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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소리꾼 3대 ‘판소리는 내 운명’

등록 2013-10-17 19:49수정 2013-10-17 21:12

3대째 소리꾼의 길을 걸어가는 최승희 명창(오른쪽), 딸 모보경씨(가운데), 손녀 김하은양(왼쪽)이 19일 ‘정정렬제’ <춘향가> 완창 무대에 앞서 17일 전북도립국악원 연습실에서 소리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 국립극장 제공
3대째 소리꾼의 길을 걸어가는 최승희 명창(오른쪽), 딸 모보경씨(가운데), 손녀 김하은양(왼쪽)이 19일 ‘정정렬제’ <춘향가> 완창 무대에 앞서 17일 전북도립국악원 연습실에서 소리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 국립극장 제공
춘향가 완창 합동무대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소리가 좋아 부모 몰래 소리 선생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아버지에게 들켜 “기생이 되려느냐”라며 두들겨 맞았다. 15살에 가출해 전주로 홍경택 명창을 찾아갔다. 홍 명창은 “왜 이제 왔느냐. 너만큼 영리한 아이는 처음이다”고 안타까워했다. 그에게 판소리를 배우며 소릿길에 들었다. 18살에 아버지가 죽자 고향 익산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소리 공부에 나섰다. 그때 평생의 스승 김여란(1907 ~ 1983) 명창을 만나 ‘정정렬제’ <춘향가>를 물려받았다. 박초월, 김명환, 박봉술, 한농선 명창에게 판소리 다섯 바탕을 두루 배웠다. 악기와 춤도 섭렵했다. 서공철, 김삼태 명인에게서 ‘가야금산조’를, 이매방 명인에게서 ‘삼고무’를 익혀 ‘가무악’(歌舞樂)에 능한 소리꾼이 되었다.

딸은 어머니 뱃속부터 소리를 배웠다. 어머니의 끼를 타고나 아기 때부터 그렇게 노래를 잘했다. 목이 곱고 예뻐 당대의 명창들이 제자로 삼겠다고 나섰다. 김월하(1918~1996) 명창에게 가곡, 가사를 배우고 정권진(1927∼1986) 명창에게 <심청가>를 배웠다. 묵계월(92) 명창과 지인들이 경기민요를 가르쳤다. 그러나 어머니는 무서운 스승이었다. 제자에게는 관대해도 딸에게는 가차없이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인데 왜 소리를 그렇게 하냐”며 회초리를 들었다. 한 음반사에서 대중가요 음반 취업을 제안하자 갈등 끝에 국악을 접었다. 그러나 자기 길이 아니란 걸 깨닫고 결국 어머니 곁으로 돌아와 ‘정정렬제’ <춘향가>를 이었다.

손녀는 아기 때부터 할머니 품에서 소리를 익혔다. 어깨너머로 배운 살풀이춤으로 할머니 앞에서 재롱을 떨었다. 어린 꼬마는 할머니가 아프면 수건에 물을 적셔서 이마를 닦아주고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했다. 할머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녀에게 소리를 가르쳤다. 그러나 그 손녀는 “판소리를 할 수 있는 무대가 점점 좁아지는 현실이 두려워” 2년 전 오디션 프로그램 ‘케이팝스타’에 도전했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잡고 역시 할머니와 어머니가 걸어가는 소릿길로 되돌아왔다.

전주의 명창 최승희(76·전북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예능보유자)씨의 집안은 모계로 이어지는 소리꾼 집안이다. 딸 모보경(49·전북도립국악원 교수)씨, 손녀 김하은(17·국립전통예술고2)양까지 한 길을 가는 이 어머니-딸-손녀가 함께 무대에 오른다. 19일 오후 3시 서울 국립극장 케이비국민은행 청소년하늘극장에서 판소리 ‘정정렬제’ <춘향가> 완창 무대로, ‘판소리 3대’가 한 무대에 서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최승희 당대 소리꾼 찾아 사사
‘가무악’ 능한 명창 반열에 올라
딸 모보경에게 회초리 들고 지도
소리 신동 손녀 김하은양도
아이돌 꿈꾸다 소릿길 돌아와
“웅숭깊은 춘향가 멋 들려줄 것”

최 명창은 1980년 제7회 남원춘향제 판소리 부문 명창부 장원과 1981년 제7회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부문 명창부 장원을 차지하면서 소리꾼으로 일가를 일궜다. 모 명창도 1999년 전국완산국악대제전 판소리 부문 장원과 2000년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명창부 장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하은양은 2008년 박동진 판소리명창명고대회 장원과 전국국악대제전 초등부 대상, 2009년 익산국악경연대회 중등부 대상, 제2회 초중고 단오아트페스티벌 학생경연대회 중등부 대상을 잇달아 수상한 소리 신동이다.

3대 소리꾼이 올리는 <춘향가>는 ‘근대 5명창’으로 손꼽혔던 정정렬(1876~1938) 명창이 기존 <춘향가>의 장단이나 조를 창의적으로 변용하고, 극적 구성과 사설을 다듬은 신식 판소리다. 다른 <춘향가>에 비해 화려하고 정교해 “정정렬이 나고 춘향가가 다시 났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최승희 명창은 “위암 수술을 10번이나 해서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만으로 감사한데 세 식구가 함께해서 너무 기쁘다”면서 “‘또랑소리’가 아니라 매화나무 등걸처럼 소리가 웅숭깊고 굴곡이 큰 ‘정정렬제’ <춘향가>의 멋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딸 모보경씨는 “지금도 어머니와 한 무대에 서면 오갈이 들어 떨리고 두렵다”면서 “앞으로도 흔치 않을 ‘3대 공연’이니만큼 온 힘을 다해 ‘정정렬제’ 소리를 오롯이 무대에 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손녀 하은양은 “소리라는 게 창자와 고수만 있어도 가능하지만 귀 명창의 호응이 있어야 완성이 된다. ‘지화자!’하고 추임새를 해주시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공연에는 최 명창의 제자인 정선희(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단원)씨, 정은혜(국립창극단 단원)씨가 함께하며, 고수 조용복, 신호수, 김태영씨가 북채를 잡는다. (02)2280-4114.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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