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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버려진 구의취수장
거리예술에 취하다

등록 2013-09-15 19:06수정 2013-09-15 20:58

2006년 가동을 중단한 서울 광진구 구의취수장이 거리예술 베이스캠프로 변신을 앞두고 있다. 13~15일 신작 공연 축제에 앞서 12일 밤 열린 프레스 리허설에서 ‘창작그룹 노니’가 <템페스트>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2006년 가동을 중단한 서울 광진구 구의취수장이 거리예술 베이스캠프로 변신을 앞두고 있다. 13~15일 신작 공연 축제에 앞서 12일 밤 열린 프레스 리허설에서 ‘창작그룹 노니’가 <템페스트>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공간 널찍하고 인적 드문 ‘유배지’
서울문화재단, 문화공간 탈바꿈
예술창작 베이스캠프 만들 예정
“시민들 접근성 향상에도 노력”
폐허의 공간에서 거리예술의 새싹이 돋아났다.

1976년부터 30년 넘게 서울 시민의 식수원 구실을 해왔던 광진구 광진동에 있는 구의취수장이 국내 최초의 거리예술 베이스캠프로 거듭난다. 강북취수장 신설로 폐쇄 결정이 내려졌던 이곳의 제1취수장과 6개동 건물, 1만7838㎡ 부지면적 공간을 서울문화재단(대표 조선희)이 2014년부터 리모델링해 거리예술 창작공간으로 개관·운영하기로 한 것.

리모델링을 앞두고 서울문화재단은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이 공간에서 거리예술 공연단체들과 함께 오픈 스튜디오 행사를 열었다. 극단 몸꼴의 <불량 충동>, 창작그룹 노니 <템페스트-2013_듣고 있니?>, 프로젝트 잠상과 창작중심 단디 <아주 작은 꿈>, 비주얼씨어터컴퍼니 꽃 <담벼락을 짚고 쓰러지다!>, 노노앤소소 <18h, 구의취수장>, 음악당 달다 <랄라라쇼>, 요요퍼포먼스그룹 ‘요요현상’ <요요퍼포먼스 요따위>, 예술불꽃 화랑 <눈물>과 <웃음> 등 8개팀 9개 신작이 선보였다.

지난 12일 저녁 프레스 리허설이 열린 취수장은 마치 고립된 섬 같았다. 2011년부터 기능을 멈춘 제1취수장 입구의 셔터 문이 천천히 열리자 어둠 속에서 메트로놈이 박자를 세며 숨을 멈춘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이날 공연 <템페스트-2013_듣고 있니?>의 시작이었다. 손전등을 켜고 수로관들이 묻혀 있는 좁고 어두운 공간을 더듬어 나가자 공연 내용을 암시하는 전시가 펼쳐졌다. 마법사 ‘프로스페로’의 공간에는 태풍에 휩쓸린 수십개의 종이배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기다란 지하 통로에는 괴물 ‘캘리밴’을 상징하듯 긴 머리채가 막다른 파라다이스 공간까지 끊임없이 이어졌다.

가로 20m, 세로 50m, 높이 18m의 직사각형 공간에서 창작그룹 노니의 <템페스트-2013_듣고 있니?>가 시작되었다. 버려진 기계로 가득한 공간은 마치 공상과학(SF)영화에 나옴직한 우주기지를 연상시켰다. 북, 목탁, 정주 등 타악기와 디지털 사운드가 공간을 진동하는 가운데 남녀 퍼포먼서들이 현란한 조명을 피해 녹슨 펌프와 파이프 사이를 쉴새없이 헤집고 다닌다. 거대한 모터를 기어오르고 공중에서 몸을 회전하는 고난도의 ‘파쿠르’ 퍼포먼스가 심장을 두드리는 즉흥연주와 어울려 거대한 ‘템페스트’(태풍)의 이미지를 만든다. 노니의 김경희(36) 대표는 “지난해 구의취수장 공간을 처음 보고 유배지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자연스레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가 떠올랐다”고 밝혔다.

밖으로 나가자 제1취수장과 지금은 폐쇄된 관사 사이의 마당 공간에서 극단 몸꼴의 <불량 충동>이 거리극으로 펼쳐졌다. 모순과 억압의 시대에서 개인의 흔들리는 삶, 그러나 또 끝없이 솟아오르는 인간의 욕망을 다이내믹한 신체극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기타와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된 밴드의 라이브 음악에 맞춰 대형 오뚝이와 흔들리는 사다리 등의 오브제를 활용한 것이 특징이었다.

제1취수장 공간에서 열린 미디어 설치그룹 ‘프로젝트 잠상’과 ‘창작중심 단디’의 공동제작 <아주 작은 꿈>도 공간 맞춤형 공연이었다. 원전 사고와 각종 환경오염으로 인해 현실로 등장할지 모를 돌연변이에 대한 불안을 한 여자의 꿈에 담았다. 취수장 전체를 가득 채우는 다채로운 빛깔과 영상, 음향을 바탕으로 18m 높이의 공중을 떠다니는 여배우의 움직임이 인상깊었다.

이번에 소개된 작품들은 하이서울페스티벌(10월2~6일), 과천축제(25~29일), 고양호수예술축제(28일~10월6일) 등 하반기 대표적인 거리예술축제에서 다시 선보인다.

서울문화재단은 구의취수장을 창작스튜디오로 리모델링하기 위해 1차로 23억원 규모의 예산을 들여 2015년까지 작품 창작 공간, 교육 공간, 문화·휴식공간을 단계적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제1취수장은 높이 18m에 개방형 공간이어서 거리예술과 서커스, 다원예술을 위한 창작공간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내년 상반기까지는 제작·연습공간으로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또 13평(42.98㎡) 규모 숙소 10채가 있는 관사는 예술가가 상주해 창작활동을 하는 레지던스로 꾸민다. 이와 함께 콘텐츠 개발 비용으로는 3억원을 쓴다.

서울문화재단 조선희 대표는 “공간이 넓고 인적이 드물다는 입지 조건이 예술가의 창작 스튜디오로 조성하기 알맞다”며 “일단 창작을 주로 하는 인큐베이팅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장기적으로는 공간 접근성을 향상시켜 시민이 찾을 수 있는 공연장으로 조성하는 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는 10월14일에는 구의취수장 운영방안 및 장기적 비전을 선포하는 국제 콘퍼런스도 열린다. 국내 거리예술단체들에 대한 심층연구와 앞으로 조성될 창작공간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를 벌일 예정이다.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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