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콕콕] 판소리에 부채 나오는 이유
판소리 공연장에 가면 남녀 명창들이 ‘쥘부채’(합죽선)를 폈다, 접었다 하면서 소리를 뽑아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부터 부채는 여름에 더위를 식혀주고, 찬 바람이나 먼지를 막아주며, 껄끄러운 상대와 부딪치게 될 때 자연스레 얼굴을 가리는 등 다양한 용도로 쓰였습니다. 게다가 그 옛날 선비들이 의관을 갖추고 외출할 때 맵시를 마무리하는 것도 부채였습니다. 그런 부채가 왜 판소리에 등장했을까요?
판소리 공연에서 소리꾼은 ‘창’(소리)과 ‘아니리’(독백), ‘너름새’(몸짓)를 섞어가며 긴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이 가운데 ‘너름새’는 소리꾼의 연기라고 할 수 있지요. 슬픈 장면에는 우는 시늉을 하고, 흥겨울 때는 춤을 추기도 합니다. 이때 소리꾼은 부채를 적절히 사용해서 이야기와 사건의 전개를 효과적으로 표현해냅니다. 예를 들어 판소리 <춘향가>에서 춘향이가 매를 맞는 대목에서는 곤장으로 사용하고, <흥부가>에서 흥부가 박을 탈 때에는 톱이 되고, <심청가>에서 심봉사의 지팡이가 되며, <적벽가>에서는 관운장의 청룡도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판소리에서 부채는 소리꾼에게 떼어놓을 수 없는 소도구라고 할 수 있지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였던 만정(晩汀) 김소희(1917~1995) 명창의 부채를 활용한 너름새는 유명했습니다. 그가 부른 <심청가>에서 남경선인에게 몸을 판 심청이 배를 타고 인당수에 이르러 치마폭 뒤집어쓰고 바다에 풍덩 뛰어드는 장면은 이렇습니다. 김소희 명창은 부채를 집어들고 바다와 같은 무대 바닥을 내려다보다가 “풍덩” 소리와 함께 부채를 툭 떨어뜨립니다. 그 순간 객석에서는 안타까운 탄식소리가 터져나오곤 했습니다.
그러면 판소리에서 부채는 언제 유래하였을까요?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의 김경희(50) 학예연구관은 15~16세기 무렵 조선의 놀이판을 이끌었던 ‘광대 집단’의 주축인 ‘줄광대’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귀띔합니다. 줄광대는 영화 <왕의 남자>에서 등장했던 바로 그 줄타기 재주꾼이지요. 줄광대는 줄타기를 할 때 몸의 균형을 잡고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고 긴장감을 더하기 위해 부채를 손에 쥐고 소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이후 광대 집단의 재주가 다양해지면서 판소리가 성행하게 되었고 판소리 소리꾼 역시 ‘소리광대’라고 불리며 18세기께부터 큰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역시 ‘소리광대’도 극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부채’를 손에 쥐고 소도구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