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왕실의 보물: 합스부르크 왕가와 헝가리 귀족 사회’ 전시회에 출품된 엘리자베트 왕비의 사후(死後) 초상화.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리뷰 l ‘헝가리 왕실의 보물’ 전시회
우수에 찬 깊고 그윽한 눈매, 입가에 머금은 옅은 미소, 섬섬옥수 새하얀 손에 살포시 쥔 진홍색 부채, 그리고 검은 상복.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헝가리 왕실의 보물: 합스부르크 왕가와 헝가리 귀족 사회’(3월9일까지) 전시회에 출품된 엘리자베트 왕비의 사후(死後) 초상화(사진)는 이렇게 나를 사로잡았다. 그는 독일 바이에른 공국의 공주로 태어나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프란츠 요제프 1세와 결혼한 행운의 여인이었으나, 외아들이었던 루돌프 황태자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그 자신도 1898년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된 비운의 여인이기도 하다. 엘리자베트 왕비의 생애는 겉보기에는 화려하지만 기실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로 얽힌 근세 유럽 상류사회의 서글픈 단면과 그 속에서 살다간 한 여인의 영욕을 잘 보여주는 안타까운 예이기도 하다.
유럽의 상류사회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왕실과 귀족제도가 현존하는 영국을 떠올리지만, 사실 20세기 이전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소수의 유력가문이 지배하는 왕정이나 귀족정의 체제를 지니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합스부르크 가문은 중세 이후 대대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배출하며 중부 유럽의 패권을 장악했던 대표적인 세력이다. 헝가리도 17세기 이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고, 20세기 들어 독립을 쟁취하기까지 합스부르크 왕가와 끊임없이 협력과 갈등을 반복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헝가리 사회의 지배층을 형성하던 귀족들도 점차 합스부르크 왕가의 문화를 수용하여 서유럽의 명문 귀족들과 당당히 어깨를 견주게 된다. 이번 전시회에도 등장하는 에스테르하지 백작 가문이 대표적이다.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칭송받는 하이든이 30년 가까이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궁정악장으로 봉직하면서 서양음악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 명곡을 작곡했다는 사실은 헝가리 귀족이 유럽 문화 발전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구나 시각문화적 관점에서 보면 근세 헝가리 귀족사회는 나름의 문화적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유럽 상류사회 문화를 선도했던 프랑스나 영국에 결코 뒤지지 않는 정교하고 세련된 우아함을 창조하고 간직하였다. 헝가리 국립박물관 소장품 중 엄선되어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유물들은 그 다양성과 질적인 측면에서 헝가리 귀족의 생활상을 차분히 이해하고 감상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당대 사회상을 잘 드러내는 회화나 판화 작품뿐만 아니라 화려한 연회복이나 남성 정장 등의 의류, 값비싼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진 각종 식기류, 희귀한 보석으로 치장된 무기류, 신실한 종교 생활을 보여주는 묵주나 성골함 등은 근세 헝가리 귀족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며 우리를 유혹한다.
근래 우리나라는 유럽의 ‘명품’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명품에 대한 우리 한국인들의 유별난 관심과 과시욕 때문에 유럽의 명품 제조사들은 한국에서만 더 높은 가격을 유지하는 배짱영업을 하지만 여전히 장사는 잘 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유럽의 왕실과 귀족들이 사용했던 진정한 명품은 백화점이나 아울렛에 있지 않다. 그들은 올 겨울 내내 서울시내 한 복판에서 조용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도 공짜로!
전동호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전동호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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