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골목길의 사제 연출가 박근형(왼쪽), 이은준씨가 연극 <동백아저씨>와 <소설처럼>을 한 무대에 올린다. 두 사람이 24일 서울 혜화동 극단 연습실에서 ‘사제동행’의 취지를 설명하면서 활짝 웃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중진 연출가 박근형과 제자 이은준
한 무대 색깔 다른 공연 차례로
한 무대 색깔 다른 공연 차례로
연극계의 중진 연출가 박근형(51) 극단 골목길 대표와 그의 제자 이은준(35) 연출가가 한날 한 무대에서 나란히 연극을 올린다.
두 사람은 2월1~23일 서울 혜화동 선돌극장에서 날마다 연극 <동백아저씨>와 <소설처럼>(아래 사진)을 차례로 공연한다. 이은준 연출가는 박 연출가가 자신의 뒤를 이을 극단의 간판 연출가로 조련시키고 있는 애제자. 언뜻 보기에는 흐뭇한 사제동행으로 보이지만 부담도 만만치 않다. 두 사람을 지난 주말 성균관대 부근 극단 연습실에서 만났다.
“은준이 공연에 제가 묻어가는 것이죠. 은준이가 <소설처럼>을 올리는데 공연 시간이 60분 밖에 안돼 ‘나도 하나 얹혀서 같이 하자’고 제의했습니다. 은준이는 번안극이고 저는 창작 신작이어서 같은 무대에서 색깔이 다른 두 작품을 올리면 관객들에게 재미있는 체험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박근형 선생님께서 ‘니가 먼저 할래? 뒤에 할래?’라고 물으셔서 ‘제가 먼저 하겠다’고 고집했어요. 관객들이 선생님 것만 보고 나갈 것 아녀요(웃음). 선생님 작품보다 형편없이 떨어져서는 안 되겠죠.”
스승은 창작극 ‘동백아저씨’
희망도 꿈도 없는 삼류인생 이야기
“은준이 무대에 숟가락 올렸어요”
제자는 번안극 ‘소설처럼’
삼각관계 통해 부조리한 삶 보여줘
“선생님보다 형편없음 안 되겠죠”
박근형씨가 대본을 쓰고 연출하는 신작 <동백아저씨>는 소외된 밑바닥 인생들의 남루한 삶을 생생하게 그려온 그의 작품세계를 잘 보여주는 연극이다. 서울 변두리 시장통에서 도장 파는 일로 살아가는 40대 독신남 ‘이동백’과 그가 월세 사는 싸구려 여관의 주인 과부와 덜 떨어진 20대 아들의 구질구질한 사연을 담았다. 주인공 이동백은 어린 시절 보육원에 버려졌다. 그의 이름은 이씨 성을 가진 보육원 원장이 가요무대에서 이미자의 노래 ‘동백아가씨’를 듣다가 즉흥적으로 지었다. 마흔 살이 넘도록 연애 한번 못해본 이동백은 어느 날 매주 거금 10만원을 들여 여자를 사기 시작한다. “어제도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고 결코 변하지 않는 세상과 거기에 기대보려고 하지만 결국 좌절하고 희망도 꿈도 없는 삼류인생의 이야기”라고 박씨는 설명했다.
이은준씨의 <소설처럼>은 200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영국 극작가 해럴드 핀터(1930~2008)의 대표작 <배신>을 개작했다. ‘대일’과 아내 ‘정윤’, ‘대일’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정윤’의 정부인 ‘성훈’의 삼각관계를 세련되게 그렸다. 이 연출가는 “가장 친한 사람들이 서로 속이고 위선을 떠는 모습을 통해 저도 모르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사는 현대인의 부조리한 삶과 가식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은준씨는 2002년 박근형씨의 <대대손손>, <삽 아니면 도끼> 등에 조연출로 인연을 맺은 뒤 이듬해 극단 골목길의 창단 작업을 함께하면서 연출부에서 12년째 활동하고 있다. <페드라의 사랑>(2007), <레지스탕스>(2009), <프랑스 정원>(2010) 등을 연출했고, 2011년에는 <속살>을 처음으로 쓰고 연출했다. 박 연출가는 “은준이는 겉은 요즘 젊은 세대인데도 의외로 ‘야전성’이 있다. 약간 삐딱하고 세련된 것보다 거칠지만 투박한 것이 갖고 있는 맛에 대해서 이해하려는 태도가 보기 좋다”고 칭찬했다.
박근형씨는 지난해 9월 고대 그리스의 시인이자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BC 445~BC 385)의 원작을 각색해 국립극단에 올린 연극 <개구리>로 곤욕을 치렀다. 일부 언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미화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깎아내렸다”고 정치적 편향성을 지적했고, 이 때문에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연임되지 못했다는 말이 나왔다.
“연극은 세상을 거울에 비추는 것이기 때문에 말을 해야죠. 비록 그 말이 틀릴지언정 질문은 던져야 합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했다고 그 말의 핵심을 떠나서 쓸데없는 구실로 막아버린다면 어떻게 예술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신에게도 손가락질을 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인데….” 그는 “요즘 세상이 점점 너무 퇴보하니까 오히려 쓸 거리가 많아져서 재미있다”고 웃었다.
연극 <동백아저씨>에는 정은경 심성효 김동원 조지승, <소설처럼>에는 권혁 박윤정 김주헌 이경호 등이 출연한다. (02)6012-2845.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희망도 꿈도 없는 삼류인생 이야기
“은준이 무대에 숟가락 올렸어요”
제자는 번안극 ‘소설처럼’
삼각관계 통해 부조리한 삶 보여줘
“선생님보다 형편없음 안 되겠죠”
박근형씨가 대본을 쓰고 연출하는 신작 <동백아저씨>는 소외된 밑바닥 인생들의 남루한 삶을 생생하게 그려온 그의 작품세계를 잘 보여주는 연극이다. 서울 변두리 시장통에서 도장 파는 일로 살아가는 40대 독신남 ‘이동백’과 그가 월세 사는 싸구려 여관의 주인 과부와 덜 떨어진 20대 아들의 구질구질한 사연을 담았다. 주인공 이동백은 어린 시절 보육원에 버려졌다. 그의 이름은 이씨 성을 가진 보육원 원장이 가요무대에서 이미자의 노래 ‘동백아가씨’를 듣다가 즉흥적으로 지었다. 마흔 살이 넘도록 연애 한번 못해본 이동백은 어느 날 매주 거금 10만원을 들여 여자를 사기 시작한다. “어제도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고 결코 변하지 않는 세상과 거기에 기대보려고 하지만 결국 좌절하고 희망도 꿈도 없는 삼류인생의 이야기”라고 박씨는 설명했다.
연극<동백아저씨>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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