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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내게 인형이란, 표정 하나로 만감을 표현하는 배우”

등록 2013-10-10 20:07수정 2013-10-10 20:08

인형 디자이너 류지연씨가 지난달 홍콩 셰익스피어축제에서 호평받은 인형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작은 캐릭터 인형 몬터규(왼쪽), 줄리엣(오른쪽), 로렌스 신부(뒤쪽)와 나란히 서서 웃고 있다. 그는 지난해부터 인형극의 인형 제작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인형들로 ‘전업 작가’의 꿈도 키우고 있다. 포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인형 디자이너 류지연씨가 지난달 홍콩 셰익스피어축제에서 호평받은 인형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작은 캐릭터 인형 몬터규(왼쪽), 줄리엣(오른쪽), 로렌스 신부(뒤쪽)와 나란히 서서 웃고 있다. 그는 지난해부터 인형극의 인형 제작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인형들로 ‘전업 작가’의 꿈도 키우고 있다. 포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문화‘랑’] 나도 문화인
<18> 인형극 디자이너 류지연씨


인형 제작은 곧 배우 캐스팅
10여년을 해왔지만 아직 어려워
웃지도 울지도 않는 얼굴에
온갖 감정을 담아내야 하니까

국내선 인형극 무대 비좁아
아이들 공연이란 편견 깨졌으면

지난주 경기도 포천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 들어서자 ‘인형의 나라’가 펼쳐졌다. 커다란 창고를 개조한 100평 남짓한 공간에는 손바닥만한 소년 소녀가 뛰어놀고 어른보다 훨씬 큰 피에로가 천장에 매달려 있다. 몬터규와 캐풀렛가의 다양한 인형들 무리에서 그가 줄리엣 인형과 함께 빠져나왔다. 국내보다는 외국 인형극제에 널리 알려진 인형극 전문 창작극단 ‘예술무대 산’(대표 조현산)의 미술감독 류지연(42)씨다.

“인형은 사람이 움직이지 않을 때는 죽은 것이지만 극에서 배우와 함께 움직일 때는 생명이 그 안에 들어간 것 같아요. 그게 저는 굉장히 매력 있어요. 전 어떤 일에도 밤을 못 새우는데 인형을 만들 때만은 시간 가는 줄 몰라요. 그래서 ‘내가 정말 이 일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웃음)”

류 감독은 “인형을 만들면 자식 같은 느낌이 들고, 또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도 양주문화예술회관 상주단체인 ‘예술무대 산’의 인형극에서 인형의 디자인이나 조각, 채색, 분장 등을 도맡아 한다. 2002년 <줄인형-신밧드>를 시작으로 <뒤죽박죽 전래동화>(2002), <크리스마스 캐롤> <전쟁>(2003), <야외극 진달래 산천> <야외극 견우와 직녀> <뿌요의 인체여행>(2004), <우주비행사>(2005), <봄이 오면>(2006), <이상한 수호천사> <미로의 성을 찾아서>(2007), <달래이야기>(2008), <몽>(2010), <로미오와 줄리엣>(2013) 등 수많은 창작 인형극들이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특히 전쟁을 겪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달래이야기>는 2009년 프랑스 샤를빌 인형극제를 시작으로 인형극의 본고장인 체코를 비롯해 스페인, 일본, 터키, 이란, 브라질 등의 인형극축제에 단골로 초청되었다. 2009년 11월 스페인 티티리사이인형축제 ‘최고작품상’과 2012년 6월 중국 세계유니마총회 ‘최고작품상’, 2012년 8월 춘천인형극제 ‘금코코바우상 대상’을 받았다. 신작 <로미오와 줄리엣>은 내놓기도 전에 홍콩 셰익스피어축제에 공식초청을 받아 지난 9월 이 축제에서 첫선을 보였다.

그는 “수많은 인형을 만들었지만 아직도 어려운 작업”이라며 “남들은 인형을 잘 만든다고 하지만 스스로 만족스럽지 않아서 슬럼프에 빠진 적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공연이 정해지면 캐릭터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야 합니다. 하나의 표정에 많은 것을 담아야 하기 때문에 어려워요. <달래이야기>의 주인공 ‘달래’는 여러 번 마음에 안 들게 나와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처음 만들 때 ‘평범한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극단에서도 너무 여자 같지도 않고 남자 같지도 않으면 좋겠고, 슬픈 아이도 아니고 웃는 아이도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요구했어요. 그냥 앉아 있는 것만으로 아우라가 느껴지는 그런 인형을 주문했지요. 그런데 그것이 제일 어려운 과제죠.”

그는 “인형도 그 자체가 그 작품의 배우”라며 “배우를 캐스팅하듯이 극의 캐릭터에 딱 맞는 인형을 만드는 것부터가 인형극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대학에서 아동학을 전공한 그는 1989년 1학년 때 인형을 교육매개체로 활용해보려고 인형극 동아리 ‘색종이’를 창단하면서 자연스럽게 인형과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인형극을 배울 곳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신문을 읽다가 서울인형극회에서 인형극 <구둣방 할아버지와 난쟁이>라는 어린이 인형극을 한다는 기사를 발견하고 무턱대고 찾아갔다.

그는 “인형은 하나의 표정이지만 분장이나 움직임에 따라 감정이 전달되는 인형극의 매력에 빠져버렸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인형극단들과 인형 워크숍 등을 찾아다니면서 인형 깎는 법을 배우고 인형 연기를 익혀나갔다. 의상과 분장술도 발품을 팔면서 터득했다. 그때 남편인 ‘극단 예술무대 산’의 대표 조현산(44)씨도 만났다. 그는 “인형극은 아이들만 보는 공연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인형극단도 다른 공연 장르와의 교류가 없다 보니까 영세하고 발전하기가 어렵다”고 충고했다.

“해외 공연하러 다녀 보면 어른 관객이 훨씬 더 많아요. 심오한 철학적인 것을 담는 공연도 있고 어른들이 겪는 삶의 애환이나 고독 같은 것이 주제인 작품도 있어요. 그런 공연을 관객들이 찾아준다는 게 편견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형극도 똑같은 공연 장르의 하나라고 생각하니까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거죠.”

류 감독은 틈틈이 취미로 만든 인형으로 지난해 6월 서울 명동 커먼플레이스갤러리에서 개인전 ‘조우1’을 선보였다. 반응이 좋아서 7월에는 수원 행궁커뮤니티아트센터 전시장에서 ‘조우2’를 열고 조심스럽게 ‘전업작가’의 꿈도 키우고 있다.

그는 “늘 바쁘게 살았는데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작업실에 앉아서 인형을 만들다 보니 저의 기억이 담긴 인형들이 모아지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시회에서 어느 40대 남자 관객이 ‘트라우마’와 ‘고’라는 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용기가 생겨났다”고 수줍어했다.

“인형에는 제 삶이 다 반영되어 있어요. 저한테 가장 의미 있는 것이 꿈인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잖아요. 일상의 사소한 것들이 저한테 감동을 줄 때도 있고, 제 일상의 작은 일들이 어떨 때는 많은 사람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겠고…. 또 제가 세상과 소통하는 걸 힘들어하는 사람이라 그 인형 작품을 통해서 그런 것을 성취했을 때 느껴지는 기쁨이 있어요.”

포천/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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