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간결한 서사극?…이질적 작가와 연출가의 결합

등록 2013-11-28 19:54수정 2013-11-28 21:18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의 김지훈 작가(왼쪽)와 김광보 연출가. 연극계 10년 선후배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이질적인 조합이었지만 연극을 만들면서 서로의 작업세계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의 김지훈 작가(왼쪽)와 김광보 연출가. 연극계 10년 선후배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이질적인 조합이었지만 연극을 만들면서 서로의 작업세계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국립극단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
남성세계에 맞서는 여성들 이야기
5시간 분량 대본이 절반으로 ‘뚝’
지독한 난산이었다.

한국 연극계에서 기가 세기로 소문난 두 사람이 부딪혔으니 불꽃이 아니 일 수 없었다. 여덟달 동안 대본을 11번이나 고치면서 원래 대본 내용의 절반이 떨어져 나갔다. 27일 서울 서계동 백성희장민호극장 무대에 오른 국립극단의 신작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은 그렇게 힘들게 나왔다. 방대한 서사를 풀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김지훈(34) 작가와 담백하고 간결한 미장센을 추구하는 김광보(49) 연출가가 만난 결과물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지난해 연말 발표되자마자 연극계의 화제였다. 작가 김지훈씨는 <원전유서> <풍찬노숙> <양날의 검> 등에서 자신감 넘치는 언어 표현과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거대 담론을 풀어놓으며 주목받은 작가. 연출가 김광보씨는 <인류 최초의 키스>, <프루프>, <에쿠우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동토유케> 등에서 최소한의 것으로 본질을 드러내는 미니멀리즘의 달인으로 평가받았다. 올해 <그게 아닌데>로 대한민국 대부분의 연극상을 휩쓸기도 했다.

“2월 일본 여행 중에 대본을 전달받아 밤새 읽는데 저절로 ‘어이쿠’ 비명이 터져나왔습니다. 김지훈 작가의 인문학적 지식은 잘 알고 있었지만 내용이 너무 방대했어요. 완전히 블록버스터에다 판타지가 첨가되어서 굉장했습니다.”

김광보 연출가는 이번처럼 몸무게가 많이 빠진 적이 없었다고 했다. “작가 스스로 절반을 줄인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인데 잘 이해해줘서 고맙죠.”

그러자 김지훈 작가는 “오랫동안 제 작품에 대해 고민했던 화두를 풀어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다 보니 5시간 가까운 분량이 됐었다”며 연출자에게 미안해했다. “처음 <원전유서>를 쓸 때 제 30대의 모든 것을 담았어요. 그때 연희단거리패 이윤택 선생님이 ‘넌 이걸 해놓고 10년은 고생할 것’이라고 하셨어요. 저는 ‘그럴 리 없습니다. 매번 바뀔 겁니다’고 대꾸했는데 그 말씀이 맞더라고요. 제 생각을 다 소모하고 새로 채워놓아야 했는데 그게 30대에는 안 되는 어떤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 틀에서 벗어나려고 쓴 게 바로 <전쟁터…>입니다.”

김 연출가는 “올해 4월 140페이지로 첫날 연습을 마치고 술집에 가면서 김 작가에게 ‘어쩌면 너와 나는 이질적인 조합이다. 완전히 실패할 수도 있고 완전히 새로운 결과물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말했더니 김 작가도 고개를 끄덕이더라”며 껄껄 웃었다.

<전쟁터…>는 시대를 알 수 없는 상상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나라를 세우려고 끝없이 전쟁을 벌이는 ‘도련님’(이승주), 그의 정적인 ‘대장군’(이호재), ‘독선생’(김재건), ‘늙은 유자’(오영수)의 갈등과 암투를 그린다. 그리고 전쟁터를 점령해 땅을 일구려는 화전민 여인들(길해연, 황석정, 김정영)을 삶을 대비해서 보여준다.

김 작가는 “2011년부터 <조선왕조실록>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이놈의 역사는 쳇바퀴 돌듯 똑같더라”며 “처음에는 잘해보자더니 나중에 망할 때는 곪을 대로 곪는 게 동서고금이 매한가지”더라고 집필 계기를 설명했다. “사실상 남성적인 이야기인 건국 이야기를 계급보다 더 값지고 의미 있는 모성으로 덮어버리면 어떨까 하는 전복적인 상상을 해봤다”는 것이다. 김 연출가는 이를 “무지막지한 남성세계에서 배척당해도 맞서 싸워나가는 여성들이 보여주는 감동”이란 주제로 뽑아냈다. “대지와도 같은 여인들이 죽음으로 이 상황을 껴안고 모든 것을 승화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12월8일까지, 1688-5966.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