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젯 페스트’(JET Fest)
여행과 공연 결합한 ‘젯 페스트’
음악 즐기며 밤새 이야기꽃 피워
음악 즐기며 밤새 이야기꽃 피워
제주도의 날씨는 종잡기 힘들었다. 하늘에서 돌연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 있던 모던록 밴드 몽니는 아랑곳 않고 연주를 계속했다. 김신의(보컬)가 흠뻑 젖은 채로 마지막곡 ‘소나기’를 부르자 역시 흠뻑 젖은 관객들의 환호성이 더욱 커졌다. 18~20일 제주시 청소년야영장에서 열린 축제 ‘젯 페스트’(JET Fest·사진)의 첫날 무대는 그렇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얼마 뒤 거짓말처럼 비가 뚝 그쳤다. ‘뜨거운 감자’와 ‘언니네 이발관’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자정 넘어서까지 공연을 이어갔다.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은 “셔틀버스 막차 시간만 아니면 이곳 제주도에서 밤새 노래하고 싶었는데…”라며 꽤나 긴 앙코르 무대를 불살랐다.
‘젯 스테이지’ 공연이 모두 끝난 뒤 순서는 ‘젯 미드나이트’였다. 술과 음식, 음악인들의 공연이 어우러지는 잔치다. 애초 야외에서 할 예정이었으나 강한 바람과 오락가락하는 비 때문에 인근 유스호스텔 지하 식당으로 장소를 옮겼다. ‘연남동 덤앤더머’의 익살맞은 무대가 끝난 뒤 몽니가 갑자기 들어와 깜짝 공연을 펼쳤다. 여성 관객들이 눈빛을 반짝이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마지막으로 블루스 싱어송라이터 ‘씨 없는 수박 김대중’이 기타를 메고 나왔다. “수상한 이불을 덮어본 적 있나요. 낯설은 베개에 얼굴을 묻었나요. 불꺼진 새벽 쓸쓸한 모텔방에서.” 형광등의 훤한 불빛 아래로 묘하게 구슬픈 가락이 흘러나왔다. 이번 축제를 기획한 박은석 음악평론가는 “개인적으로 1920년대 블루스를 좋아하는데, 아마 당시 연주를 실제로 듣는다면 오늘 이 무대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말했다.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관객들은 다음날 ‘젯 익스피리언스’ 프로그램을 취향대로 골라 참여했다. 낮에는 제주의 속살을 즐기고 밤에 공연을 즐기자는 취지로 만든 축제이기 때문에 자전거 하이킹, 배낚시 손맛 체험, 목장 투어, 바닷길·숲길 걷기, 제주 문화 생태 이야기 강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을 마련해 놓았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거문오름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에 동행했다. 환경 보전을 위해 미리 인터넷 예약을 받아 하루 400명의 탐방객만 받는 곳이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용암협곡, 수직굴 등 진귀한 자연 경관을 감상했다. 돌아오는 길은 억새 천지였다.
페스티벌 장소로 돌아오니 다시 음악 천국이었다. 2005년부터 제주도에 내려와 텃밭을 일구며 살아온 여성 싱어송라이터 장필순의 무대는 그의 노래를 왜 제주에서 들어야 진짜배기인지를 깨닫게 했다. 와이비(YB)의 힘 넘치는 마지막 무대를 끝으로 둘째 날 ‘젯 스테이지’가 마무리됐다.
이날 밤은 날씨가 도왔다. ‘젯 미드나이트’가 열리는 야영장에 가니 커다란 모닥불이 반겨주었다. 누구는 디제이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고, 누구는 술과 돼지고기·순대 등을 먹으며 얘기꽃을 피웠다. 모르는 사이의 사람들도 서로에게 마음을 벽을 조금씩 허물어갔다. 직장인 박주영(33)씨는 “제주에 오니 다른 음악 페스티벌에 갔을 때보다 더욱 나를 내려놓고 즐길 수 있어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진짜 축제는 그렇게 새벽 어스름 사이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제주/서정민 기자, 사진 제주바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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