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보큰에서 열린 퍼레이드, 1955. ⓒ로버트 프랭크
‘로버트 프랭크’ 사진전
1950년대 미국 어두운 부분 포착
당시엔 혹평…뒤늦게 거장 반열에
대표작 ‘미국인들’ 등 115점 전시
1950년대 미국 어두운 부분 포착
당시엔 혹평…뒤늦게 거장 반열에
대표작 ‘미국인들’ 등 115점 전시
“그의 사진은 의미 없이 흔들렸고, 입자가 거칠고 노출은 우중충하며 술에 취한 듯 수평이 어긋났는데다가 대체로 엉성하다.”
1959년 미국인들은 로버트 프랭크(1924~)의 사진집 <미국인들>(The Americans)을 보고 싸늘한 평을 내놓았다. 미국의 어두운 부분을 들여다본 이 사진집은 겨우 1100부 정도가 팔렸고, 곧 절판되고 말았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지금 <미국인들>은 ‘사진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컸던 사진집’ 중 하나로 꼽힌다.
왕따에서 거장으로 평가가 극단적으로 바뀐 사진 대가 로버트 프랭크의 작품이 한국에 온다. 사진전 ‘로버트 프랭크’가 2014년 2월9일까지 한미사진미술관(송파구 방이동)에서 열린다.
2004년 ‘미국인들’ 연작이 일부 국내에 소개된 적은 있었지만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소개하는 전시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시에선 대표작 ‘미국인들’ 연작이 대거 포함됐고, 1940년대 초기 작품부터 영화계에 투신했던 시기의 영화 스틸컷, 다시 사진으로 돌아온 1970~1990년대의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폴라로이드 작업까지 모두 115점을 모두 스위스 빈터투어사진미술관과 스위스사진재단법인이 소장한 오리지널 프린트로 선보인다.
로버트 프랭크는 이민자였다. 스위스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1947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패션 잡지 <하퍼스 바자> 사진가로 일했다. 상업사진가로 재능을 보였지만 곧 그는 ‘사진=돈’이란 공식에 몰입하고 있는 자신과 미국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남아메리카와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 시기 그는 여러 장의 사진을 하나의 주제로 구성하는 법을 고민하며 포토 에세이 형식을 정립해나갔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꿨고 사진계를 뒤흔든 ‘미국인들’ 시리즈를 시작한다. 1955년 중고 포드차를 구입한 뒤 2년 동안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2만컷 넘는 사진을 찍었다. 아직 인종차별이 심하던 시기, 그는 ‘흑인과 백인 전용칸이 구분된 전차’, ‘흑인 유모가 안고 있는 백인 아이’ 등 민감하고 어두운 부분에 렌즈를 들이댔다. 반유대인 정서가 강했던 지역에선 수상한 사람이란 의심을 사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다.
필생의 작업을 사진집으로 펴내려고 했지만 사진계에선 “사진의 기본이 안 되어 있다”며 그의 사진을 거부했다. 결국 그는 유럽 사진계의 핵심 인사였던 로베르 델피르에 눈에 들어 1958년 미국이 아닌 프랑스에서 사진집을 출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미국에서도 책이 나온다. <뉴요커>만이 “멋진, 사회적 논평”이라 했을뿐 혹평이 쏟아졌다. “결점으로 점철된 미국의 사진들이다. 그를 받아준 나라를 혐오하는 어떤 침울한 남자가 미국민들 사이에 혐오를 전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찍은 사진처럼 보인다”(<파퓰러 포토그래피>). 성조기가 잘리거나 구겨진 채로 등장하고, 카우보이는 후줄근한 옷을 입고 쓰레기통에 기대있고, 사람들은 방향을 잃고 좀비처럼 둥둥 떠다니는 듯한 사진을 보면 미국의 미래 따위는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서히 평가는 바뀌어갔다. 미국과 외국 사진가들 중 일부는 그를 주목했다. 1960년대 후반 그의 책은 다시 재판을 찍게 되었고, 10년 만에 그는 수많은 후배 사진가들에게 영향을 준 존재가 되어 있었다. 낸 골딘, 제임스 나츠웨이, 유진 리처드 등 1970년~80년대에 사진을 시작한 다큐멘터리 사진가들 중에서 ‘미국인들’에 심취하고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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