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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공연과 영화를 넘나드는 ‘손가락’의 관능

등록 2014-02-27 20:08

영화와 연극, 무용, 문학이 결합된 독특한 총체극 ‘키스 앤 크라이’의 공연 장면.
영화와 연극, 무용, 문학이 결합된 독특한 총체극 ‘키스 앤 크라이’의 공연 장면.
[문화‘랑’] 키스 앤 크라이
영화감독 자코 반 도마엘과 아내 미셸 안 드메는 아이들을 위한 ‘손가락 춤’에서 출발한 <키스 앤 크라이>로 현대 무대예술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 보여주며 전세계의 극찬을 받았다. 한국 초연을 앞두고 전자우편 인터뷰 등을 통해 공연 내용을 미리 엿본다.
대형 스크린에 검은 잉크가 퍼지면서 기억의 심연 깊은 곳이 열린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브뤼셀 샤를루아 기차역 벤치에 백발의 할머니 지젤이 홀로 앉아 있다. 멀리서 기차가 미끄러지듯 들어온다. 그는 차창에 홀로 앉아있는 늙은 신사를 보며 문득 열두살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때 비발디 오페라 <파르나세>의 아리아 ‘내 피가 얼음같이 느껴지며’가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의 애잔한 목소리로 울려 퍼진다.

지젤은 저녁 6시15분에 도착한 기차 3등석 4호차에서 열다섯번째로 기차에 오르는 열네살 소년을 보았다.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 틈에 그와 소년이 섰다. 기차가 출발하고 그들이 손잡이를 잡으려다 서로 손이 스쳤다. 그 뒤로 그는 소년을 볼 수가 없었다. 그의 첫사랑은 13초 동안이었다. 그 뒤 그는 네명의 남자를 만났지만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지 못했다.

영화 <토토의 천국>(1991), <제8요일>(1996), <미스터 노바디>(2009)를 연출한 벨기에 영화감독 자코 반 도마엘(57)과 그의 부인이자 안무가인 미셸 안 드메(55)의 총체극 <키스 앤 크라이>의 장면이다. 이 독특한 작품이 3월6일부터 9일까지 서울 역삼동 엘지아트센터에서 처음으로 한국 관객들과 만난다. 영화와 연극, 무용, 문학이 결합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공연이다.

대형 스크린에 투사되는 무대
다섯 남자와의 희미한 추억을
다섯 손가락으로 섬세하게 전달
11개국 투어 “독창적 총체극” 평가
내달 국내공연…유지태 내레이션

영화 같은 연극, 연극 같은 영화

<키스 앤 크라이>는 무대 위에서 한 편의 영화를 만들고, 그 과정과 결과를 모두 대형 스크린 위에 펼쳐보인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관객들은 영화 세트처럼 복잡하게 짜인 무대와 그 위에 설치된 거대한 스크린을 만난다. 무대 위에 두 명의 무용수와 모형 기차, 인형, 물을 채운 수조, 그리고 몇 대의 카메라와 여러 명의 스태프 등이 등장한다. 조명이 꺼지고 남녀 무용수인 미셸 안 드메와 그레고리 그로장의 ‘움직임’이 시작되면 카메라가 분주하게 촬영하여 스크린에 투사한다. 여기에 영화배우 유지태(38)씨가 미리 녹음한 내레이션과 음악이 더해지고, 영상은 한 편의 서정적인 영화로 탈바꿈한다. 관객들은 한 편의 영화를 관람하면서, 동시에 그 영화가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험한다. 지난해 6월 프랑스 파리 공연에서 <르몽드>는 “가장 독창적인 무대 예술이다. 공연과 영화를 능숙히 오가며 완전한 즐거움을 제공해준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화와 연극, 무용, 문학이 결합된 독특한 총체극 ‘키스 앤 크라이’의 공연 장면.
영화와 연극, 무용, 문학이 결합된 독특한 총체극 ‘키스 앤 크라이’의 공연 장면.

‘손가락’ 안무와 미니어처의 결합

이 공연에서 흥미로운 점은 두 무용수가 등장해 춤을 추지만 사람의 ‘얼굴’과 ‘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대신 손가락과 미니어처, 인형들이 주인공이 된다. 두 무용수는 실제로 무대 위에서 춤과 연기를 선보이지만 그 감정은 손가락을 통해 고스란히 스크린에 전달된다. 손가락의 움직임은 매우 섬세하고 때로는 관능적이다. 두 무용수의 검지와 중지는 사람의 형상이 되어서 모래 위를 걷고, 사랑과 이별을 나누면서 설렘과 두려움, 열정, 그리움 등 온갖 감정을 표현한다. 안무가인 미셸 안 드메는 <한겨레>와 한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몸의 일부로만 거의 모든 것을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며 “하지만 물리적인 제한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 많은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작품 이름 ‘키스 앤 크라이’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이 연기를 펼친 뒤 자신의 점수를 기다리며 코치와 앉아 있는 공간을 일컫는다. 그들은 짧은 순간 동안 그곳에서 자신의 연기를 되새기면서 웃고 키스하고, 안타까움에 울음을 터뜨린다. 마치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하는 인생의 축소판 같은 공간이다. <키스 앤 크라이>도 나이 든 지젤이 자신을 거쳐간 다섯 남자와의 희미한 추억을 반추하는 작품이다. ‘한때 사랑했으나 이제는 존재마저 희미해진 사람들, 과연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보았을 법한 질문이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연출가 자코 반 도마엘은 “마치 다섯 개의 손가락처럼 우리는 다섯 가지 사랑 이야기를 세계의 많은 관객과 나누고 싶다”고 소개했다.

아이들을 위한 ‘손가락 춤‘에서 출발

부부인 자코 반 도마엘과 미셸 안 드메는 10여년 전 부엌 식탁 위에서 아이들에게 ‘손가락 춤’을 선보였다. 두 사람이 검지와 중지를 움직여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을 보여주자 아이들이 빠져들었다. 부부는 아이들 방에 있던 모형 기차와 장난감 건물들을 식탁 위에 배치해서 극으로 발전시켰다.
연출가인 영화감독 자코 반 도마엘(사진 뒤), 안무가 미셸 안 드메(앞) 부부.엘지아트센터 제공
연출가인 영화감독 자코 반 도마엘(사진 뒤), 안무가 미셸 안 드메(앞) 부부.엘지아트센터 제공
자코 반 도마엘 가족의 ‘손가락 연극’은 이 집을 찾는 손님들에게도 화제가 되었다. 자코 반 도마엘의 친구이자 벨기에의 유명작가인 토마 귄지그는 연극에 영감을 받아 짧은 이야기를 썼고, 미셸 안 드메의 친구인 무용수 그레고리 그로장은 자기 손가락을 배우로 투입했다. 조명 감독 니콜라 올리비에는 집안 곳곳의 전등을 이용해 조명 효과를 냈다. 마침내 그들은 이 연극을 무대로 옮기기로 결심한다.

<키스 앤 크라이>의 첫 공연은 2011년 벨기에의 몽스에서 열렸다. 두 무용수의 손가락 움직임과 실비 올리베의 미니어처 미술이 쥘리앵 랑베르의 영상으로 스크린에 옮겨지고 시적인 내레이션과 음악이 더해졌다. 작품은 격찬을 받았고, 2년 만에 유럽 공연에 나선 뒤 지금까지 11개국 투어로 이어졌다.

연출가, 유지태 목소리를 점찍다

한국 공연에는 영화배우 유지태씨가 우리말 내레이션을 맡았다. 연출가 자코 반 도마엘은 유튜브로 한국의 여러 배우와 목소리를 직접 들어본 뒤 유지태씨의 음색이 감성적이고 추억을 불러일으킨다며 기용을 추천했다고 한다.

자코 반 도마엘은 자신의 영화들처럼 낭만과 우수, 다른 것에 대한 동경과 판타지로 늘 사람들의 가슴에 아련한 파문을 일으킨다. 섬세한 손가락의 움직임과 감각적인 영상, 토마 귄지그의 시적인 대사에다 에스토니아 작곡가 아르보 페르트의 ‘벤저민 브리튼을 추모하는 성가’ 등 몽환적인 음악이 어울려 더 매력적인 작품이다. (02)2005-0114.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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