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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왁자지껄한 ‘음악의 수도’에 취해버렸다

등록 2014-03-20 19:44수정 2014-03-20 21:36

북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음악 페스티벌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북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음악 페스티벌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서정민의 음악다방
북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음악 페스티벌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북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음악 페스티벌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지난 9일 저녁(현지 시각) 미국 텍사스 오스틴 공항에 도착하니 낯선 광경이 펼쳐졌다. 짐을 찾는 곳에 거대하고 알록달록한 기타들이 우뚝 서있었던 것이다. 사진을 찍고 있으니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건다. “오스틴 처음인가요? 음악의 수도(뮤직 캐피털)에 온 걸 환영합니다.”

그렇다. 매년 이맘때면 텍사스의 작고 조용한 도시 오스틴은 거대하고 왁자지껄한 음악의 수도로 변신한다. 북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음악 페스티벌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가 열리기 때문이다. 앨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노스 바이 노스웨스트)를 패러디한 이름의 축제는 1987년 7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막을 올렸다. 지금은 100곳 넘는 공연장에서 2200여개의 공식 공연이 열리고, 영화·인터랙티브로도 분야를 넓혔다.

SXSW의 특징은 다운타운 전체가 축제의 장이 된다는 점이다. 길을 걷다가 크고 작은 클럽, 바, 식당 등에 불쑥 들어가면 공연이 열리고 있는 식이다. 세계 각지에서 온 무명의 인디 밴드부터 콜드플레이, 레이디 가가, 제이지 등 세계적인 스타까지 각양각색 음악인들이 무대에 오른다. 물론 콜드플레이 등의 특급 공연은 경쟁이 치열하다. 모든 공연을 볼 수 있는 등록증이 있어도 추첨을 거쳐야 한다.

북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음악 페스티벌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북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음악 페스티벌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동료 기자는 레이디 가가 공연에 당첨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바비큐 식당 뒤뜰에서 통돼지 구이를 연상시키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봤다고 나중에 자랑질을 했다. 콜드플레이 공연에 도전했다가 쓴맛을 본 나는 다운타운 밤거리를 무작정 돌아다녔다. 클럽은 물론 길거리에서도 ‘비공식’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누구는 통기타를 치며 노래했고, 누구는 랩을 쏟아냈다.

어느 네거리에서 색소폰 2대와 드럼으로 다프트펑크의 ‘겟 러키’를 흥겹게 연주하는 3인조 밴드(사진)를 만났다. 가던 길을 멈춘 행인들이 덩실덩실 춤을 췄다. ‘이게 바로 진짜 축제구나. 이곳이 아니면 어디서 이런 밴드를 만나랴.’ 콜드플레이를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단번에 날렸다.

북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음악 페스티벌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북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음악 페스티벌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내가 이름 모를 그 밴드를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외국 관객들은 한국 밴드들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다. 거문고·해금·기타로 헤비메탈을 연주하는 잠비나이의 무대를 본 션 레넌(존 레넌의 아들)은 “끝내준다!”고 외쳤고, 크라잉넛과 이디오테잎의 뜨거운 무대에 미국 관객들은 미친 듯이 춤을 췄다. 와이비(YB)의 공연을 본 이들은 내게 다가와 “밴드 이름이 뭐냐? 어느 나라에서 왔냐? 진짜 죽인다”고 물어댔고, 노브레인의 이성우는 외국 팬들에 둘러싸여 기념촬영 요청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순간은 조니 윈터의 무대였다. 1970년대를 주름잡은 텍사스 블루스의 전설로, 이제는 일흔의 고령인데다 약물중독으로 몸도 성치 않은지라 의자에 앉아 공연했다. 관객들에 가려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는데, 갑자기 엄청나게 질주하는 기타와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실제 상황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불꽃이 튀었다.

궁금증을 누르지 못하고 무대 뒤로 돌아가니 조니 윈터의 뒷모습이 보였다. 머리와 어깨 움직임은 한없이 평온했지만, 두 손만은 기타 위를 바삐 오가고 있었다. 공연을 마치고 다른 이의 부축을 받아 나가는 자니 윈터와 마주쳤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에 제대로 걸을 힘조차 없는데도 손과 목소리만이 전성기를 기억하는 듯 본능 적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위대한 예술혼이란 게 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서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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