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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침착하고 우아한 ‘거인’을 만났다

등록 2014-03-12 19:46수정 2014-03-12 22:56

런던 심포니
런던 심포니
리뷰 l 런던 심포니 내한공연
지휘자 하딩 ‘말러 교향곡’에 감탄
현악기·관악기 다루는 솜씨 일품

협연 김선욱 지나치게 감정 정제
프로코피예프 광기 부족 아쉬워
2012년부터 매해 다른 지휘자와 내한하는 런던 심포니(사진)의 연주는 순간적으로 얼굴을 바꿔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기예 ‘변검’을 연상시킨다. 두 해 전 발레리 게르기예프(61)의 지휘로 선이 굵고 건축적인 음향을 들려줬던 이들은, 지난해 베르나르트 하이팅크(85)와 다시 한국을 찾아 지극히 섬세하고 초월적인 신비감을 선사했다. 올해는 젊은 지휘자 대니얼 하딩(39)과 함께 우아하고 영민한 연주로 쾌감을 느끼게 했다. 지휘봉의 임자가 바뀔 때마다 유연하게 음색을 변화시키며 각 해석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에 근접한다는 사실은, 이 악단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저력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하게끔 한다.

지난 10일과 11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런던 심포니와 하딩의 연주회 프로그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 건 스트라빈스키, 무소륵스키 등 러시아 작곡가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탄성을 지르게 한 건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 ‘미완성’>(10일)과 말러의 <교향곡 1번>(11일)이었다.

11일 대미를 장식한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은 주류 해석과 동떨어지면서도 묘한 설득력과 매력을 지닌 연주였다. 흔히 접했던 ‘거인’이 골리앗 같은 덩치에 기묘한 불안감과 애수를 간직한 신화 속 존재였다면, 하딩이 구현해낸 ‘거인’은 침착하고 우아한 매너와 휴머니티(인간성)를 지닌 영국 귀족 같았다.

지휘자가 되기 전 트럼펫을 전공한 하딩은 관악기를 다루는 솜씨가 돋보였다. 많은 지휘자들이 말러 교향곡에서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때 현악 파트를 무겁게 쌓아 올리곤 하는데, 하딩은 반대로 현악의 팽창을 억제함으로써 음향의 투명성을 유지하고 관악기로 신선한 울림을 더했다. 쭉 뻗어나간 관악기들은 화자(話者)가 되어 말러 특유의 서사성을 풍부하게 살려냈다. 특히 3악장에서 목관악기처럼 보드라운 소릿결을 빚어내던 트럼펫이 4악장에서 포악하게 돌진하며 보여준 극적 대비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10일 연주된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 역시 뇌리에 각인될 만한 호연이었다. 하딩은 현악기의 촘촘한 진행 위에 포갠 오보에와 클라리넷의 주제 선율에서부터 청중의 호흡을 움켜쥐었다.

둘째 날 한국 출신 젊은 피아니스트를 대표하는 김선욱(26)의 협연도 관심을 모았다. 장기인 베토벤 대신 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한 그는, 견고한 테크닉과 곡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 돋보였으나 때때로 지친 기색이 느껴졌다. 지나치게 정제된 감정 표현 역시 프로코피예프 특유의 광기를 기대한 청중에게는 불만스러울 수 있었다. 그는 사납게 질주하는 1악장의 카덴차풍 아르페지오, 타악기적인 타건으로 오케스트라와 거칠게 맞서는 4악장의 독주부에서조차 독일 레퍼토리를 연주할 때처럼 단정했다.

하딩도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에서는 깊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그가 의도한 유려한 앙상블과 억제된 속도감은 종종 작품의 중요한 특질인 원시성과 파괴성을 반감시켰다. 러시아 관현악 해석의 대가로 손꼽히는 발레리 게르기예프(현재 런던 심포니 수석 지휘자)가 같은 악단을 이끌고 이 곡을 지휘할 때와 크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런던 심포니는 이틀 모두 영화 <스타워즈>의 주제곡을 마지막 앙코르로 연주하며 청중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무대를 떠났다.

김소민 객원기자 somparis@naver.om

사진 빈체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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