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자의 <보따리-나이지리아 알파비치>(2001)
6개 갤러리 연계 ‘하늘땅바다’ 전
국내외 15명 미디어 작가들 작품
갤러리마다 3개씩 나눠 전시해
국내외 15명 미디어 작가들 작품
갤러리마다 3개씩 나눠 전시해
아트선재센터를 중심으로 북촌 일대 6개 전시장에서 열리는 ‘하늘땅바다’전(3월23일까지)은 관객들에게 수평선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꼬드긴다. 꼬드김에 넘어가 관객이 된 사람들은 이화익갤러리, 아트선재센터, 원앤제이갤러리, 옵시스아트, 갤러리스케이프, 갤러리인 등을 돌면서 족히 두 시간은 소비해야 한다. 꽃나무들이 망울을 터뜨릴 참이니 소풍 삼아 다녀도 좋겠다.
저녁때만 건물 외벽에 작품을 쏘는 갤러리스케이프를 빼면 전시장마다 미디어영상, 설치 작품 3개씩을 보여준다. 모두 수평선, 또는 수평선에서 확장된 것을 소재로 작가 고유의 사유를 펼쳤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예술기관인 MAAP(Media Art Asia Pacific)에서 기획한 전시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출발해 중국으로 가는 도중에 한국에 머물고 있다.
제목 삼은 하늘·땅·바다는 수평선을 구성하는 소재들이다. 어려서 수평선을 보고 자란 기획자인 MAAP 디렉터 킴 메이챈은 수평선을 소재로 한 전시를 제대로 꾸려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 기획이 현실이 되면서 만만찮은 내공의 작가들이 모였다.
동심원의 출발점은 아트선재이고 한복판에 네덜란드의 얀 디베츠가 놓여있다. 그는 카메라를 미술의 도구로 사용한 선구자다. 전시에서는 <호라이즌> 시리즈 3개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 1941년생인 디베츠의 <호라이즌>(1971)은 ‘바닷가로 밀려오는 파도의 동영상’을 사각형 또는 삼각형으로 도형화해 조합했다. 그러니까 ‘움직이는 선’으로 된 면을 기하학 단위로 하여 완성한 구성작품이다. 수평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그리움, 소멸 등의 상투성을 완전히 엎어버린다.
뒤집기는 김수자의 <보따리-나이지리아 알파비치>(2001·사진)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수평선을 중심으로 하늘과 바다로 양분된 화면을 뒤집었다. 디베츠에서 받은 충격 탓에 “애걔걔!” 하고 돌아선다면 실수다. 알파비치는 노예선의 항해가 시작된 곳. 백인과 흑인,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식민과 지배가 마주쳐 ‘가장 슬프고도 충격적인 선’이 그어졌다. 작가는 무심한 듯 화면을 뒤집어놓았을 뿐이다.
포르투갈의 호아오 바스코 파이바의 작품 <강요된 감정이입>(2011)은 홍콩 앞바다의 부표를 찍은 영상이다. 그는 컴퓨터를 조작해 부표를 화면 중앙에 고정시킨 다음 부표를 둘러싼 바다가 움직이도록 했다. 부표에 설치된 카메라로 육지를 배경으로 떠 있는 부표를 찍은 것 같다. 작가가 보여주는 수평선은 바다와 하늘이 만나서 이룬 평평하고 고요한 선이 아니라 바다와 땅이 만나서 산만하게 움직이는 선이다.
아트선재의 작품들이 개념적인 문제풀이라면 이후 5개의 갤러리에서 마주치게 될 작품들은 응용문제다.
크레이그 월시는 서호주에 있는 원주민 성지 ‘무루중가’의 일출과 일몰을 찍었다. 삐죽삐죽 튀어나온 선돌들이 어스름에서 점점 밝아지거나 어두워지는 모습이 장엄하다.(<선돌지대>(2012), 옵시스아트) 바바라 캠벨이 도요새 도래지를 찍은 영상은 어떤가. 관객이 다가가면 화면을 가른 수평틈이 상하로 이동하면서 도요새가 나는 하늘·땅·바다를 보여준다.(<가까이, 가까이>(2014), 원앤제이) 로렌 브링캣은 그림과 영상의 경계를 고민한다. 그림처럼 정지된 활주로의 소실점 속으로 작가 자신이 걸어들어가 소실하는 방식이다.(<지금의 내일, 템펠호프>, 이화익갤러리) 폴 바이는 드릴처럼 생긴 나선형 풍경이 바람에 돌아가는 모습을 벽에 기댄 두개의 스크린 판에 쏜다. 돌아가는 나선은 고정된 위치에서 위, 또는 아래로 움직이는 착각을 부르고, ‘벽과 스크린’에서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한다. (<무제>(2013), 갤러리인)
한국 작가로는 정연두(<만들어진 기억(2008)), 심철웅(<또다른 강>(2011))씨도 참여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도판 MAAP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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