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권이 삼우제 때 계획 말하다
서로 뜻이 다르다는 것 확인
그 뒤로 성원이와 이야기 못해
둘 다 절실하면 다시 만날 것
당분간 ‘전인권 밴드’로 활동
서로 뜻이 다르다는 것 확인
그 뒤로 성원이와 이야기 못해
둘 다 절실하면 다시 만날 것
당분간 ‘전인권 밴드’로 활동
한국 록의 전설적인 밴드 들국화가 지난달 발표한 사반세기 만의 신작 <들국화>는 기쁨이자 슬픔이었다. 거장의 복귀작은 주찬권(드럼)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지난해 10월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이의 빈자리는 컸다. 들국화는 앨범만 내놓고 공식적인 활동을 일절 하지 않고 있다. 최성원(보컬·베이스)은 제주도 집에서 칩거중이다. 이런 가운데 전인권(보컬)을 지난 7일 그의 집이 있는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살이 좀 빠진 것 같다.
“자꾸 살찌는 것 같아서 요즘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얼마 전 들국화 해체설도 나왔다.
“해체에 대해 우리가 한번도 얘기해본 적 없다. 찬권이가 그렇게 된 날 성원이와 만나 서로 좋은 얘기를 했다. 그런데 다음날 찬권이가 없다는 걸 절감하면서 둘 사이가 갑자기 어색해졌다. 찬권이 삼우제 때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하다가 서로 뜻이 다름을 확인했다. 그 뒤로 성원이와 얘기를 못하고 있다.”
-원래 사이가 어색한 편이었나?
“밴드를 하다 보면 사소한 것부터 음악적 견해까지 안 다툴 수가 없다. 들국화 결성 때부터 성원이와 철썩 붙어다니면서도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당시 (허)성욱이가 중간에서 우리 둘을 묶는 구실을 했는데, 재결성 때는 찬권이가 그 자리를 담당했다. 그런데 그 친구도 그렇게 됐으니….”(들국화 원년 멤버 허성욱은 1997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졌다.)
-들국화는 이제 어찌 되나?
“우리 둘 다 절실하면 빛날 정도로 잘 어울린다. 그런데 당장은 그렇게 절실하지 않은 것 같다. 찬권이의 빈자리가 크다. 그래도 언젠가는 성원이와 다시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올 10월이면 찬권이 1주기다. 그전에 8~9월께 성원이와 만나 추모공연에 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들국화 얘기도 하고. 들국화를 기다리는 분들께 제대로 보여드리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면 당분간 음악 활동을 안 하는 건가?
“(서울 대학로의 재즈 클럽) ‘천년동안도’에 개인적으로 신세진 게 있어서 지난해 거기서 몇 차례 공연을 했다. 그때 함께 연주했던 젊은 친구들과 올 초 ‘전인권 밴드’를 꾸렸다. 그들과 작은 공연장에서 조금씩 신보 활동을 하려 한다.”
-전인권 밴드로 활동을 한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이르면 3~4월에 공연을 시작하려 한다.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니 힘이 솟는다. 앨범 작업을 도와준 정원영, 함춘호 등과 협연을 할 수도 있다. 록 밴드 게이트 플라워즈의 기타리스트 염승식과도 교류가 깊은데, 그 친구도 무대에 종종 나타날 거다.”
-신곡도 발표할 건가?
“혼자 작업한 것 중 정리된 게 8곡 정도 된다. 그중 하나를 올해 들국화로든 전인권 밴드로든 디지털 싱글로 내려고 한다. ‘사람답게’라는 곡인데, 라틴 록 스타일이다.”
-요즘은 뭘 하며 지내나?
“내가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술도 안 먹는다. 술 먹으면 또 ‘저쪽’으로 갈까봐(웃음). 나 자신에게 엄격해졌다. 매일 저녁 8시에 잠자리에 들고 새벽 1~2시에 일어나서 연습한다. 노래도 부르고, 새로운 비트를 들으며 음악에 대한 감을 익힌다.”
-주찬권씨 생각도 많이 나나?
“사람은 떠나도 영혼은 남아 있다는 말이 있는데, 그게 절실하게 느껴지더라. 언젠가 탑골공원 근처에서 설렁탕을 먹고 있는데, 내가 찬권이 목소리를 똑같이 흉내내고 있더라. 찬권이 영혼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요즘은 성욱이 생각도 많이 난다.”
-얼마 전 할아버지가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난해 딸아이가 딸을 낳았다. 다음달이면 손녀가 첫돌을 맞는다. 손녀를 보고 있으면 진짜 예쁘다. 소설가 박민규가 손녀랑 나랑 같이 있으면 진짜 잘 어울린다고 하더라. 내가 하도 손녀를 보고 싶어하니 딸이 일주일에 두번은 애를 데리고 우리집에 온다. 떨어져 있을 때는 내가 맨날 손녀 동영상을 보내달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됐는데도 여전히 젊게 사는 것 같다.
“재작년과 작년 여름 록 페스티벌에 나가 노래할 때가 생각난다. 무엇보다도 젊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앞으로도 무대에서 젊은 팬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들국화를 추억하는 세대에게는 젊은 기운을 선사하고 싶다.”
-어서 다시 노래하고 싶나?
“내 음악인생 40년이 슬럼프였다가 이제 벗어난 것 같다. 예전에는 공연할 때 기쁘거나 좋거나 그런 걸 몰랐다. 그저 해야 할 일로 여겼을 뿐이다. 그런데 요즘은 노래하면서 희열을 느낀다. 록 페스티벌 때도 그랬고, 집에서 연습할 때도 그렇다. 어려운 비트를 찾아내고 거기에 맞춰 내가 부르는 노래가 잘 어울릴 때는 기분이 정말 끝내준다.”
-앞으로 남은 꿈이 있다면?
“들국화를 계속 하든 안 하든 음악을 죽을 때까지 진짜 멋있게 하고 싶다. 유튜브를 통해 세계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음악을 하는 게 꿈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들국화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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