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을 도정하던 옛 방앗간을 개조해 원두커피를 매개로 한 문화 사랑방으로 꾸민 봉봉방앗간 1층 카페의 풍경. 강릉/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문화‘랑’] 문화공간, 그곳
① 강릉 봉봉방앗간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문화는 씨앗처럼 퍼져나가며 곳곳에서 싹을 틔운다. 오랜 세월 문화로 추억을 만들어 온 터줏대감부터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고 있는 새내기까지 문화의 힘으로 사람을 불러 모으는 다양한 공간들을 탐구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① 강릉 봉봉방앗간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문화는 씨앗처럼 퍼져나가며 곳곳에서 싹을 틔운다. 오랜 세월 문화로 추억을 만들어 온 터줏대감부터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고 있는 새내기까지 문화의 힘으로 사람을 불러 모으는 다양한 공간들을 탐구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강원도 강릉시, 조선시대 관청인 칠사당(七事堂) 맞은편 명주동 골목길에 재미있는 방앗간이 숨어 있다. 기계 소리 대신 구수한 커피향과 웃음소리가 가득한 방앗간이다. 곡식을 빻는 대신 문화와 예술, 소통을 빚어내는 강릉의 독특한 문화공간 ‘봉봉방앗간’이다.
봉봉방앗간은 영화제작자 김남기(44)씨와 미디어교육 전문가 류미선(34)씨, 독립다큐멘터리 감독 이마리오(42)씨, 극영화 감독인 최승철(34)씨 4명이 폐업한 ‘문화방앗간’을 인수해 2011년 12월12일 문을 열었다. 당시 강릉시 영상미디어센터에서 활동하던 이들은 주위 사람들과 생각과 작업을 나눌 공간이 절실해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문을 연 지 불과 2년여에 불과하지만 작고 아기자기한 전시와 알찬 모임으로 강릉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근대건축물 ‘문화방앗간’ 개조
카페와 전시 공간으로 꾸며
초등생부터 노인까지 작가로
명물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아
인근 공연장·사랑채 들어서며
강릉의 ‘문화 아지트’로 발전
지난달 28일 ‘봉봉방앗간’을 찾아갔다. 낡은 미닫이문을 밀고 들어서자 ‘봉마담’ 류미선씨와 남편인 김남기씨가 반긴다. 건물 내부는 방앗간 시절의 흔적이 세월을 담은 채 남아 있다. 손때 묻고 뒤틀린 나무기둥들이 건물에 담긴 기억의 두께를 보여주고, 벽의 얼룩 자국은 추상 수묵화처럼 근사하다. 김남기씨는 “근대건물은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과 이웃들의 기억과 과거를 간직한 귀중한 문화자산이기 때문에 그대로 보존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방앗간을 만든 네 사람은 강릉시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시민들과 학생들에게 사진과 영상디자인, 다큐멘터리 작업을 가르치고 있었다 한다. 그런데 엠비 정부가 들어서면서 근무 조건이 갈수록 열악해졌고, “우리 스스로 삶을 챙길 자구책이 필요해”졌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히 명주동에서 버려진 근대 건축물인 ‘문화방앗간’을 발견한 거죠. 마침 네 사람 모두 바리스타 일을 배운 터라 커피를 매개로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사람들이 부담없이 와서 따듯함을 느끼는 공간’으로 뜻이 모아졌다. 이날 주방 당번인 이마리오씨는 “사람들이 편하게 만나면서 조금씩 자극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 시작했다고 부연 설명을 했다. 그리고 이제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만들어나가는 공간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고 평했다.
‘문화방앗간’은 1940년대부터 옛 강릉 시청이 있었던 구도심지인 명주동 일대의 명물이었다. 한창때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떡을 해 갈 정도로 성황을 누렸지만 차츰 사양길로 접어들어 10여년 전 문을 닫았다. 네 사람은 2010년 12월에 1층 29평, 2층 27평 규모 2층짜리 낡은 건물을 구입한 뒤 건물 외관과 기본 골조는 그대로 두고 내부를 1층은 커피와 유기농 허브차 등을 파는 카페로, 2층은 전시공간인 ‘갤러리 호호’로 꾸몄다.
공간 이름은 프랑스어로 ‘좋아 좋아’란 뜻의 ‘봉봉’과 예전에 있었던 ‘문화방앗간’에서 따왔다. 2층 갤러리는 ‘봉봉’의 한자어인 ‘좋을 호(好)’자를 겹쳐서 이름짓고 첫 전시 테이프를 수능시험을 막 마친 고3 학생들에게 맡겼다. 2010년부터 영상미디어센터에서 김남기씨와 류미선씨 등으로부터 사진 수업을 받았던 강릉의 고교 3학년 제자 4명이 졸업전시회 ‘뻔하지 않은 사진전’을 꾸몄다. 그 뒤 ‘무명 소졸 사진전’, ‘고양이多 일러스트 엽서전’, ‘눈은 반짝, 렌즈는 활짝포남초등학교 사진수업전’ 등이 이어졌다. 초등학생부터 60살 노인까지 누구나 작가로 참여하면서 ‘봉봉방앗간’은 강릉 지역의 명물 문화공간으로 자리를 잡아나갔다. 류미선씨는 “문화는 누구나 만들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마리오씨도 “2층 갤러리 공간이 모든 이들에게 개방된 만큼 더 많은 사람에 의해 좀더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처음에 버려진 방앗간을 개조해서 카페를 만든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걱정해주었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동네 주민들이었다. “주변 어르신들이 한적한 동네에 낡고 허름한 카페를 차리자 망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처음에 카페에 놀러 오셔서 ‘건물을 예쁘게 꾸미지도 않고 문을 열었느냐’고 걱정하시고, ‘이래서 사람들이 오겠느냐’고 야단도 치셨어요. 그리고 문을 열고 얼마 안 돼서 할머니들께서 오셔서 차도 팔아주셨고요. 저희가 찻값을 안 받으려고 하니까 반값만 내고 가셨어요. 지금도 가끔 찾아오셔서 ‘아직도 안 망했느냐’고 물으세요.(웃음)”
봉마담 류미선씨는 “가끔 다른 동네에 사시는 할머니들이 방앗간이 다시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쌀자루나 깨를 들고 볶으러 오시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좁은 나무계단으로 2층 ‘갤러리 호호’에 오르자 서울에서 활동하는 영상미디어 작가 류윤희(39), 서양화가 반경란(39)씨, 설치미술작가 운우(35)씨의 3인전인 ‘스미고 스며서, 화이트 테일(하얀 이야기)’이 열리고 있다. 앞서 전시회를 열었던 최제헌(37) 작가가 1층 카페에 비해 소통이 뜸한 2층을 수다 공간으로 꾸미기 위해 기획한 ‘방앗간수다’ 시리즈’ 첫 전시회이다. 최제헌씨는 “봉봉방앗간이 우리의 무뎌진 감각을 일깨울 수 있는 작업이 벌어지는 공간, 적극적으로 수다가 만들어지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2년간 봉봉방앗간은 명주동에 의미있는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강릉시는 2011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단오문화 창조도시’ 사업의 하나로, 2012년 9월에 봉봉방앗간 근처에 1950년대에 세워진 작은 교회를 리모델링해서 ‘작은 공연장 단(端)’을 열며 힘을 보탰다. 또 10월에는 커피체험과 북카페 기능을 겸한 작은 문화공간 명주사랑채가 들어섰다. 지난 12월에는 명주동 골목길에서 전시, 음악, 무용 등 복합예술이 공존하는 크리스마스 페스티벌 ‘명주동애(愛) 아트&콘서트’가 열리기도 했다. 강릉시청의 이전으로 활력을 잃어가던 구도심 명주동이 새로운 문화중심지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안정철(43) 강릉시 문화예술과 창조도시 담당자는 “지난 2~3년 사이에 구도심지인 명주동에 기분 좋은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문화 에너지가 뭉쳐지는 분위기이다. 명주동이 좋은 의미로서 ‘강릉의 문화아지트’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릉/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근대건축물 ‘문화방앗간’ 개조
카페와 전시 공간으로 꾸며
초등생부터 노인까지 작가로
명물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아
인근 공연장·사랑채 들어서며
강릉의 ‘문화 아지트’로 발전
지난달 28일 ‘봉봉방앗간’을 찾아갔다. 낡은 미닫이문을 밀고 들어서자 ‘봉마담’ 류미선씨와 남편인 김남기씨가 반긴다. 건물 내부는 방앗간 시절의 흔적이 세월을 담은 채 남아 있다. 손때 묻고 뒤틀린 나무기둥들이 건물에 담긴 기억의 두께를 보여주고, 벽의 얼룩 자국은 추상 수묵화처럼 근사하다. 김남기씨는 “근대건물은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과 이웃들의 기억과 과거를 간직한 귀중한 문화자산이기 때문에 그대로 보존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방앗간을 만든 네 사람은 강릉시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시민들과 학생들에게 사진과 영상디자인, 다큐멘터리 작업을 가르치고 있었다 한다. 그런데 엠비 정부가 들어서면서 근무 조건이 갈수록 열악해졌고, “우리 스스로 삶을 챙길 자구책이 필요해”졌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히 명주동에서 버려진 근대 건축물인 ‘문화방앗간’을 발견한 거죠. 마침 네 사람 모두 바리스타 일을 배운 터라 커피를 매개로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다락방을 아담한 전시공간으로 꾸며놓은 ‘갤러리 호호’의 모습. 강릉/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봉봉방앗간 건물 앞에 선 ‘봉봉 4인방’ 이마리오(왼쪽부터), 류미선, 김남기씨. 최승철씨는 서울 나들이로 함께하지 못했다. 강릉/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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