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은하수를 아시나요’에서 1인 다역 연기력을 선보이는 두 배우 명계남씨와 박윤희씨. 두 사람은 “우리 사회의 억압되고 왜곡된 구조에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비희극으로 풀어내겠다”고 말했다. 극단 완자무늬 제공
전사 처리된 병사의 혼란
‘은하수를…’ 후배와 2인극
‘은하수를…’ 후배와 2인극
“늘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작품입니다. 1973년 연극 <동물원 이야기>로 데뷔하고 난 뒤 바로 하고 싶었는데 기회를 놓쳤어요. 연극을 가르쳐 주신 장제훈 선배와 공연을 준비하다가 중단되어 늘 안타까웠는데 드디어 40년의 한을 풀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연극 데뷔 40년을 맞아 앞으로 연극에만 전념하겠다고 선언한 배우 명계남(62)씨가 40년을 기다렸던 무대에 선다. 14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 무대에 올리는 연극 <은하수를 아시나요>는 그와 후배 배우 박윤희(47)씨 단 두 명만 등장해 11명의 배역을 바꿔가며 연기한다. 독일의 극작가이자 배우, 연출가였던 카를 비트링거(1922~1994)가 1955년 발표한 문제작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실종됐던 독일 병사 ‘샘’이 전쟁이 끝난 뒤 고향에 돌아오지만 전사자로 처리되어 다른 이의 삶을 살면서 혼란을 겪는 과정을 그린 연극이다.
극단 완자무늬가 창단 30주년을 맞아 올리는 기념공연이자, 1970년대 잠시 활동하다 연극계를 떠났던 ‘명계남의 멘토’ 장제훈(66) 연출가가 모처럼 돌아와 연출을 맡았다. 중견 여성 연출가 한태숙(64)씨의 남편이기도 한 장씨는 “오랜만에 연극동네에 돌아오니까 역시 연극이란 씨앗을 잘 골라 척박하지 않은 땅을 택해 정성껏 심고 하늘의 도움까지 필요한 농사일이라는 것을 배웠다”고 소회를 밝혔다. 배우 명씨와 그는 연세대 연극동아리인 연희극예술연구회 출신으로, 이 동아리 출신들인 연출가 김태수(62), 극작가 고 박재서 등이 만든 극단이 완자무늬다. <콘트라베이스> <늙은 창녀의 노래> <불 좀 꺼주세요> 등이 대표작들이다.
극 중 주인공 샘은 자기 이름과 존재를 상실하고 떠돌다 정신병원까지 흘러들어가 자신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정신과 의사 ‘노이로스’와 함께 환자들 앞에서 극중극으로 털어놓는다. 연극은 사회로부터 오해받고 소외당한 한 청년의 고뇌를 통해 궁극적인 진실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자칭 타칭 ‘명배우’로 불리는 명계남씨는 주인공 샘의 인생을 파멸로 이끄는 8명의 인물을 소화한다. “자기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우리 모습. 삶에 따라 기회에 따라 힘있는 자가 약자를 누르고 약자는 밀릴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을 향한 통렬한 비판을 담은 연극이에요.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누가 미친 것인지, 정녕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은하수처럼 멀기만 한 것인지 고민하게 될 겁니다.”
후배 박윤희씨는 주인공 샘과 원장 등 1인 3역으로 선배와 연기 대결을 펼친다. 그는 “우리 사회에 소외된 사람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코미디화하면서 명계남 선배의 놀라운 ‘둔갑술’과 저의 진정성 있는 연기가 충돌하며 흥미를 자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02)734-7744.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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