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소나타 무겁지만 유머도 많다-백건우
베토벤 소나타 무겁지만 유머도 많다
이 가을 ‘건반 위의 구도자’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베토벤 소나타 프로그램으로 우리 곁을 찾았다.
그는 베토벤의 소나타 8번 ‘비창’과 23번 ‘열정’ 등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레퍼토리로 8일부터 한달간 원주를 시작으로 양산, 부산, 서울, 안산, 전주 등 6개 도시 순회 연주회를 갖는다.
“젊었을 때는 왜 이렇게 베토벤이 어려울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베토벤 음악은 삶의 고통과 희열을 맛 본 사람만이 제대로 접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의 음악이 진정 가슴에 와 닿으려면 어느 정도 나이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30일 서울 경복궁 옆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백건우(59)씨는 “베토벤을 예전부터 쳐 왔지만 이번에 전혀 다른 새로운 작품으로 느껴졌다”고 밝혔다. 그의 옆에는 60년대 최고 여배우였던 부인 윤정희(60)씨가 함께 했다.
그는 ‘피아노 음악의 신약성서’로 불리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곡) 녹음에 도전해 최근 데카 레이블에서 1차분 소나타 16∼26번 녹음 시디 3장을 내놓았다. 이미 그는 라벨 피아노 소나타 전곡,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 등 보통의 연주자들은 시도조차 꺼리는 전곡 연주와 녹음을 고집해왔다.
그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 도전을 여행에 빗댔다. “젊었을 땐 여행을 좋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습니다. 음악적으로도 되도록 여러 나라, 여러 종류의 음악을 접하려 노력했죠. 그런데 결국은 집으로 돌아오게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그는 “모든 음악인들이 처음엔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로 시작했다가 점점 쇼팽, 리스트 등 다른 작곡가들로 뻗어가지만 결국 끝에는 다시 베토벤, 바흐로 돌아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독일 작곡가들의 작품들은 심각하고 무겁다고 여기기 쉽지만 베토벤 음악에는 유머가 넘친다”면서 “베토벤이야말로 로맨티스트”라고 말했다. “베토벤 작품을 연주할 때면 ‘포르테 피아노’ ‘수비토 피아노’ 등 극과 극을 오가는 악상들이 너무 불편하게 느껴지곤 했어요. 실제 베토벤의 성격이 그랬습니다. 갑자기 화를 냈다가 또 갑자기 용서를 빌고, 외로워했다가 지독한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어린애처럼 변하기도 하고…”
지난 67년 나움버그 콩쿠르 우승, 69년 리벤트리 콩쿠르 결선 진출 및 세계적 권위의 부조니 콩쿠르 우승 등 일찍부터 세계 무대에서 스타로 떠올랐던 이 피아니스트는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어떤 친구는 철저하게 계획을 짜면서 자기 인생을 걸어나가는데 저는 그것을 못합니다. 여행을 가더라도 지도를 가져가지 않아요. 그러면 재미없을 것 같아요. 시기가 되면 음악이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야 음악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을까요?” (02)751-9607~10.
글·사진/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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