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명 오케스트라 도이체 카머필
잘 알려진 바그너풍 웅장함 아닌
경쾌하고 따스하고 우아한 연주
지휘자 예르비 “데시벨 경쟁보다
음악 이면의 볼륨감 이끌어냅니다”
내달 4~5일 서울 예술의전당 연주
잘 알려진 바그너풍 웅장함 아닌
경쾌하고 따스하고 우아한 연주
지휘자 예르비 “데시벨 경쟁보다
음악 이면의 볼륨감 이끌어냅니다”
내달 4~5일 서울 예술의전당 연주
“나는 수십년간 베토벤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구나!”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는 지휘자 중 한 명인 파보 예르비(51)는 10년 전 단원 40명 남짓의 체임버 오케스트라(실내관현악단)인 도이체 카머필하모니를 이끌고 베토벤의 교향곡을 연주한 뒤 무릎을 쳤다. 수많은 음악가와 청중이 한 세기 동안 모범 답안으로 여겼던 베토벤 교향곡의 해석이 ‘바그너 시대의 유물’이며, 전혀 ‘베토벤적’이지 않음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베토벤 교향곡의 유명한 해석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바그너와 동시대를 산 지휘자들에 의해 확립됐습니다. 바그너의 출현 이후 음악계는 완전히 뒤바뀌었고, 바그너를 수호하는 지휘자들은 베토벤 교향곡의 연주를 바그너풍으로 드라마틱하고 웅장하게 바꿔 놓았죠.”
에스토니아 출신의 이 지휘자를 지난 22일 일본 나고야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이달 말까지 일본 5개 도시를 투어중인 그와 도이체 카머필은 다음달 4~5일 내한 공연이 예정돼 있다. 그가 2004년 도이체 카머필을 이끌고 새로운 관점에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와 음반 녹음에 도전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이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같은 거장 지휘자들의 걸출한 베토벤 교향곡 사이클(전곡 연주) 음원이 많은데 또 다른 게 필요하겠느냐며 다들 반대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베토벤 교향곡에 대해 할 말이 있었거든요. 10년이 지난 지금은 사람들이 저희에게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고 칭찬하더군요.”
인터뷰 다음날인 23일 나고야에서 열린 연주회는, ‘70~80명 규모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교향곡에 길든 한국 청중이 이들의 베토벤을 환영할까?’라는 염려를 말끔히 씻어줬다. 베토벤의 <피델리오 서곡>과 <교향곡 3, 4번>은 경쾌한 속도감과 생동감, 선명한 대비로 산뜻한 맛을 내는 동시에 따스하고 우아한 어조를 잃지 않았다. 대편성 연주에 비해 현악기부의 연주자 수가 적지만 음향층이 얇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군살을 덜어냄으로써 곡의 구조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목관 악기의 다채로운 음색이 부각돼 음악의 표정이 풍부해졌다. 점잖게 손뼉만 치기로 소문난 일본 청중으로부터 열띤 환호를 받으며 예르비가 지휘대에서 내려올 때쯤에는 전날 인터뷰 때 그가 했던 말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음악의 볼륨(부피감)이란 매우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만드는 볼륨은 크고 소규모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볼륨은 작다는 식의 생각은 우리랑 맞지 않아요. 우리는 음악 이면의 맥락에서 볼륨감을 이끌어냅니다. 데시벨의 개념으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브람스가 <교향곡 1번>의 초연을 직접 지휘했을 때 연주자 수는 40명에 불과했는걸요. 우리는 우리 방식에 대한 믿음이 있고, 실제 연주를 통해 체임버 오케스트라 형태가 더 좋은 소리를 낸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악단의 몸집을 날렵하게 줄이고 원전에 가까운 맛을 살린, 이들의 베토벤 교향곡을 감상할 기회가 한국 청중에게도 찾아온다. 예르비와 도이체 카머필은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다음달 4~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 <교향곡 3, 4, 5, 7번>을 연주한다.
또한 올해를 시작으로 매해 한국을 찾아 2014년 ‘브람스 프로젝트’, 2015년 ‘슈만 프로젝트’, 2016년 ‘베토벤 프로젝트’를 차례로 진행하며 교향곡 전곡 연주 대장정을 이어갈 예정이다.
나고야/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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