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온’을 부르는 렉시와 싸이에게 환호하는 관객들.
100℃르포
공연전 왜 왔어요? 하룻밤 7만7천원이라는데
“아무 생각없이 놀수 있잖아요” 공연뒤 어땠어요?…대놓고 노니까 좋긴한데
“기대만큼 파격적이진 않네요” 도대체 뭘 보여 주기에 19살 이상만 오라는 건가? 흡연구역을 선언한 ‘싸이와 렉시의 올나이트 부비 콘서트’ 말이다. ‘부비부비’, 남녀가 한 몸인 듯 밀착해 추는 춤을 일컫는 말이다. 게다가 싸이가 2003년에 벌인 성인용콘서트 ‘올나이트스탠드’에는 한회에 1만3천여명이 모였고 이도 모자라 암표까지 돌았다. 뭔가 특별한 것이 있나보다. 솔직히 이 후끈한 콘서트에서 ‘왕따’가 될까 두려워서 몸 단장에 꽤 신경썼다. 그런데 지레 겁먹고 난리 친 꼴이었다. 지난 27일 밤 9시께 서울 쉐라톤그랜드워커힐 호텔 비스타홀 앞, 줄 지어선 사람들의 대부분은 청바지에 면티를 편하게 입은 20대였다. 간간이 40대도 눈에 띄었다. 물론 등을 시원하게 드러낸 청춘들도 있었다. 이들은 뭘 바라고 하룻밤 공연에 7만7천원을 아낌없이 들였나? “아무 생각 없이 놀 수 있잖아요.”(김민혜·26) “미성년자관람불가라서 왔어요. 색깔 있는 가수들이잖아요.”(정민혁·가명·24) “에너지 넘치는 젊은 애들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서요.”(전희재·46) 이 밤의 주인공들이 나오기 전부터 관객은 이미 달아올라 있었다.
지난 27일 밤 9시께부터 3시간 동안 서울 쉐라톤그랜드워커힐 호텔 비스타홀에서 열린 ‘싸이와 렉시의 올나이트부비 콘서트’ 모습. 렉시와 싸이가 ‘애송이’를 부르며 춤추고 있다.
이 40대도 싸이가 방방 뛰며 ‘새’를 부를 땐 애들 걱정은 잊은 듯했다. “완전히 새 됐어~.” 관객들이 목청껏 따라했고, 이 ‘아저씨’도 손을 머리 위로 올린 채 뛰었다. “싸이의 형제들 소리 질러봐! 싸이의 자매들 소리 질러봐!”(싸이) 20대 여성에게 “공연 어때요?”라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대놓고 노니까 좋잖아요? 묻지 말고 즐기세요.” 다음 ‘도발’은 싸이가 최근 내놓은 앨범 <리믹스&믹스 18번>에 담긴 ‘인생극장 에이형’을 부를 때 이뤄졌다. 예쁜 여자 친구가 바람을 피워도 찍 소리 못하는 비굴한 남성의 이야기를 노래하는데 무대 뒤 대형 화면엔 여장을 한 싸이가 뇌쇄적 관능미(?)를 드러내고 있었다. 검은 원피스에 망사 스타킹까지 신은 싸이가 ‘진짜’ 남성과 희롱하자 관객은 자지러졌다. “예쁜가요? 샤론 스톤을 생각하고 고른 옷이에요.”(싸이) 공연에 빠져들게 하는 건 재기발랄한 ‘도발’만이 아니었다. 물불 안 가리고 무대에 쏟아붓는 싸이의 에너지가 관객 2700명의 눈을 묶어뒀다. 훤칠한 남성 무용수들이 공중 위로 다리를 돌리며 브레이크댄스를 춰도 그 가운데 선 오동통한 싸이가 도드라졌다. “그래 나 이런 놈이다, 어쩔테냐” 또는 “다 덤벼”라고 말할 듯한 거침없음과 쏟아내리는 땀이 그의 카리스마를 이루는 재료였다. 될 대로 되라. 고백컨대 이 에너지에 매료된 나는 객관적 관찰자여야 하는 기자의 본분을 잊고 싸이의 자매가 돼 버렸다. 조금 더 잘 보겠다고 상자 위에 올라서서 흔들다 뒤로 나자빠졌고, 취재수첩을 한 손에 쥔 채 팔짝팔짝 뛰었다. 싸이가 “행복하면 담배를 피운다”며 담배를 물고 ‘서른 즈음에’를 부를 땐 “또 하루 멀어져 간다”라고 따라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와 렉시가 마지막곡 ‘챔피언’을 끝냈을 때 관중과 한 묶음으로 “밤 새! 밤 새!”를 외쳤다. 다만 변명하고 싶은 건 그 누구라도 그곳에서는 이성의 끈이 헐거워지는 시원한 해방감에 조금은 도취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점이다. 콘서트가 3시간 만에 끝난 뒤 계속 서서보다 지친 관객들 몇몇은 바닥에 앉아 있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은 없었다. 김지희(25)씨는 “앞이 너무 안 보였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자유분방해서 좋았다”고 말했다. 반면에 변연경(25)씨는 “기대했던 것 만큼 파격적이진 않다”며 아쉬워했다. 이 콘서트를 연출한 함윤호 좋은콘서트 프로듀서는 “좀 더 세게 나가려고 했는데 기자나 서울시 공무원이 보고 ‘얘네 안 되겠네’라며 단속하거나 비난할까봐 수위를 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돈 있고 힘 있는 25~35살 사람들이 사실 놀 데가 별로 없다”며 “이번 공연은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와이지엔터테인먼트·야마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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