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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김소민 기자 싸이·렉시 부비 콘서트서 부비다

등록 2005-08-31 16:59수정 2005-08-31 17:33

‘챔피온’을 부르는 렉시와 싸이에게 환호하는 관객들.
‘챔피온’을 부르는 렉시와 싸이에게 환호하는 관객들.
100℃르포

공연전 왜 왔어요? 하룻밤 7만7천원이라는데
“아무 생각없이 놀수 있잖아요”

공연뒤 어땠어요?…대놓고 노니까 좋긴한데
“기대만큼 파격적이진 않네요”

도대체 뭘 보여 주기에 19살 이상만 오라는 건가? 흡연구역을 선언한 ‘싸이와 렉시의 올나이트 부비 콘서트’ 말이다. ‘부비부비’, 남녀가 한 몸인 듯 밀착해 추는 춤을 일컫는 말이다. 게다가 싸이가 2003년에 벌인 성인용콘서트 ‘올나이트스탠드’에는 한회에 1만3천여명이 모였고 이도 모자라 암표까지 돌았다. 뭔가 특별한 것이 있나보다.

솔직히 이 후끈한 콘서트에서 ‘왕따’가 될까 두려워서 몸 단장에 꽤 신경썼다. 그런데 지레 겁먹고 난리 친 꼴이었다. 지난 27일 밤 9시께 서울 쉐라톤그랜드워커힐 호텔 비스타홀 앞, 줄 지어선 사람들의 대부분은 청바지에 면티를 편하게 입은 20대였다. 간간이 40대도 눈에 띄었다. 물론 등을 시원하게 드러낸 청춘들도 있었다.

이들은 뭘 바라고 하룻밤 공연에 7만7천원을 아낌없이 들였나? “아무 생각 없이 놀 수 있잖아요.”(김민혜·26) “미성년자관람불가라서 왔어요. 색깔 있는 가수들이잖아요.”(정민혁·가명·24) “에너지 넘치는 젊은 애들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서요.”(전희재·46) 이 밤의 주인공들이 나오기 전부터 관객은 이미 달아올라 있었다.

지난 27일 밤 9시께부터 3시간 동안 서울 쉐라톤그랜드워커힐 호텔 비스타홀에서 열린 ‘싸이와 렉시의 올나이트부비 콘서트’ 모습. 렉시와 싸이가 ‘애송이’를 부르며 춤추고 있다.
지난 27일 밤 9시께부터 3시간 동안 서울 쉐라톤그랜드워커힐 호텔 비스타홀에서 열린 ‘싸이와 렉시의 올나이트부비 콘서트’ 모습. 렉시와 싸이가 ‘애송이’를 부르며 춤추고 있다.
초록빛 레이저빔이 쏟아지며 몸에 달라붙는 푸른 옷를 입은 렉시가 등장하자 관객들은 뒤집어졌다. 그가 “남자들은 죄다 동물”이라고 주장하는 ‘애니멀’을 부를 때 조끼에 검은 바지 차림의 싸이가 렉시 주위를 야릇하게 맴돌았다. “자연스럽게 멋있게 미치는 거 도와줄 거죠?”(렉시) 붉은 핀조명(한사람만 비추는 조명) 아래서 ‘겟 아웃’을 부르고, 그룹 ‘원타임’과 이리저리 뛰며 ‘렛 미 댄스’를 들려준 렉시는 힘이 넘치는 여제였다. 그만큼 압도적이었지만 청소년이랑 같이 봐서 거북할 건 많지 않았다. 공연장 안에서 담배, 술을 살 수 있다는 걸 빼면 말이다.

좀더 깨놓고 화끈한 건 싸이의 공연부터였다. 무대 뒤 화면에 뜬 ‘권장 사항’은 다음과 같다. △과도한 흡연 △폭음(마시고 골로 가자) △기억상실(같이 자고 난 뒤 서로에게 “누구세요?”) △후회 그리고 다시 악순환. “선남선녀들의 악순환을 싸이가 책임 지겠다”는 것이다. 화면 속 만화 캐릭터가 권장 사항에 맞게 적나라하게 움직이자 반응은 이랬다. “우하하하~.” “애들 보면 안 되겠네.”(40대라고만 밝힌 남성)


이 40대도 싸이가 방방 뛰며 ‘새’를 부를 땐 애들 걱정은 잊은 듯했다. “완전히 새 됐어~.” 관객들이 목청껏 따라했고, 이 ‘아저씨’도 손을 머리 위로 올린 채 뛰었다. “싸이의 형제들 소리 질러봐! 싸이의 자매들 소리 질러봐!”(싸이) 20대 여성에게 “공연 어때요?”라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대놓고 노니까 좋잖아요? 묻지 말고 즐기세요.”

다음 ‘도발’은 싸이가 최근 내놓은 앨범 <리믹스&믹스 18번>에 담긴 ‘인생극장 에이형’을 부를 때 이뤄졌다. 예쁜 여자 친구가 바람을 피워도 찍 소리 못하는 비굴한 남성의 이야기를 노래하는데 무대 뒤 대형 화면엔 여장을 한 싸이가 뇌쇄적 관능미(?)를 드러내고 있었다. 검은 원피스에 망사 스타킹까지 신은 싸이가 ‘진짜’ 남성과 희롱하자 관객은 자지러졌다. “예쁜가요? 샤론 스톤을 생각하고 고른 옷이에요.”(싸이)

공연에 빠져들게 하는 건 재기발랄한 ‘도발’만이 아니었다. 물불 안 가리고 무대에 쏟아붓는 싸이의 에너지가 관객 2700명의 눈을 묶어뒀다. 훤칠한 남성 무용수들이 공중 위로 다리를 돌리며 브레이크댄스를 춰도 그 가운데 선 오동통한 싸이가 도드라졌다. “그래 나 이런 놈이다, 어쩔테냐” 또는 “다 덤벼”라고 말할 듯한 거침없음과 쏟아내리는 땀이 그의 카리스마를 이루는 재료였다.

될 대로 되라. 고백컨대 이 에너지에 매료된 나는 객관적 관찰자여야 하는 기자의 본분을 잊고 싸이의 자매가 돼 버렸다. 조금 더 잘 보겠다고 상자 위에 올라서서 흔들다 뒤로 나자빠졌고, 취재수첩을 한 손에 쥔 채 팔짝팔짝 뛰었다. 싸이가 “행복하면 담배를 피운다”며 담배를 물고 ‘서른 즈음에’를 부를 땐 “또 하루 멀어져 간다”라고 따라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와 렉시가 마지막곡 ‘챔피언’을 끝냈을 때 관중과 한 묶음으로 “밤 새! 밤 새!”를 외쳤다. 다만 변명하고 싶은 건 그 누구라도 그곳에서는 이성의 끈이 헐거워지는 시원한 해방감에 조금은 도취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점이다.

콘서트가 3시간 만에 끝난 뒤 계속 서서보다 지친 관객들 몇몇은 바닥에 앉아 있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은 없었다. 김지희(25)씨는 “앞이 너무 안 보였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자유분방해서 좋았다”고 말했다. 반면에 변연경(25)씨는 “기대했던 것 만큼 파격적이진 않다”며 아쉬워했다.

이 콘서트를 연출한 함윤호 좋은콘서트 프로듀서는 “좀 더 세게 나가려고 했는데 기자나 서울시 공무원이 보고 ‘얘네 안 되겠네’라며 단속하거나 비난할까봐 수위를 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돈 있고 힘 있는 25~35살 사람들이 사실 놀 데가 별로 없다”며 “이번 공연은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와이지엔터테인먼트·야마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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