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조각가 마테오 베라의 <달력: 시간, 조수, 그리고 기억>. 365개의 대나무로 세 개의 동심원을 만들었는데, 밀물과 썰물에 따라 동그라미가 열리고 닫히며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부산 송도서 바다미술제 열려
바람·물 등 소재작품 34점 전시
바람·물 등 소재작품 34점 전시
해수욕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부산 송도해수욕장. 여름의 추억이 채 가시지 않은 바닷가에 거대한 설치조각품들이 들어섰다.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에서 여는, ‘With 송도: 기억, 흔적, 사람’을 주제로 한 ‘2013 바다미술제’(10월13일까지)다. 국내외 11개팀 34점의 작품이 2㎞ 반원형 모래사장과 산책로에 설치되었고 그 가운데 몇 개는 바다 한가운데 자리잡았다. 송도해수욕장 100주년과 바다미술제의 역사를 되새기고 해수변의 특성을 반영하며 미술제의 방향을 가늠해 본다는 취지의 축제다.
바다미술제답게 작품들은 바닷가라는 장소성을 부각시킨 게 주류다.
가장 볼만한 작품은 조은필의 <일렁이는 궁전>. 바닷물 한가운데 설치되어 파도에 일렁이는 모양이 지난여름에 쌓은 모래성이 속절없이 허물어지는 모양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이를 형상화한 솜씨가 뛰어나 대상을 차지했다. 바닷물에 설치된 또다른 작품으로 이탈리아 조각가 마테오 베라의 <달력: 시간, 조수, 그리고 기억>이 있다. 365개의 대나무로 세 개의 동심원을 만들어 물 위에 띄웠는데, 밀물과 썰물에 따라 동그라미가 열리고 닫히면서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2011년 대상 수상자답게 추상적인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한 기법이 남다르다.
바람, 물, 모래사장, 바다생물도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최문수의 <바람의 흔적>은 10m 높이의 대나무들을 50m에 걸쳐 세운 뒤 무수한 깃발을 달아 바닷바람의 시원함을 보여준다. 예치섭 외 3명의 <바다, 기억의 저편>은 천막으로 만든 거대한 고둥. 안으로 들어가면 바람소리가 웅웅거린다. 인도 작가 탈루는 바닷물을 끊임없이 퍼내야 하는 설치 작품 <카르마 요가: 테라피 머신>으로 인도 여성들의 고단한 삶을 표현한다. 이수홍의 <모래탱크>, 김성민·서영호의 <탈출구>는 바다 매립으로 훼손되는 사구의 문제를 제기한다. 우수상을 받은 이탈리아 작가 마리아 레베카 발레스트라와 라첼라 르니 아베트의 <옹기 속의 역사>. 갯바위처럼 모래에 반쯤 묻힌 옹기 항아리에 귀를 대면 바다 소리가 들린다. 김숙빈의 <농게 가족의 외출>은 벤치를 겸해 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 작품도 있다. 부산대 서양화과 대학원 서평주, 권도유의 방사능에 의한 바닷물 오염을 풍자한 퍼포먼스가 그것. 흰 방진복과 마스크 차림의 이들은 작품 사이를 오가며 미술제 작품을 두들기고 그 위에 드러눕기도 한다. 서평주씨는 “이번 미술제의 작품들은 어느 해에 설치해도 무관한 것들”이라며 “후쿠시마 원전 고장, 고리원전의 온수 배출 등 당면한 문제가 있는데 미술제의 주제가 너무 한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직접 나섰다”고 말했다.
1987년 시작해 2000년부터 부산비엔날레와 통합돼 운영돼온 바다미술제는 2011년부터 비엔날레와 분리돼 비엔날레가 쉬는 해 열린다.
부산/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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