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배우와 클래식 전문 연주자가 함께 꾸미는 명품 음악극이 새로운 공연 장르로 인기를 끌고 있다. 위쪽부터 <노베첸토>(2013년), <피아노포르테, 나의 삶>(2012년) 공연 장면. 사진 극단 산울림, 경계없는예술센터 제공
연극배우 연기 더한 ‘경계없는 예술’
‘노베첸토’ ‘피아노포르테’ 인기 끌어 연극이 클래식음악과 만나면? 특별한 ‘음악극’으로 거듭난다. 연극 무대에 클래식 연주자들이 올라 연주를 하고, 배우들은 음악에 따라 연기를 펼치는 이른바 ‘콘서트 연극’ 또는 ‘연극 콘서트’ 같은 공연이다. 12일 저녁 서울 신촌의 더 스테이지 소극장. 막이 오르면 여객선 3등 객실로 꾸민 무대에 배우가 등장한다. 무대 뒤에 설치된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거센 파도가 일렁인다. 그는 27년 동안 한 번도 대지에 발을 내디딘 적이 없었던 어느 피아니스트의 사연을 끄집어낸다. “노베첸토! 제가 그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는 폭탄 위에 앉아 있었어요.” 그가 무대 뒤쪽을 가리키자 푸르스름한 조명 아래 한 남자가 그랜드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쇼팽의 피아노 독주곡 <에튜드 4번>의 애잔한 선율이 무대와 객석을 가득 채운다. 요즘 공연중인 극단 거미의 음악극 <노베첸토>(알렉산드로 바리코 작·김제민 연출)는 1900년대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민자들을 실어나르는 정기선에 신생아로 버려진 뒤 평생을 배 위에서 연주하며 살다간 천재 피아니스트 ‘노베첸토’의 삶을 친구인 트럼펫 연주자 ‘맥스’가 회상하는 1인극이다. 영화 <피아노의 전설>(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원작인 이 작품은 연극과 클래식음악의 대등한 협업이리는 점에서 기존의 음악극과 뚜렷이 구별된다. 기존 음악극은 음악이 연극의 진행을 위한 소품에 그치는 것들이 많고, 음악 또한 녹음된 연주를 사용했다. 하지만 <노베첸토>는 정상급 클래식 피아니스트 박종화(40·서울대 음대 교수), 한국인 최초로 ‘블루 노트’ 아티스트로 선정된 재즈 피아니스트 곽윤찬(45·나사렛대 교수)씨가 중견 연극배우 조판수, 이건영씨와 나란히 무대에 서서 극을 펼쳐간다. 극을 보는 재미와 함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소나타 제2번> 1~2악장, 홍난파의 <고향의 봄> 변주곡, 슈베르트의 <마왕>, 라흐마니노프 <악흥의 순간 5번> 등 클래식 곡과 <유 아 마이 패밀리 인 헤븐>, <플라이 미 투 더 문> 등 재즈곡을 듣는 즐거움이 있다. 29일까지. (02)703-9690. 17일 서울 서교동 산울림극장 무대에 오르는 <산울림 편지콘서트-베토벤의 삶과 음악 이야기>(임수현 연출)과 20일 서울 당산동 영등포아트홀에서 특별공연하는 <피아노포르테, 나의 사랑>(윤기훈 작·연출)도 연극과 클래식음악의 흥미로운 협업이다. 극단 산울림의 <베토벤의 삶과 음악 이야기>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이 남긴 편지를 모은 책 <베토벤, 불멸의 편지>(예담 펴냄)에서 발췌한 글을 음악과 엮어서 악성의 인간적 고뇌와 음악에 대한 도전을 보여준다. 중견배우 박상종씨가 베토벤 역으로 출연하고 김지은 배우가 해설자와 베토벤의 연인들로 나와 연주 음악과 화답하며 극을 끌어간다. 피아니스트 히로타 슌지, 최원선씨와 함께 바이올린(문지경·이상효·최윤정), 비올라(김화림·이길래·이홍경·정혜정), 첼로(정혜민·탁윤지) 등 전문 연주자로 짜인 현악 4중주 팀이 편지의 모티브가 된 곡들을 연주한다. 베토벤이 연인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 “오늘도, 내일도, 그대, 그대, 그대를 향한 눈물겨운 동경, 내 생명, 내 모든 것이여, 안녕”, 마지막 유언인 “손뼉을 치게 친구들, 희극은 끝났네!” 등 그의 흥미로운 삶과 그의 <피아노 소나타 제8번 ‘비창’> 2악장, <피아노 소나타 제2번 ’월광‘> 1악장, <현악사중주 제14번> 1~2악장, <교향곡 제9번 ’합창‘> 4악장 등 7개 걸작이 어우러진다. 30일까지. (02)334-5915. 클래식 콘서트와 정통 모노드라마의 조화를 꾀한 <피아노포르테, 나의 사랑>는 인기 탤런트 길용우(58)씨의 연극무대 복귀로도 관심을 끈다. 경계없는 예술센터가 지난해 선보인 <피아노포르테, 나의 삶>의 후속편으로, 늙어 은퇴한 피아니스트가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와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를 담아낸다. 이태리 조반니 국제콩쿠르에서 1위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 김혜정씨, 프랑스 국제피아노콩쿠르 로랑 비베에 입상한 피아니스트 김용진씨가 피아소야(피아졸라)의 ‘오블리비언’, 차이코프스키의 ‘멜로디 3번’, ‘파가니니의 ‘칸타빌레’, ‘바흐의 ‘G 선상의 아리아’ 등을 들려준다. 또한 현대무용가 황지인씨의 탱고 독무도 감상할 수 있다. 내년 3월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애들레이드 축제, 5월 대학로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02)2629-2216~8.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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