍대앞 음악인들이 크레용팝에 특히 열광하는 거 아닐까요?”
어느 지인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크레용팝은 귀엽고 단순해서 좋아. 어린애들 벗고 나오는 거 지겨운데, 얘네들은 병맛(‘병신스러운 맛’을 뜻하는 B급 정서) 나고 후지면서 귀여워. 동요 같은 노래와 율동에 어릴 때 즐겨보던 <후레쉬맨>도 생각나고. 복잡하고 골치 아픈 세상에 요즘은 얘네들 보는 재미에 시름을 잊는다니까.” 이러더니 <후레쉬맨> 주제가와 ‘빠빠빠’를 섞어서 불렀다.
인디 음악인이든 일반인이든 크레용팝이 기존 국내 걸그룹과 다르다는 이유로 어필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모두가 예쁘고 멋있어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판에 거꾸로 엉성하고 촌스럽게 망가지는 모습이 오히려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다가간 것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세계인에게 통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중요한 건 이후다. 싸이는 후속곡 ‘젠틀맨’에서 전작과 비슷한 전략을 이어갔지만 이전만큼 강한 바람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이번 가을 미국에서 발매할 앨범은 어떤 색깔일지 궁금하다. ‘빠빠빠’ 이후도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우리 가요계 속성상 누가 뜬다 싶으면 아류들이 쏟아진다. 크레용팝과 비슷한 콘셉트의 걸그룹들이 우후죽순 양산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크레용팝은 어떻게 할 것인가.
김민규 회장은 “일본 걸그룹 퍼퓸처럼 프로듀서가 기획과 전략을 잘 짜서 크레용팝이 오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 또한 크레용팝이 한 곡만 히트시키고 사라지는 ‘원 히트 원더’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엇비슷한 음악이 넘쳐나는 주류 가요계에 유쾌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종소리를 계속 내줬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후속곡 제목은 ‘땡땡땡’이 어떨까? 머리에는 종 모양 모자를 쓰고, 보신각 타종 춤을 추는 거지. 큭,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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