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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80년대 분위기 살려냅니다 “인간적이잖아요”

등록 2013-12-26 20:12수정 2013-12-26 21:24

평일엔 요리사, 주말엔 디제이. 그리고 춤꾼 활동에 광고 모델까지 하는 이기범씨는 ‘80년대’를 재현하는 이색 문화인이다. 디제이 ‘타이거 디스코’란 예명으로 클럽을 누비는 그는 미술 작가(아래 작품 사진)로도 데뷔해 전시회까지 열었다. 이기범씨 제공
평일엔 요리사, 주말엔 디제이. 그리고 춤꾼 활동에 광고 모델까지 하는 이기범씨는 ‘80년대’를 재현하는 이색 문화인이다. 디제이 ‘타이거 디스코’란 예명으로 클럽을 누비는 그는 미술 작가(아래 작품 사진)로도 데뷔해 전시회까지 열었다. 이기범씨 제공
[문화'랑'] 나도 문화인
(30) ‘디스코 디제이’ 이기범씨
이기범(27)씨의 직업은 요리사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특급 호텔 ‘콘래드 서울’의 뷔페 식당 한식 파트에서 근무한다. 요리사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그는 한국조리과학고와 대학 외식조리학과에서 공부하고 4년째 호텔 요리사로 일하고 있다.

신문 기자 클라크가 ‘슈퍼맨’으로 변신하듯, 이씨는 종종 ‘타이거 디스코’로 변신한다. 1980년대 디스코 음악을 전문으로 트는 디제이로 활약할 때의 이름이다. 그러고 보면, 이씨의 옷차림부터 예사롭지 않다. 단정하게 빗어넘긴 2대8 가르마, 커다란 금테 잠자리 안경, 30년은 됐음직한 넥타이와 셔츠, 전당포에서나 볼 법한 구형 금딱지 시계…. 그야말로 80년대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넘어온 듯한 분위기다.

그가 이런 차림새를 고수하기 시작한 건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제가 노안이라 그런지 최신유행 스타일이 안 어울리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복고풍으로 입기 시작했죠.” 덕분에 ‘조영남’이라는 별명도 얻었지만, 다른 누구와도 차별화되는 확고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게 됐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하던 그는 2008년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갔다가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친해졌다. 알고 보니 디제이, 브이제이 등으로 활동하는 이들이었다. 2011년 그들과 어울려 서울 홍대앞 어느 클럽에서 열린 파티에 갔다. 와이엠이에이(YMEA·Young Men’s Electronics Association)라는 아티스트 집단이 주최한 파티였는데, 80년대 디스코·펑키·아르앤비·솔·뉴잭스윙 등을 틀고 당시 문화를 향유하는 자리였다.

대번에 반해버린 이씨는 와이엠이에이의 열렬한 팬이 됐다. 틈만 나면 그들을 따라다녔다. 와이엠이에이 멤버들도 80년대 차림새를 하고 다니는 이씨를 눈여겨 봤다. 2012년 초 어느날 그들이 이씨에게 제안했다. “네 옷차림이 마음에 들어. 우리와 함께할래?” 신이 난 이씨는 독학으로 80년대 디스코 음악과 디제이 하는 법을 파고 들었다.

“80년대 디스코는 요즘처럼 기계음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실제 밴드가 직접 연주한 음악이에요. 가족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죠. 리듬을 강조하는 요새 전자음악보다 멜로디도 훨씬 더 좋아요. 무엇보다도 인간적이잖아요. 제가 80년대 디스코를 사랑하는 이유죠.”

평일엔 요리사, 주말엔 디제이로
복고풍 즐기다 디스코음악 심취
“가족처럼 편안하고 따뜻해 좋아”
미술전시회에 댄서까지 ‘팔방미인’

그는 요즘 한달에 한번꼴로 파티에 나가 ‘타이거 디스코’ 이름으로 디제잉을 한다. 바나나라마의 ‘비너스’, 발티모라의 ‘타잔보이’ 같은 유로비트 댄스음악의 시초인 ‘이탈로 디스코’(80년대에 이탈리아, 러시아, 캐나다 등에서 유행한 디스코의 한 갈래)를 주로 틀고, 장덕·심수봉·이무송·양수경 등 추억의 가요도 튼다.

디제이만이 아니다. 가끔 무대에서 댄서로도 활약한다. 남성 듀오 글렌체크의 요청으로 지난해 그들의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던 게 반응이 좋아 이후 공연 때마다 부름을 받는다. 글렌체크의 대표곡 ‘식스티스 가르뎅’이 나올 때면 검은색 삼선 트레이닝복을 위아래로 입고 코믹한 춤을 추는 게 그의 몫이다. 오는 31일 밤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리는 글렌체크 연말공연 무대에도 어김없이 오른다.

평일엔 요리사, 주말엔 디제이. 그리고 춤꾼 활동에 광고 모델까지 하는 이기범씨는 ‘80년대’를 재현하는 이색 문화인이다. 디제이 ‘타이거 디스코’란 예명으로 클럽을 누비는 그는 미술 작가(아래 작품 사진)로도 데뷔해 전시회까지 열었다. 이기범씨 제공
평일엔 요리사, 주말엔 디제이. 그리고 춤꾼 활동에 광고 모델까지 하는 이기범씨는 ‘80년대’를 재현하는 이색 문화인이다. 디제이 ‘타이거 디스코’란 예명으로 클럽을 누비는 그는 미술 작가(아래 작품 사진)로도 데뷔해 전시회까지 열었다. 이기범씨 제공

그의 이런 모습이 눈에 띄어 텔레비전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승기·이서진이 나오는 복고풍 누아르 분위기의 소셜커머스 업체 광고에서 그는 보스의 ‘오른팔’의 ‘오른팔’로 나온다. 대사 한마디 없이 커다란 금테 안경을 쓰고 엉거주춤 서있는 모습만으로도 웃음을 자아낸다. 그가 근무하는 호텔의 독일인 총지배인과 동료 요리사들이 그 광고를 보고는 “우리가 광고 모델과 함께 일하는구나” 하며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미술작가이기도 하다. 색종이를 오려 붙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의 팝아트 작품을 주로 만든다. 정식으로 미술을 배우지 않고 혼자 익혔다.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을 좋아해 그의 ‘캠벨 스프’ 통조림 작품을 오마주한 ‘식당용 케찹’ 통조림 작품도 만들었다. 단체전시회에 두차례 참여했고, 지난 4월 첫 개인전을 열었다.

‘토요일 밤에는 싸울 권리가 있다’라는 제목으로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의 한 복합문화공간에서 연 개인전은 보통 전시회와 달랐다. 자신의 작품을 전시했을 뿐 아니라 디제이 장비를 가져가 80년대 디스코 음악을 틀고, 자신이 직접 만든 음식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그가 발을 걸치고 있는 미술·음악·요리가 한데 어우러진 복합문화행사가 된 것이다.

“요리에서 맛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적 감각도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미술을 하며 익힌 색감, 음악에서 받는 느낌 같은 게 요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만약 음악과 미술을 하지 않고 요리만 했다면 따분하고 힘들었을 거예요. 디제이를 하고 미술 작품을 만들면서 에너지와 활력을 얻거든요.”

그는 앤디 워홀의 ‘팩토리’ 같은 공간을 꿈꾼다고 했다. 앤디 워홀이 작업실이자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안식처로 활용한 팩토리처럼 자신만의 공간을 꾸며놓고 음식, 음악, 미술, 전시, 공연 등이 어우러지는 복합문화 난장을 펼치고 싶다고 했다. 대학원에서 공부를 좀더 하고 한식을 세계에 제대로 알리고 싶은 꿈도 있단다. 호랑이보다 더 기세등등한 열정이다. <끝>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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