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일본 왕실도 ‘투호’ 즐겼다

등록 2013-11-06 19:51수정 2013-11-06 22:44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의 쇼소인전에 나온 7~8세기께 옛 투호.(왼쪽) 나라시대 일본 귀족들의 명절 놀이도구로 표면 가득 화초, 선인 등의 모습을 새겨놓았다. 오른쪽 도판은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된 조선시대 전통 투호로 모양새가 다소 다르다. 도판 국립민속박물관·나라국립박물관 제공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의 쇼소인전에 나온 7~8세기께 옛 투호.(왼쪽) 나라시대 일본 귀족들의 명절 놀이도구로 표면 가득 화초, 선인 등의 모습을 새겨놓았다. 오른쪽 도판은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된 조선시대 전통 투호로 모양새가 다소 다르다. 도판 국립민속박물관·나라국립박물관 제공
일 왕실 보물창고 ‘쇼소인’서
투호 항아리·살대 등 전시
풍습 끊긴 일본서 연일 화제

한국 전통놀이로 알려졌지만
중국서 들어와 일본까지 전파
“고대에 밀접했던 한중일 3국
문화공동체 보여주는 유물”
“헤에~, 이걸 갖고 놀았다고요?”

몸체 양쪽에 귀가 달린 구리 항아리. 이게 놀이 도구라는 설명에 일본 관객들 눈이 쑥 커졌다. 옆 진열장엔 알록달록 색을 입힌 작은 화살들이 보였다. 지켜보던 주부 관객들이 소곤소곤 귓속말을 쏟아냈다. “항아리에 화살을 쏘아 넣었다니, 다트 비슷한 거야?” “점수를 어떻게 매겨서 승부를 했을까?”

우리 명절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전통 민속놀이가 일본의 유명한 ‘국민 전시회’에 자리를 틀고 앉았다. 주인공은 항아리에 화살을 던져 꽂아넣는 투호 놀이. 1300여년 묵은 일본 왕실의 옛 보물창고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으로도 불리는 나라현 쇼소인(정창원)의 이번 가을 소장품 전시에 투호 항아리와 살대가 핵심 전시품으로 ‘출진’(등장)했다. 7~8세기 나라시대 일 왕실의 귀족들이 즐기던 놀이 도구란 설명이 붙었다.

한국인들에게 투호는 한때 전통이 끊길까 우려하던 때도 있었지만, 80년대 이래 국가에서 전통 민속을 장려하면서 요즘에는 대표적인 명절 놀이로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현재 투호 풍습이 전하지 않는 일본인들에게 이 쇼소인 유물은 1300여년전 이를 즐겼던 귀족시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흥미로 다가오는 듯하다.

지난달 26일 나라국립박물관에서 막을 올린 65회 쇼소인 전(11일까지) 전시장의 투호 진열장은 많은 관객들이 즐겨찾는 인기 코너가 됐다. 투호 놀이의 개요와 사용법 설명을 유심히 보는 이들이 많았다. 후원사인 요미우리 신문사는 지면을 통해 투호의 고대 한반도 전래설을 소개하면서 전시장인 박물관 신관 밖에 투호항아리와 화살을 비치해놓고 체험마당도 운영중이다. “다트 같고 노리는 것은 힘들겠지만 해 보면 재밌겠다” “얼마나 떨어져 던졌는지, 어떻게 점수를 매겼는지, 투호를 즐겼던 옛 사람들의 열중하는 모습만 상상해봐도 가슴이 부풀어오른다”는 남녀노소 관객들의 반응을 소개하는 기사들도 현지 신문에 나왔다.

쇼소인의 투호
쇼소인의 투호

쇼소인의 투호(높이 31㎝)는 일본말로 ‘도코’라고 부른다. 상세히 보면 표면에 우아하고 멋스러운 나무 아래 귀인이나 사자, 화초 등의 무늬를 전면에 가득 새겨넣고 금도금을 한 일급 공예품이다. 목 부분 양쪽에 원통형 귀가 두개 있으며 세트로 전시중인 약 75㎝ 길이의 작은 화살을 두 사람이 교대로 던져 들어간 수를 점수로 쳐서 겨뤘다고 한다. 이 작은 화살들도 끝부분 촉에 쇠뿔 재료를 쓰고 금은물로 날개부분을 채색해 고급스러우면서도 앙증맞은 느낌을 자아낸다. 일본에서는 6~7세기 한반도를 거쳐 투호가 들어와 귀족들이 정월에 주로 놀이했다고 전해지는데, 절하고 성의를 표하는 등 예법이 까다로워 17~18세기 명맥이 끊겼다고 한다. 에도시대에는 그 영향으로 부채를 던지는 놀이가 대신 생기기도 했다.  

원래 투호는 고대 중국이 원산지다. 주나라 때 왕실이나 귀족들이 손님을 초대할 때 여흥으로 즐겼다는 기록이 있고, 한나라 무덤의 화상석에도 투호 장면이 새겨져 있다. <예기>에는 경기 때의 예의까지 규정할 만큼 예의범절을 따지는 귀족의 놀이였다. 당나라 때 접대용으로 크게 유행해 한국, 일본쪽에서 함께 즐기는 국제적인 유희가 됐다. 특히 한반도에서 투호에 대한 애착은 유별났다. <삼국지> ‘위지동이전’과 <북사> 등에 고구려, 백제인들이 투호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 때는 예종 임금이 보문각 학사들에게 투호 의례와 그림을 그리게 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예법에 맞게 선비들의 마음을 수양하고, 도를 함양하는 고품격 의 유희로 받아들여져 말기까지도 성행했다고 전한다. 전통 놀이를 연구해온 장장식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사는 “투호는 고대 동아시아 3국에서 유행했던 유희였지만, 지금 중국과 일본은 거의 사라졌고 한국에서만 즐기게 됐다”며 “쇼소인 투호는 고대에 더욱 밀접했던 한중일 3국의 문화 공동체적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이라고 말했다. 일본인들에게 잊혀졌다가 다시 향수로 되살아난 쇼소인 투호의 운명이 세태와 풍속의 덧없음을 느끼게 한다.

나라/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제공 국립민속박물관·나라국립박물관


쇼소인(正倉院)

1300여년 역사를 지닌 일 왕실의 보물창고다. 일본 옛 도읍 나라의 큰 절 도다이사 경내에 있으며 궁내청이 관리한다. 8세기 쇼무 일왕과 고묘 왕비가 절에 바친 보물들을 보관하기 위해 세워졌다. 보물들은 공예품, 의복, 가구, 문서 등 종류가 다양하며 1945년 종전 뒤 매년 가을마다 나라국립박물관에서 번갈아 공개해왔다. 쇼소인 전시는 전국 각지에서 수십만명의 관객이 몰려오는 일본의 국민적인 문화재 행사다. 가야금의 원형인 신라금, 백제 바둑판, 신라 촌락문서 등 우리 고대사와 연관된 희귀 유물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