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사진) 삽입곡 ‘렛 잇 고’ 열풍이 사그라질 줄을 모른다. 팝 음악, 그것도 영화 사운드트랙 수록곡으로는 이례적으로 국내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하더니, 오프라인 음반도 발매 두달 만에 5만장 넘게 팔렸다고 한다. 2012년 말 개봉해 돌풍을 일으켰던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 사운드트랙이 지금까지 팔린 게 모두 5만장이니, ‘렛 잇 고’ 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짐작할 만하다.
이 열풍을 타고 우리말로 노래한 더빙판 사운드트랙도 24일 발매될 예정이다. 또 최근 때맞춰 나온 뮤지컬 배우 이디나 멘젤의 라이브 앨범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디나 멘젤은 극중 눈의 여왕인 ‘엘사’를 맡아 ‘렛 잇 고’를 부른 당사자다. 뮤지컬 <위키드>의 주인공인 초록마녀 ‘엘파바’를 맡아 토니상 최우수여우상을 받은 배우다.
‘렛 잇 고’에 대한 엄청난 소문을 접하고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다소 실망했다. ‘썩 잘 만든 노래이지만, 그렇게 난리가 날 정도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제가만 따져도 <알라딘>의 ‘홀 뉴 월드’나 <라이온킹>의 ‘캔 유 필 더 러브 투나잇’에 못 미치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영화를 본 뒤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꽁꽁 숨겨온 마법 능력을 들키고 도망친 엘사가 눈 덮인 산을 오르면서 부르기 시작한 ‘렛 잇 고’는 전에 들었던 ‘렛 잇 고’와 완전히 다른 노래처럼 들렸다. 엘사는 외롭고 우울하게 노래를 시작하지만 차차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표출하면서 활기차고 자신감 넘치게 노래한다. 노래 후반부에서 엘사의 표정은 더없이 행복해 보인다. 한 사람의 인생, 영화 한 편의 기승전결이 3분43초짜리 노래 한 곡에 고스란히 응축돼 있는 듯하다.
영화에 나오는 ‘두 유 원트 투 빌드 어 스노우맨’도 그렇다. 꼬마 안나가 언니 엘사에게 “같이 눈사람 만들지 않을래?” 하고 귀엽게 조르는 노래는 중반부에서 소녀로 성장한 안나의 목소리를 거쳐 어른이 된 안나의 노래로 연결된다. 동생이 다칠까봐 자신을 철저히 숨기는 언니의 닫힌 방문을 향해 영문도 모른 채 여전히 “같이 눈사람 만들지 않을래?” 하는 어른 안나의 노래는 무척 슬프게 들린다. 노래 한 곡에 오랜 시간 두 자매가 겪어온 삶이 스며들어 있다.
누구는 ‘렛 잇 고’와 <위키드>에서 엘파바가 부르는 ‘디파잉 그래비티’의 유사성에 주목하기도 한다. 선과 악의 이중성을 지닌 캐릭터가 그동안 숨겨온 정체성을 드러내며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 흐르는 두 노래는 놀랄 만큼 닮았다. 두 노래 모두 이디나 멘젤이 부른 것도 우연이 아닐 터다. 두 노래를 다시 들을 때마다 엘사가 마법으로 거대한 얼음궁전을 만들고, 엘파바가 빗자루를 타고 중력을 거슬러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이 떠오르면서 다시 한번 감흥을 느끼게 된다.
노래에 감정이 담기고 이야기가 있을 때 감동은 배가되는 법이다. 음정과 박자가 얼마나 정확하고 고음이 얼마나 높이 올라가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요즘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지나치게 가창력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를 종종 본다. 오디션이라는 특성상 이해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음정이 불안하고 박자가 좀 틀려도 노래하는 이의 진솔한 감정과 이야기가 담긴다면, 더 큰 감동을 줄 수도 있다. 음악이란 그런 것이다.
서정민 사진 소니픽쳐스 제공
[관련영상] 〈겨울왕국〉, 사랑을 위한 ‘렛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