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2세 무용가 조수옥씨가 지난 7일 저녁 서울 강남구 도곡동 ‘율하우스’ 녹음실에서 열린 ‘더 하우스 콘서트’에서 춤사위를 선보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문화‘랑’] 문화공간, 그곳
(6) 더 하우스 콘서트
(6) 더 하우스 콘서트
지난 7일 저녁 8시 서울 강남구 도곡2동 문화센터 앞에 자리한 녹음실 ‘율하우스 스튜디오’. 60여명의 남녀노소가 24평 마룻바닥에 앉아서 연주회를 기다리고 있다. 일본의 즉흥 음악 선도자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하라다 요리유키(66)가 멋진 연주를 끝내자 박수 소리가 녹음실을 가득 울렸다. 3월의 첫 ‘더 하우스 콘서트’ 자리다.
연주회가 끝나자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손현서(7·용마초등2)양이 피아노로 다가가 유심히 속을 들여다보고 건반을 만져본다. 현서는 2012년 7월부터 하우스 콘서트에 빠지지않고 오는 열성 관객이다.
“오늘 할아버지 연주자가 피아노를 치는데, 옷을 입은 게 굉장히 웃겼어요. 피아노 속으로 들어가 아주 큰 안경을 끼고 소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찾아보고 싶었어요.”
현서는 “오늘 피아노와 피리, 장구가 어울리는 즉흥연주가 좋았고 살풀이춤도 멋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옛날에는 유엔 사무총장이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게 꿈”이라고 수줍게 털어놓았다. 어머니 연미혜(36·주부)씨는 7살짜리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공연을 찾다가 이곳과 인연을 맺게 됐다며 “아이가 시 낭송 공연을 보면 집에서 시도 쓰고 음악도 지어볼 정도로 하우스 콘서트에 푹 빠졌다”고 말한다. 관객석과 무대의 거리가 먼 일반 공연장이라면 어려웠을 일이다. 매주 금요일마다 ‘더 하우스 콘서트’를 열고 있는 박창수(50) 대표는 “연주자와 관객이 한 공간에서 공감하는 것이 하우스 콘서트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연주자 코앞서 소리와 감정 공유
피아니스트 박창수씨 12년전 시작
유망 신인 발굴·성장 기회 되기도
올 한해 전국서 500회 공연 목표
“아이들이 연주장 객석에 앉았을 때는 소란스러운데 무대 위에만 올라오면 완전히 집중을 해요. 이유가 무얼까요? 아이들은 너무 텔레비전 문화에 익숙해 있어요. 무대 위 연주자들을 객석에 앉아 볼 때는 텔레비전 보듯이 대상으로 보는데, 무대 위에 올라오면 자기가 같은 공간에서 동참한다고 생각해요. 가르치지 않아도 집중하는 거죠. 그게 굉장히 중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큰 공연장에서는 8살 미만은 입장을 시키지 않는데 여기선 그걸 없앴습니다.” ‘하우스 콘서트’는 무대와 객석이 경계가 없어서 ‘마룻바닥 콘서트’로 불린다. 관객이 거실과 같은 작은 공간에 함께 모여 앉아 연주자의 연주 모습을 코앞에서 보고 공기의 파장과 바닥을 타고 전달되는 음악의 진동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음악회이다. 연주자의 작은 숨소리와 땀방울 하나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다. 연주 티켓 2만원에 연주도 즐기고 공연이 끝나면 와인과 다과를 나누며 편안하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하우스 콘서트는 18세기 프랑스의 귀부인들이 자신의 살롱에 음악가를 초청해 지인들과 함께 감상하는 살롱 음악회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즉흥연주가인 피아니스트 박창수씨가 2002년 7월12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2층을 개조해 일본 피아니스트 지노 슈이치와 박창수씨의 즉흥연주 무대로 하우스 콘서트를 처음 열었다. 그동안 클래식, 국악, 대중음악, 실험음악, 독립영화 상영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 함께하며 지난 12년간 387회의 공연을 열었다. 2012년부터는 더 확대시켜 전국의 공연장에서도 하우스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1980년 서울예고 시절부터 한 학기에 한번씩 열리는 향상음악회를 준비하면서 친구들과 연습할 때와 무대 위에서 실제로 하는 연주의 느낌이 너무 다른 것이 늘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잠실 주경기장과 월드컵경기장 등에서 대형 공연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진정한 문화에 접근하는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연주자와 관객들을 가깝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집에서도 음악회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하우스콘서트가 관객에게 공연장 문턱을 낮춘 것도 있지만 싹이 있는 연주자들을 발굴해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연주자가 무명 시절 하우스 콘서트 무대를 거쳐 거장으로 성장했다. 2011년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첼로 부문 우승을 차지한 러시아 첼리스트 나레크 하흐나자랸(26)은 무명이었던 2008년 3월 하우스 콘서트 무대에 섰다. 2007년 리즈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한 피아니스트 김선욱(26)씨도 2004년 2월 하우스 콘서트에서 마림바 연주자 한문경(27)씨와 듀오 공연으로 데뷔했다. 그는 지난해 7월 연주회까지 모두 14차례 참가했다. 베를린 필하모닉 클라리넷 수석 벤첼 푹스(51), 오스트리아의 피아노 거장 외르크 데무스(86), 독일 바이로이트 바그너 페스티벌 한국인 최초 주연 바리톤 사무엘 윤(43),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비올라 수석 장중진(46),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등을 기타곡으로 편곡한 기타리스트 야마시타 가즈히토(53), 9차례 출연한 인기가수 강산에(51), 첼로 거장 아르토 노라스(72·시벨리우스음악원 교수), 피아니스트 조성진(20), 10센치, 크라잉넛, 가야금 명인 황병기(78)씨 등이 하우스 콘서트의 취지에 공감해서 자발적으로 찾아왔다.
2011년과 2013년 두 차례 하우스 콘서트에서 공연했던 클라리네티스트 벤첼 푹스는 “관객이 바닥에 앉아서 연주자 바로 코앞에서 음악을 듣는 게 너무 신선했고 아이들 교육에도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한다”고 극찬했다고 한다. 박창수 대표는 “한번 연주회에 초대하는 데 5000만~6000만원씩 줘야 하는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겨우 30만~50만원씩 ‘상징적인’ 개런티를 받으면서 하우스 콘서트 무대에 서고 싶은 것은 그만큼 신뢰하는 증거”라고 귀띔했다.
지난 12년간 입소문이 나면서 무대에 서겠다는 연주자들이 줄을 섰다. 지난해까지 연간 30회를 열었지만 올해부터 50회로 늘렸다. 또한 국내 100군데 이상 공연장 관계자가 찾아와 벤치 마킹해갔다. 다음달에는 일본에서 공연 관계자들이 하우스 콘서트를 견학하러 온다고 한다. 또한 연희동 시절에는 동네 이웃인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도 다녀갔다.
2002년 연희동에서 시작한 하우스 콘서트는 2008년 아차산, 2009년 역삼동, 2010년 도곡동으로 옮겨지면서 ‘장소 불특정 공연장’으로 변천했다. 그래도 작은 공간에서 느껴지는 아늑한 분위기는 어디서나 불변이다. 도곡동 공연장은 자원봉사자로 있는 사운드엔지니어 장성학(36)씨가 자신의 스튜디오를 금요일마다 공짜로 빌려준 것이다. 하우스 콘서트 10돌을 맞은 2012년 7월에는 전국 23개 공연장에서 1주일간 콘서트를 100개 여는 ‘하우스 콘서트 대한민국 공연장 습격작전’을 열어 공연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해 전국에서 250회 공연을 연 데 이어 올해는 500회가 목표다. 전국 곳곳의 작은 사랑방에서 서울 중심의 공연문화가 깨져가고 있다.
정상영 선임기자 chung@hani.co.kr
연주자 코앞서 소리와 감정 공유
피아니스트 박창수씨 12년전 시작
유망 신인 발굴·성장 기회 되기도
올 한해 전국서 500회 공연 목표
“아이들이 연주장 객석에 앉았을 때는 소란스러운데 무대 위에만 올라오면 완전히 집중을 해요. 이유가 무얼까요? 아이들은 너무 텔레비전 문화에 익숙해 있어요. 무대 위 연주자들을 객석에 앉아 볼 때는 텔레비전 보듯이 대상으로 보는데, 무대 위에 올라오면 자기가 같은 공간에서 동참한다고 생각해요. 가르치지 않아도 집중하는 거죠. 그게 굉장히 중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큰 공연장에서는 8살 미만은 입장을 시키지 않는데 여기선 그걸 없앴습니다.” ‘하우스 콘서트’는 무대와 객석이 경계가 없어서 ‘마룻바닥 콘서트’로 불린다. 관객이 거실과 같은 작은 공간에 함께 모여 앉아 연주자의 연주 모습을 코앞에서 보고 공기의 파장과 바닥을 타고 전달되는 음악의 진동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음악회이다. 연주자의 작은 숨소리와 땀방울 하나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다. 연주 티켓 2만원에 연주도 즐기고 공연이 끝나면 와인과 다과를 나누며 편안하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인 현서가 피아니스트 하라다 요리유키의 즉흥연주를 감상하고 있다. 현서는 두해 전 하우스 콘서트를 처음 보고 연주자로 꿈을 바꿀 정도로 열성 관객이 되었다. 김성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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