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류 바람 10년’
2003년 ‘겨울연가’ 진출로 돌풍
2005년 동방신기 이은 장근석 인기
소녀시대·카라 여걸도 팬심 자극
10년 결산 팬 투표에서 ‘배용준 1위’
스타의식보다 가족같은 모습 감동
마니아 50만 추정 ‘하위문화’ 형성
‘제2한류 붐’ 위해선 더 배려해야
2003년 ‘겨울연가’ 진출로 돌풍
2005년 동방신기 이은 장근석 인기
소녀시대·카라 여걸도 팬심 자극
10년 결산 팬 투표에서 ‘배용준 1위’
스타의식보다 가족같은 모습 감동
마니아 50만 추정 ‘하위문화’ 형성
‘제2한류 붐’ 위해선 더 배려해야
록은 보통 남자들이 선호하는 음악이다. 하지만 18일 저녁 일본 오사카 오사카죠홀에선 특별한 광경이 펼쳐졌다. 록을 바탕으로 한 공연이 열렸는데도 99%가 여성 관객이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주인공이 남성 3인조 그룹 제이와이제이(JYJ)의 김재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록을 바탕으로 한 솔로 미니앨범과 정규 1집을 잇따라 내고 아시아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17~18일 오사카 공연은 하루 1만석씩 모두 2만석이 일찌감치 매진됐다. 표를 구하지 못한 팬들의 빗발치는 요구로 하루 1000석씩 입석표까지 추가로 마련됐다. 둘째 날 공연의 막이 올랐다. 강렬한 금속성의 일렉트릭 기타와 육중한 드럼 연주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객석을 가득 채운 1만1000명의 관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붉은 발광봉을 흔들었다. 그들은 공연이 이어진 3시간여 내내 김재중의 노래 한 소절, 몸짓과 표정 하나하나에 환호성을 지르며 울고 웃었다. 일본의 한류, 김재중의 여전한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 <겨울연가>에서 동방신기까지 일본에 한류 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 어느덧 10년이다. 드라마 <겨울연가>가 2003년 일본에 방송되면서부터 본격적인 한류가 생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잘생긴데다 자상하고 배려심 깊은 남자 주인공을 맡은 배용준은 일본 열도의 여심을 사로잡으며 ‘욘사마’로 등극했다. 드라마에서 시작한 한류는 점차 ‘케이팝’으로 대변되는 대중음악 분야로 번졌고, 최근에는 뮤지컬 분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정 나라에 대한 관심이 사회현상으로까지 번지며 10년이나 지속된 것은 일본에서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최근의 악화된 한·일관계가 한류 붐에 찬물을 끼얹은 것도 사실이다. 한국 드라마 매출은 몇년 새 꾸준히 감소하고 있고, 케이팝 바람도 절정을 지나 하락세로 접어든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9월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 멧세 국제전시장에서 ‘한류 10주년 대상’ 시상식이 열려 눈길을 끌었다. 일본에 한류를 소개하는 방송사, 배급사 등이 모여 ‘한류 10주년 실행위원회’를 만들고, 한류 10주년을 기념하며 ‘제2의 한류 부흥기’를 만들기 위해 시상식을 개최한 것이다.
팬 투표로 드라마와 케이팝 부문에서 지난 10년간 가장 인기 있었던 작품, 배우, 가수를 뽑았는데, 총 투표수가 42만표에 이르렀다. 최고의 드라마로는 역시 <겨울연가>가 선정됐다. 남자배우 1위는 배용준이었고, 박유천, 장근석, 김현중, 현빈 등이 뒤를 이었다. 여자배우 부문에선 윤은혜가 최지우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케이팝 부문에선 동방신기, 카라, 김현중, 아이유 등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 10년을 살펴보면, 드라마가 처음 불을 지핀 한류의 무게중심은 점차 케이팝으로 옮겨갔다. 그 선두에는 동방신기가 있다. 2005년 일본 데뷔를 한 동방신기는 한국에서는 이미 톱스타였음에도 그야말로 밑바닥부터 다져나갔다. 지금은 제이와이제이로 활동하고 있는 김준수는 “동방신기로 일본에 처음 진출했을 때는 신인의 모습으로 작은 계단에서 노래하고, 장판 깔고 유선 마이크 줄을 넘어가며 댄스곡도 하고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김재중은 “일본에선 스타로서 위엄을 내세우기보다는 가족 같은 분위기로 팬들을 대했다. 그렇게 하니 갈수록 팬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일본 스타들과는 또다른 친근하고 인간적인 모습에 일본 팬들은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한류 팬인 이사 다카고(35)는 “한국 연예인들은 자상하고 친절하고 멋져서 좋다. 드라마는 물론이고 실제로 팬미팅이나 공연장에서 봐도 그렇다. 일본 남자들에게선 받을 수 없는 사랑을 그들로부터 받는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김재중은 공연 중간중간에 관객들과 꽤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며 교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관객들은 그런 모습에서 더 큰 감동을 받는 듯했다.
이같은 노력의 결실로 동방신기가 대대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다른 케이팝 가수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소녀시대, 카라 등도 큰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케이팝이 인기를 얻는다 싶으니 너도 나도 일본 진출을 시도한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웃은 건 아니었다. 티아라, 레인보우, 나인뮤지스 등 상당수가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흐지부지됐다.
■ 마니아층 50만명, 한·일 냉기류를 넘어 지금의 흐름은 한류가 다소 침체된 분위기를 보이는 가운데서도 동방신기, 제이와이제이, 장근석, 김현중 등 몇몇 한류스타들이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에는 빅뱅의 기세가 특히 무섭다. 빅뱅은 지난달부터 외국 가수 최초로 일본 6대 돔 투어를 돌고 있다.
6개 도시 16회 공연에 모두 77만1000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이번 투어는 웬만한 인기로는 꿈도 꾸기 어려운 경지다. 이제는 한류라는 커다란 묶음보다는 몇몇 굵직한 스타들의 각개약진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방탄소년단 등 일본에서 새롭게 인기를 얻기 시작한 케이팝 신인들도 계속 나오고 있다.
앞으로 한류는 어떻게 전개될까? 강명석 <매거진아이즈> 편집장은 “일본에서 유행이 한번 크게 일고 나면, 그 유행이 사그라들더라도 누군가는 꾸준히 소비하는 시장이 형성된다. 이제 ‘욘사마’처럼 일본에서 전국적인 바람을 일으키는 사례는 쉽지 않겠지만, 한류를 꾸준히 선호하는 팬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는 스타들은 계속 나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본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류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마니아층은 50만명 정도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시장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지속될 거라는 얘기다. 한류가 일본의 확고한 주류문화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하나의 하위문화로는 확실한 지분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이날 김재중 공연장을 찾은 시오자키(38)는 “일본에서 한류에 대해 경계하는 분위기가 지속되다 보니 아무래도 한류 팬들 사이에서도 침체기가 느껴지지만, 한번 한류를 좋아하는 팬들은 꾸준히 좋아하는 것 같다. 나도 한국 드라마와 내가 좋아하는 스타를 계속 응원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류를 정치적 문제로 보지 말고 하나의 문화로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한국 연예기획사들도 충성도 높은 일본 팬들을 좀더 배려하는 이벤트를 많이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오사카/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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