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데뷔한 가수 패티김이 26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지난해 6월 시작한 은퇴 전국순회공연 중 마지막 무대인 ‘굿바이 패티’를 열고 있다. 피케이프로덕션 제공
마지막 은퇴공연 ‘굿바이 패티’
청중 1만명과 후배·가족 앞에서
지칠 줄 모르고 4시간 열창
55년 무대인생 웃으며 마치다
청중 1만명과 후배·가족 앞에서
지칠 줄 모르고 4시간 열창
55년 무대인생 웃으며 마치다
가을이 절정에 이른 10월의 마지막 주말인 26일, ‘패티김 은퇴공연 그랜드 파이널 서울-굿바이 패티’라는 긴 이름의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간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는 석양이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늦지 않게 출발했다고 생각했지만 겨우 시간에 맞춰 도착했을 정도로 주말 교통체증은 심했고, 공연 예정 시각이 가까워져도 공연장 주변은 어수선했다. 백발이 성성한 노년의 청중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많이 찾지 않았을 대형 공연의 메카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느릿느릿해 보이는 동작이었지만 마음은 바빠 보였다.
오후 4시는 공연 시작 시각치고는 이른 때라서, 청중의 연배를 고려해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추어 공연을 마무리하려는 주최 쪽의 배려라고 지레짐작했다. 그렇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노래는 나의 운명, 무대는 나의 생명’이라는 대형 스크린의 자막이 사라질 무렵 시작된 공연은 3시간 반 정도 이어졌다. 몇 곡을 연주하는지를 메모하던 나의 손길은 20이라는 숫자에서 멈추었지만, 이후로도 공연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자리를 뜬 몇몇을 제외한 1만명에 가까운 청중들은 앙코르곡으로 ‘이별’이 나올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내게 패티김의 공연은 ‘콘서트’보다는 ‘쇼’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다. ‘쇼’ 앞에는 ‘버라이어티’(variety)라는 단어가 붙어야 제격이듯, 무대는 다채롭게 그리고 화려하게 연출되었다. ‘서울의 찬가’, ‘서울의 모정’, ‘람디담디담’을 부를 때는 오케스트라, 대형 합창단, 북 연주단이 총출동하여 웅장한 볼거리를 제공했고 ‘사랑은 영원히’, ‘못 잊어’,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을 부를 때는 스탠더드한 편성으로 청중의 흡인력을 높였고, ‘초우’와 ‘9월의 노래’를 부를 때는 아코디언 연주자 심성락과 호흡을 맞추어 숨이 멎을 듯한 긴장감을 선사했다. ‘태양이 뜨거울 때’는 ‘로킹’(rocking)했고, ‘그대 없이는 못 살아’에서는 래퍼까지 등장했다.
1938년생 패티김의 노래는 ‘나이에 비해 잘하는 정도’를 훌쩍 넘어섰다. 가끔 가쁜 숨을 몰아쉬기도 했지만, 그보다 한참 나이 어린 가수보다 심한 수준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마리아’를 부를 때는 1층의 객석을 돌면서 청중들과 눈과 손을 맞춘 뒤에도 전혀 체력이 떨어져 보이지 않았다. “여러분, 놀러 오신 거 맞죠? 오늘 다섯 시간 공연할 겁니다”라는 호언은 그와 비슷한 연배의 청중들에게는 용기와 좌절을 동시에 안겨주었을 것 같다. 후배 가수들이 영상으로 축하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그들을 비롯한 몇몇 가수들이 패티김의 가족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이별’을 합창하면서 공연은 끝났다. 패티김은 중간에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결국은 눈물을 훔쳐야 했다. 그렇지만 눈물범벅이 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즉, ‘신파’는 없었다. 무대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 순간에도 그는 절제를 잃지 않고 당당하게 무대에 설치된 문의 커튼을 열고 걸어나갔다. 고음의 절정부를 부를 때도 여린 목소리로 감싸면서 절제하는 그의 노래처럼 말이다. 청중들도 그가 오늘의 무대에서 남김없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주었다고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쇼’란 문자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나니 패티김이 공연 초반에 했던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이날 공연이 얼마나 초조하고 긴장되고 두려웠는지 모른다”고 말문을 열더니 의외의 표현을 했다. “이제 오늘이 끝나면, 아임 프리(I’m free)”라고 소리친 것이다. 그 말은 진실하게 들렸다. 그러고 나서 지난해 2월 ‘은퇴’를 선언하고 기자회견까지 열었던 일의 의미도 새롭게 다가왔다. 그때 ‘아직도 은퇴한 게 아니었어?’라는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는 ‘은퇴’에 대해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개념을 갖고 있었다. ‘미국식’인지는 몰라도, 은퇴란 것은 사적·공적인 책임과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건 타의에 의해 밀려나서 ‘퇴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의로 물러나서 인생의 다른 챕터를 살아간다는 적극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혹은 앞으로는 그래야 한다.
은퇴 이후의 삶이 어떨지를 사유하기에는 나의 상상력이 아직 부족하다. 그렇지만 패티김이라는 한 명의 스타의 은퇴, 그리고 그 은퇴를 위한 의례였던 공연의 의미는 그 사유를 위한 좋은 텍스트가 되었다. 혹시 현대의 삶이란 자기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일까. 만 55년 가수인생의 마지막 ‘쇼’가 끝나면서 이제 그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건 할 만큼 했기 때문이다. 하고 싶으면 다시 할 수 있지만, 하기 싫으면 안 하면 그만이다. 그 점에서 패티김은 한국에서 ‘모더니티’의 아이콘 같은 인물이다. 사라질 때조차 말이다.
신현준/대중음악평론가·성공회대 연구교수
1958년 데뷔한 가수 패티김이 26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지난해 6월 시작한 은퇴 전국순회공연 중 마지막 무대인 ‘굿바이 패티’를 열고 있다. 피케이프로덕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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