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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시간을 견뎌온 이적

등록 2013-11-29 19:49수정 2015-10-23 14:39

이적은 1위와는 거리가 있는 뮤지션이었다. ‘달팽이’로 데뷔했던 1995년부터 주류에는 속해 있었지만 그 중앙을 꿰뚫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바람대로 ‘다행이다’, ‘하늘을 달리다’, ‘거위의 꿈’처럼 시간을 견디는 노래들을 계속해서 만들어왔다. 뮤직팜 제공
이적은 1위와는 거리가 있는 뮤지션이었다. ‘달팽이’로 데뷔했던 1995년부터 주류에는 속해 있었지만 그 중앙을 꿰뚫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바람대로 ‘다행이다’, ‘하늘을 달리다’, ‘거위의 꿈’처럼 시간을 견디는 노래들을 계속해서 만들어왔다. 뮤직팜 제공
[토요판] 대중음악
이적의 다섯번째 솔로 앨범 <고독의 의미>는 1995년 데뷔 이래 그가 해온 작업들의 결산처럼 들린다. 패닉을 연상케 하는 곡이 있고, 카니발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들이 있으며, 최근의 어쿠스틱 사운드의 연장선상에 있는 곡들이 있다. 우선 장르가 다양하다. ‘다행이다’가 담겨 있던 3집과 ‘빨래’가 실려 있던 4집이 어쿠스틱 일변도였던 반면, <고독의 의미>는 일렉트로닉 성향의 음악부터 모던록, 그리고 ‘병’처럼 파격적인 노래도 실려 있다. 이적은 최근의 어떤 앨범들에서보다 그에 맞는 다양한 창법들을 구사하며 앨범을 풍성하게 만든다. 그의 음악을 꾸준히 들어왔던 사람들이라면 ‘달팽이’부터 ‘다행이다’에 이르기까지 그가 걸어왔던 어떤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대개 지금 음악 시장의 경향에서 벗어나 있는 곡들이다. 그러니까, 음원이 아닌 음반으로 음악을 들었던 시대에만 가능했던 시도들 말이다. 앨범 발매 직전 연 기자회견에서 “마지막 정규 앨범이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작업했다”는 이적에게 물었다.

“항상 생각한다. 시디(CD)에서 앨범에서 음원으로 가는 거의 제일 큰 변화는 파일로 듣는다는 행위가 아니다. 결국 한 곡 단위, 싱글 단위의 감상으로 완전히 전환되기 때문에 앨범이 아니면 넣을 수도 발표할 수도 없는 애매한 곡들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거다. 앨범 안에서 전체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곡들 말이다.”

그럼에도 <고독의 의미>는 높은 성적을 거뒀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 이적에게 처음으로 음원 차트 1위의 기쁨을 안겨준 것을 비롯해 앨범 수록곡 대부분이 상위권에 머물렀다.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한다면 아이돌과 오디션 출신 가수들이 도배하는 음원 시장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사실 이적은 1위와는 거리가 있는 뮤지션이었다. 그의 커리어를 다시 세운 ‘다행이다’도 차트에서 1위를 한 적은 없었다. 처음엔 미적지근했다. 하지만 구전가요가 퍼져나가듯 ‘다행이다’도 퍼져나갔다. 노래방에서, 결혼식에서 남들이 부르는 걸 듣고 노래는 퍼져나갔다. 이 노래가 담긴 <나무로 만든 노래>를 발표할 무렵, 그는 앞으로 음악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팬이 줄어드는 정도는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 드는 거다. 경제성장률이 2% 이하가 되면 위기감을 느끼듯 성장을 해도 위기감을 느끼는데 성장을 안 하기 시작하면 정말 큰일 아닌가.” 그런 위기를 ‘다행이다’는 단숨에 극복하게 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그 전까지는 ‘달팽이’의 이적이었다. ‘그땐 그랬지’의 이적도,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의 이적도, ‘레인’의 이적도 되지 못했다. 그런데 ‘다행이다’의 이적이 된 거다. 해가 넘어가서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상도 받지 않았나. 나한테는 굉장히 큰 의미였다. 정서적인 보상이랄까? ‘몇년 더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2008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나무로 만든 노래>와 ‘다행이다’는 ‘올해의 음반’, ‘올해의 노래’ 등 모두 4개의 트로피를 가져갔다. 이 노래, 그리고 이 앨범은 인기와 영예만 안겨다준 게 아니다. 다음의 행보 역시 가능하게 했다. 본격적으로 티브이 예능에 진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1위’와는 거리가 있는 뮤지션
주류지만 중앙이 된 적 없는 가수
‘다행이다’와 같은 히트곡도
시간을 견디며 세상에 알려졌다

 

이제는 본격 예능에 진출하고
솔로 5집은 음원 1위를 기록
그렇게 오늘의 이적이 만들어졌다

한국에서 예능이란 ‘연예인’의 몫이지 ‘음악인’의 영역은 아니었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비롯한 소수의 전문 음악 프로그램만이 음악인들을 볼 수 있는 티브이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들어 이런 벽이 깨지기 시작했다. <놀러와>에서 쎄시봉, 들국화가 소개되고 <무한도전>의 가요제 특집을 통해 인디 밴드들이 스타덤에 올랐다. <사랑>을 발표하며 이적은 <놀러와>에 루시드 폴, 정재형, 장기하 등 자신의 친구들을 데리고 나갔다.

“우리 어렸을 때는 그쪽에서 텃세가 심했다. ‘어이구 고고하신 양반이 피아르(PR)하러 나오셨네’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출연자에 대한 리스펙트가 보이더라. <놀러와>도 똥 싼 이야기, 이런 거 안 하고 음악 이야기 하면서 서로 약간 놀리면서 가도 되는 거였다. 시청률도 잘 나왔다. 우리 딴에는 용기를 내서 한 건데 보는 사람들은 자주 나오라는 분위기인 거다. 그렇게 다들 편해졌다.” <무한도전>, <짧은 다리의 역습-하이킥3>, <방송의 적>에 이르는 이적의 예능 행보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정재형, 성시경 등 뮤지션들이 예능에 마음을 터놓는 단초이기도 했다. ‘다행이다’의 이적은 그렇게 ‘달팽이’의 이적과 달라졌다.

‘달팽이’로 데뷔했던 1995년부터 그는 주류에 속해 있되 그 중앙을 꿰뚫은 적은 없었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200만장 판매라는 신화를 쓰던 1995년은 바야흐로 댄스뮤직의 시대였다. 신승훈의 발라드 역시 건재했다. 그런 상황에서 스파이크 헤어를 하고 등장한 2인조 패닉은 댄스뮤직도, 전형적인 발라드도 아니었다. 첫 타이틀 곡으로 ‘아무도’를 내세웠지만 반응은 영 신통찮았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어쨌든 앨범을 찍으면 10만장은 팔린다는 때였다. 초기에 패닉 1집을 샀던 이들이 ‘달팽이’를 발견한 것이다. 라디오에 신청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런 걸 미냐”며 방치했던 곡이었다. 그래서 김진표의 파트도 없었다. ‘달팽이’로 활동곡을 급선회하기로 결정한 뒤 본래 없던 색소폰 솔로를 삽입해 부랴부랴 김진표가 무대에 설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 티브이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나이 스물두살 때였다. 주변에서 ‘달팽이’ 같은 노래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다른 생각 하지 말고 발라드나 쓰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좀 건방진 게 우리는 스타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애초 목표로 삼았던 게 삐삐밴드였다. 그들이 당시 10만장 정도 팔면서 음악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가졌었다. 그래서 우리도 저 정도만 하자 했는데, 판매량이 훨씬 많아지고 1위 하고 이렇게 되면서 좀 겁이 났다. 너무 대중적으로 풀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땐 어렸으니까. 그래서 거꾸로 갔다.”

이적의 전체 디스코그래피에서 ‘문제작’이라 할 수 있는 앨범, 패닉의 2집 <밑>이었다. 학교, 나아가 모든 기성세대에게 조롱과 냉소를 넘어선 폭언과 독설을 날렸던 이 앨범의 메시지는 전위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음악과 맞물려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안겼다. 음반사전심의제도가 폐지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등장했기에 기성 언론은 문화면이 아닌 사회면에 이 앨범을 소개했다. “이거 봐라. 심의 철폐되니까 이딴 새끼들이 이런 걸 내지 않느냐 하면서 표현의 자유 이대로 좋은가. 사진 패닉.” 앨범 판매량은 1집보다 확연히 떨어졌다. 하지만 <밑>의 반향은 컸다. 티브이에서는 에이치오티(H.O.T.)가 ‘캔디’로 새로운 아이돌 시대를 열고 홍대 앞에서 크라잉넛, 델리스파이스 등 1세대 인디 밴드들이 솟아오르던 1996년, 빅스타가 발매한 이 불온한 앨범은 말하자면 시대의 혼종 교배에 다름 아니었다. 많은 평론가와 관계자들이 이적 최고의 앨범이라 평가하는 이유다.

“음악사적인 의미에서 그렇게 짚긴 좋겠지만 명반, 이런 데 올려놓으면 민망하다. 지금 들으면 콘서트 때 별로 하고 싶지가 않다. 노래보다 구호가 더 앞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이 계속 흘러도 좋은 음악을 하고 싶다. 예를 들어서 패닉 1집과 2집을 비교해서 ‘왼손잡이’와 ‘유에프오’(UFO)가 있으면 ‘왼손잡이’가 조금 더 깊은 은유를 갖고 있다. 부르면 부를수록 의미가 확장되기 때문이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했을 때 일이다. 배철수가 이적에게 물었다. 어떤 음악을 하고 싶냐고. 잠시 숙고한 이적은 답했다. 시간을 견디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차트를 날아다닌 음악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적의 많은 노래들은 시간을 견뎌왔다. ‘하늘을 달리다’, ‘거위의 꿈’ 같은 노래들은 발표 뒤 한참 지나 다른 이들의 목소리로 화려하게 살아나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쌓여, 오늘의 이적이 됐다. “매니저들끼리 하는 얘기가 있다. 아무리 홍보를 잘하고 방송을 발라도 될 노래가 아니면 안 된다. ‘노래가 7, 나머지가 3’이라는 거다.” 시간을 견디는 음악이란 그런 음악일 것이다. <고독의 의미>에는 ‘20년이 지난 뒤’라는 곡이 있다. 지금까지 18년을 음악을 했고, 시간은 점점 더 빨리 갔다. 앞으로 20년 역시 더욱 빨리 가리라는 노래다. 이적의 음악은 앞으로의 20년도 견뎌낼 수 있을까. “나는 20세기 후반 21세기 초반의 우디 앨런 작품이 재미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다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거다. 추억팔이 하며 명성을 더럽히지 말라는 이야기를 얼마나 들었겠나. 그러다가 또 ‘살아있네’, 이렇게 되는 거지. 창작자란 그런 모멸감과 자괴감을 견디고 계속 해야 할 의무도 있다.” 음악이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는, 창작자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말처럼 들렸다.(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는 필자 사정으로 한 주 쉽니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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