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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신은 좀더 예뻐했다, ‘투잡’ 연주가들을…

등록 2013-10-24 20:07수정 2013-10-26 17:30

. ※ 이미지를 누르시면 확대됩니다.
[문화‘랑’] 음악계의 멀티플레이어들

자신의 주전공만으로도 일가를 이루기 힘든 클래식계. 하지만 첼로 거장 로스트로포비치는 피아노 연주를 즐겼고, 바이올리니스트 피셔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로 연주회를 꾸민다. 신이 내린 재능을 한꺼번에 타고난 천재 음악가들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매우 특별한 이들이 있다.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바이올리니스트 겸 비올리스트, 첼로 연주자이자 피아니스트…. 평범한 이들에게는 한가지 특출한 재능을 타고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소수의 비범한 이들에게는 한꺼번에 여러 재능이 주어져 하나를 선택하는 게 오히려 즐거운 고민거리가 되기도 한다. 넘치는 끼와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한가지 전공만이 아니라 여러가지 작업을 동시에 소화해내는 이들이 많다.

모두가 깜짝 놀란 피셔의 양수겸장

이달 첫 방한하는 율리아 피셔(30)는 공식적인 약력에 ‘바이올리니스트 겸 피아니스트’라고 적는다. 원래 전공 악기 외에 다른 악기를 다루는 이들은 많지만, 이처럼 당당하게 두가지 악기를 자기 전공으로 내세우는 연주자는 보기 드물다.

피셔는 2008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페라하우스 알테 오퍼에서 열린 독일 청소년 교향악단과의 협연 무대에서 1부에는 카미유 생상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 나단조>를, 2부에는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를 연주해 청중을 놀라게 했다. 그리그의 협주곡은 기성 피아니스트들도 소화하기 힘든 난곡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흘 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피아니스트로서 실내악을 연주했다.

바이올리니스트 피셔, 피아노 쳐
음악 자유롭게 만드는 아웃렛”
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는
소프라노인 아내에 피아노 반주

플라시도 도밍고, 바리톤·테너 오가
경화 환갑에 비올라 ‘겸직’ 준비
내악 연주 기회 많아지는 장점
향악서 관악기는 겸직이 ‘일상’

피셔가 피아노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어려서부터 바이올린 못잖게 피아노에도 천부적인 재능을 나타내 두 악기를 함께 훈련해왔는데, 9살에 바이올린 전공으로 뮌헨 음악원에 입학하고 12살에 예후디 메뉴인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자연스럽게 바이올린 쪽으로 진로가 굳어졌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별난 도전을 하게 한 셈이다. 이날 이후 피셔에게는 피아노 연주 요청이 쇄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가 피아니스트로 변신하는 무대는 1년에 한두 번 정도다. 재능이 아무리 다양해도, 그 재능을 펼칠 시간은 한정돼 있는 법이다. 피셔가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며 양수겸장의 위용을 뽐낸 장면은 데카 레이블에서 2010년에 발매한 디브이디로 감상할 수 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아내 노래에 피아노 반주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1927~2007) 역시 피아노 연주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 종종 활을 내려놓고 건반 앞에 앉았다.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첼로와 피아노, 작곡을 공부한 로스트로포비치는 부인인 소프라노 갈리나 비시넵스카야(1926~2012)의 가곡 리사이틀에서 곧잘 피아노 반주를 맡았고, 러시아 작곡가 알프레트 시닛케(1934~1998)의 오페라 <바보와의 삶>을 공연할 때 1막 1장과 2장 사이의 간주곡에서도 피아노를 직접 연주했다. 인터내셔널 첼로 소사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피아노는 태어나서 처음 배운, 첫사랑 같은 악기였다”며 “지금도 새로운 첼로 곡을 익힐 때면, 언제나 첼로가 아닌 피아노로 먼저 연주해본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예는 더 있다. 2006년 52살에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고음악 전문 메조소프라노 로레인 헌트 리버슨(1954~2006)은 20대 후반까지 뛰어난 비올리스트였다. 미국 새너제이 심포니의 수석 비올라 주자였던 그는 26살에 성악 공부를 시작해 1985년 31살에 헨델의 오페라 <줄리오 체사레>로 데뷔하면서 ‘주력 업종’을 변경했다. 리버슨은 바흐, 헨델 등 바로크 작곡가들의 작품과 현대 음악에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사후인 2007년과 2008년에는 남편인 작곡가 피터 리버슨(1946~2011)의 ‘릴케 송’과 ‘네루다 송’ 음반으로 각각 그래미상 클래식 부문에서 최우수 성악 연주상을 받았다. 또한 1980, 90년대에 지휘자 크레이그 스미스가 이끄는 성악 및 기악 합주단체인 이매뉴얼 뮤직에서 활동하면서 기악과 성악을 아우른 전무후무한 음악가로 이름을 남겼다.

멀티 플레이는 자신을 차별화하는 무기

72살의 고령에도 현역으로 뛰는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72)는 1961년 멕시코시티 가극장에서 바리톤으로 데뷔했으나 “귀공자풍 외모가 테너 배역에 잘 어울리니 바꿔보라”는 극장의 요구에 따라 테너로 전향했다. 그는 3옥타브를 넘나드는 넓은 음역과 다채로운 음색 덕분에 테너와 바리톤을 모두 소화할 수 있었다. 2009년 그는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에서 베이스 바리톤에 가까울 만큼 낮고 어두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시몬 보카네그라 역을 맡아 ‘다시 바리톤으로 전향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공식적인 그의 답변은 “배역에 맞게 목소리와 음역을 조정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도밍고는 1980년대부터 지휘자로도 명성을 날리고 있다.

1967년 레번트리트 국제 콩쿠르에서 정경화(65)와 공동으로 바이올린 부문에서 우승한 핀카스 주커만(65)은 비올리스트로도 수많은 무대에 섰다. 특히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68)과 한 실내악 연주에서는 언제나 비올라를 맡아 기막힌 화음을 선보였다.

한국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비올라 연주자 이유라(28) 역시 악기 두가지를 함께 가지고 다니면서 수시로 바꿔 연주해 청중을 감탄하게 한다. 이유라는 2006년 레오폴트 모차르트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1위), 2013년 뮌헨 아에르데(ARD) 콩쿠르(1위), 유리 바시메트 국제 비올라 콩쿠르(1위) 등에서도 악기를 가리지 않고 입상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비올라에 빠지다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겸하는 이들은 공통적으로 활놀림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이올린으로 섬세한 오른손 테크닉을 연마하고, 비올라로 깊고 풍성한 소리를 빚어내는 기술을 익히기 때문이다. 비올리스트의 수는 바이올리니스트보다 현저히 적어 비올라를 잘 다루면 실내악 연주 기회가 많아진다는 장점도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최근 실내악 연주의 매력에 푹 빠져 환갑이 넘은 나이에 비올라 연습을 시작했다.

오케스트라 관악기와 타악기 연주자들은 ‘겸직이 일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향악에 워낙 다양한 악기들이 나오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클라리넷 족’, ‘오보에 족’ 식으로 묶이는 ‘가족’ 악기들은 함께 다룰 수 있어야 한다. 플루트 연주자가 피콜로를, 오보에 연주자가 잉글리시 혼을, 바순 연주자가 콘트라바순을 연주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클라리넷 연주자들은 에이(A)조 클라리넷과 비플랫(Bb)조 클라리넷을, 트럼펫 연주자들은 시(C)조 트럼펫과 비플랫(Bb)조 트럼펫 모두 가지고, 곡에 따라 수시로 바꿔 연주한다. 팀파니를 제외한 타악기 연주자들은 수십가지에 이르는 타악기를 익혀야 한다. 하나의 곡을 연주하는 동안에도 서너가지 악기를 분주하게 오가며 연주하는 게 일반적이다.

글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사진 빈체로·워너뮤직·소니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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