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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40년동안 쓴 음악 일기장 공개하는 자리”

등록 2014-02-20 19:36수정 2014-03-07 13:51

작곡가 이건용
작곡가 이건용
작곡가 이건용씨, 첫 가곡발표회
우리시대 시인의 시로 35편 작곡
작곡가지만 그는 문학도이기도 했다. “음악가의 길을 걷지 않았다면 소설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서울대 음대 시절 그는 전공보다 연극과 문학에 빠져 지냈다. 2학년 때인 1967년 소설 <석기시대>로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고, 친구인 오페라 연출가 고 문호근과 무대예술연구회를 만들어 연극에 매달렸다. 18일 찾아간 서울 세종문화회관 그의 사무실 책상에는 시집과 소설책 여러 권이 놓여 있었다.

세종문화회관 서양음악총괄감독 겸 서울시오페라단 단장 이건용(67·사진) 작곡가가 평생 작곡한 가곡을 모아 2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우리가 물이 되어’라는 발표회를 연다. 윤동주, 김남조, 강은교, 문익환, 오세영, 서정주, 황지우, 고은, 도종환 등의 시가 그가 지은 노래 날개를 달았다. “자연인으로 기록한 내밀한 일기장을 공개하는 자리”라고 그는 수줍어했다.

“가곡이 좋아서 음악을 시작했는데 학교에서 배운 것으로는 우리 시대의 노래가 되지 않는 거여요. 1960년대에 김승옥씨나 박태순씨의 소설을 보면 자기 이야기를 쓰는데 작품이 된단 말이죠. 그걸 제가 이해를 못했어요. 음악으로는 왜 그게 안 되나?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당대 시인의 시를 가지고 곡을 써보자고 했어요. 말하자면 시인의 입을 빌려서 내 이야기를 한 것이죠.”

1973년 김남조 시인의 <고독>으로 첫 가곡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2011년 고은 시인의 <은파에서>까지 가곡 35편을 썼다. 음악회 제목 곡인 강은교 시인의 ‘우리가 물이 되어’(1975)는 친구 민현식(67·기오헌 대표) 건축가의 결혼식을 축하하며 지은 작품이다. 2010년 자신의 아들 건축가 이호선씨의 결혼식에도 불렸다. 늦봄 문익환 목사의 <사랑>(1983)은 늦봄의 시 ‘고마운 사랑아’에 곡을 붙였다.

가곡은 그에게 음악의 출발점이었다. 중학 2학년 때 슈베르트의 가곡에 매혹되어 <슈베르트 100곡집>을 사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노래했다. 대학 졸업 뒤에는 음악을 발표할 공연장이 없어 친구 민현식 건축가 사무실에 피아노를 놓고 매달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이 음악회에서 그의 가곡들이 소프라노 양은희씨의 노래로 발표되었다.

암울했던 1980년대는 ‘서정성’보다는 ‘치열함’이 더 절실해서 가곡을 놓았다고 한다. ‘민족음악연구회’를 만들어 칸타타 <분노의 시>, <오소서 평화의 임금> 등 서양음악과 우리 전통의 접점을 찾는 고민을 했고, 한국 현실에 뿌리를 둔 <솔로몬과 술람미>, <봄봄>, <동승> 등의 창작 오페라에 매달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까지 지낸 국내 대표적 작곡가인데도 가곡 발표회가 이번이 처음이란 것이 오히려 뜻밖이다. “가곡의 시심(詩心)을 이해하고 노래로 표현할 만한 성악가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털어놓았다.

“좋은 성악가가 다 한국 가곡을 잘 부르는 것은 아닙니다. 강은교씨나 문익환 목사님, 황지우씨의 시를 노래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그 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어요.” 그는 지금 사회 분위기가 오락거리나 볼거리에 치우쳐 가곡이 설 자리가 없는데 대학에서도 가곡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여기며 가르치지 않으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요즘 베르디 오페라 <아이디>의 앙코르 공연(20~2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준비에 매달리느라 정작 자신의 음악회는 뒷전이다. 그래서 바리톤 장철씨와 피아니스트 이성하씨, 지휘자 홍준철씨가 이끄는 합창단 ‘음악이 있는 마을’, 오르가니스트 박옥주씨 등 지인들이 자리를 꾸미느라 바쁘다.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사진 세종문화회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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