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 무대·의상 디자인 전시
자코모 만추·조르조 데 키리코 등
예술 거장들의 무대설계 ‘눈길’
자코모 만추·조르조 데 키리코 등
예술 거장들의 무대설계 ‘눈길’
오페라 의상 디자이너나 무대 디자이너 같은 전문 직종이 아직 등장하기 전인 20세기 초·중반에는 누가 이런 일들을 했을까?
정답은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인 화가나 건축가, 삽화가들이었다. 20세기를 대표했던 예술가들이 작업한 로마 오페라 의상·무대디자인이 한국을 찾았다. 내년 1월5일까지 계속되는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 <눈으로 듣다: 로마 오페라극장 의상·무대디자인 100선>을 관람하면서 1880년 로마 오페라 극장으로 130여년을 거스른 시간 여행을 해보자.
먼저 성 베드로 대성당의 문 부조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대표적 조각가 자코모 만추가 한 오페라 <오이디푸스 왕>(1963) 무대 디자인 스케치가 눈길을 끈다. 당시 무대디자인은 현대의 ‘무대 세트’가 아닌 배경막 그림이 대부분이었다. 20세기 초에는 극장이 당대 최고의 예술가에게 무대 디자인을 의뢰해 스케치를 넘겨 받으면 극장 소속의 화가들이 무대 크기에 맞게 실제로 제작을 했다. 만추의 작품 역시 거대한 무대 배경막을 63×72㎝로 축소해 그린 것이다. 이 배경막은 극히 단순하고 추상적인데,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큐비즘의 영향으로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초현실주의 화풍을 구사했던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의 의상 디자인도 놓치지 말자. 키리코는 <오텔로>(1963~64)에서 무대와 의상을 한꺼번에 디자인했는데, 특히 당시 데스데모나 역을 맡은 배우 비르지니아 제아니가 입었던 의상은 붉은색 실크 드레스(사진)에 금사로 옷단을 처리해 화려함을 자랑한다. 20세기 예술가들은 옷감이나 장식의 소재를 특정하지 않은 채 영감을 줄 수 있는 실루엣 위주의 스케치를 하고, 실제 제작을 담당한 극장 소속 의상 제작자들이 작품에 어울리는 옷감 등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 밖에 <율리우스 시저>(1955)에서 클레오파트라 역의 오넬리아 피네스키가 입었던 갈색의 실크 벨벳드레스, 발레 <세상의 창조>(1955)에 쓰였던 가면 3점 등도 관람객들의 눈을 유혹한다. 또 실제 발레 <11월의 계단> 무대에 걸렸던 배경막을 30×40㎝로 잘라 보관했다는 알베르토 부리의 작품 <백색균열>도 눈길을 끈다.
전시장 한쪽에서는 오페라 의상과 무대 디자인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공연 실황을 담은 영상도 만날 수 있다. 강홍빈 서울역사박물관장은 “로마 오페라 극장의 소장품 중 최다 작품을 전시한 기획전”이라며 “시민들이 종합예술인 오페라의 정수를 ‘눈으로 즐기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무료, (02)724-0274.
유선희 기자,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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